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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고슴도치 Nov 24. 2022

우리 안의 리듬

쉬이 잊혀지지 않는 노래들

  

 살면서 수많은 노래를 들었다. 저번 학기에 가장 많은 들은 것은 조선왕조 왕을 앞글자만 따서 부르는 모 보드게임회사의 유튜브 영상. 노래의 힘이란! 왕이라곤 그저 세종대왕님밖에 모르던 5학년들이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수원화성 정조! 임진왜란 선조! 하며 조선 왕의 연대기를 부분적으로라도 흥얼거리게 되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영특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몇몇 아이들은 철종, 또는 경종 부분을 스타카토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이든 한 소절도 크게 불러보지 않은 아이들이든 결과는 아마 같을 것이다. 휘발.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한 학기동안 배운 역사 내용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중학생이 된 언니와 별것 아닌 것으로 다투고 내복 입은 동생과 유행하는 틱톡 영상촬영을 연습하는동안 쉬이 잊혀져 가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러나 분명한건 일주일에 두 번 사회시간 시작을 알리는, 아이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지겨워서 지긋지긋하다는' 유튜브 음악이 어디선가 나온다면 몇몇은 아니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몇몇의 왕을 입술을 달싹이며 소환하게 될 것이다.




노래란 원래 그런 것이므로. 어떤 시절 속의 자아의 틈을 느슨하게 메꾸고 있는 것이니까. 나에게도 막상 가사나 리듬을 떠올리기는 힘들지만 전주를 잠깐 들으면 삽시간에 그때의 밤공기까지도 리드미컬하게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있다. 샤이니의 '산소같은 너'.




  자판기 캔커피를 먹어도 보고 드디어  밤까지 기말고사 준비를 해보았다는 것이 기분 좋은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는 시기였다. 엄마가 아닌, 또래와 시간을 같이 쓰고 무거운 가방에 책을 이고 지며 다닌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던 2008년의 어느 여름. 도서관 현관에는 앞주머니에 넣은 로드샵 틴트가 샌 탓에 빨간 반점이 생겨버린 가방을 맨 C가 있다. 학교 컴퓨터로 보이는 라디오 영상을 담아왔다며 pmp를 꺼내 분홍 이어폰을 끼웠다. 한쪽만 낀 이어폰 안에서 둥둥 꽂히는 기계음. 생소한 리듬. 시원한 밤공기가 반대쪽 귓바퀴를 어지러이 스쳤다. 쉽게 헝클어지고 쉽게 풀리는 머릿결처럼 막연히 우리네 삶도 쉽게 헝클어지고 또 쉽게 풀리는 종류의 것이라 여겼다.



" 이 노래 좋지 않니, 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할거야."

 C 결연하게 말했다. 멈춰선 횡단보도 가로등 앞에서 안무를 완벽하게 선보이고는 이어폰 줄을 탈탈 털어 푸는 그애의 시니컬한 손을 보고 있노라면 , 참말로, 반드시, 당연히, 기필코, 그렇게   같았다. 주변의  건물이라곤 몇달 전에 생긴 삼성서비스센터 밖에 없는 시골 길에서 주황색 가로등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모습은 무언가   없는 믿음이 생기는 생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른들의 모든 말에는 의심부터 들던, 그것이 멋있는  알던 당신의 나로서는 맹목적인 수긍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진짜 그럴거 같애."

"진짜? 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그렇게 될것 같아."

"우리 완전 반짝거리는 서울 빌딩으로 출근하는 커리어우먼 되자."

" . 진짜 그러자."






 진짜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면 진짜가 될 것 같았다. 가벼이 확신의 말을 뱉고 가볍지 않으려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면서. 실제로 본 적 없는 빌딩숲과 커리어우먼의 생활이 어떤지는 몰라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모조리 생략하며. 난 C의 어른의 모습을 미리 보고 최선을 다해 부러워하고 그애는 벌써 그러하다는 듯 으쓱대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십년이 더 지난 오늘,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 그 길 옆 삼성 서비스 센터 뒤로 작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옆으로는 시립도서관이 있고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빠르게 걷는다. 같은 길이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은 이제 한 손으로 셀 만큼 적어졌다. 왜인지 너는 진짜 그럴 것 같아. 그래 나는 정말 그럴거야. 라고 하기에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내가 알아낸 것, 누군가가 알려준 것들이 많아져버렸다.




 공무원시험을 목전에 두어 카톡을 없앤 C에게 쫄지말라며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다. ' 나는 우연히  될거야.'  웃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샤이니의 '산소같은 ' 들으며 C 떠올린다. 어긋나고 겹쳐지고 하는 중에 뭔가 맞아떨어지는 기가막히는 리듬이 찾아오기를.  덕분에 스스로를 믿게 되는 순간도 종종 오기를. 그래서 가끔은 '산소같은 너어- 다시 내뱉을 수우- 없어' 하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운동화를 삐빅거리며 춤추는 그때의 들뜨고 단단한 표정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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