오늘 아주 이상한 일이 있었으므로 기록을 남긴다.
원래는 오늘 비행기를 타러 가야 했다.
원래는 금요일에 만날 약속이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실 계획이었다.
상황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돌고 돌아 간 다른 가게,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작고 아늑한 카페에서 세 시간 동안 (여전히) 조지아, 러시아, 이탈리아, 스탕달, 일본어 그리고 범죄소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느지막이 일어났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본 순간.
하얀 벽에 걸려 있는 낡은 포스터에 적힌 붉은색의 조지아 알파벳을 보았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이거 조지아에서 사 온 거냐고 물은 손님은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렇다고, 조지아에 다녀왔다고, 그곳을 좋아하냐며 주인 부부가 지었던 미소를 본 것도 우리뿐이겠지.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되어있는가.
볼테르의 <캉디드>다. (이 책을 불과 이틀 전에 읽었는데 이건 또 무슨 예정의 조화람)
여태껏 내 인생에 어떤 계시적인 영감이 있었던 적은 없었고 나는 숙명도 믿지 않지만, 이 일만큼은 정말 무언가 어떤 거대한 계획의 일부 같은 희한한 경사와 각도를 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뤄진 약속과 돌아간 가게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국의 카페에서, 내가 오늘 갔어야 하지만 가지 못한 나라의, 다른 누군가에게 나라 이름 100개를 대라고 하면 잘해봤자 90번째 즈음에 나올 법한 그 작고 먼 나라의 문자를 본다고? 보통 안 이러지?
그리하여 나는 아주 조금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이 일어났으며, 또 그렇게 되기 위한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카페를 나와서 밤 산책을 하며 동행이 했던 말 한마디를, 나는 세상이 내게 보내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ㅡ가게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