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남은 동료들
(이어지는 글입니다.)
학교는 '리'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부분에서 요즘과 동떨어져 있었다. 달에 한 두번씩 이런 말을 듣고, 저런 일이 생겼다. 또 그런 날이 있었다. 다음날 출근길에서 만난 승선생님은 뽀얀 얼굴 가득히 특유의 웃음을 담고 말했다. "오늘도 신발 밑창 다 닳으며 학교에 왔다."며. 그리고 다시 한번 웃으며 덧붙였다. 어젯밤 말할 내용을 가다듬느라 새벽까지 못 잤다고, 내내 생각했다고 했다. 입술을 앙다물며 과장된 '아으' 소리를 내는 그 앞에서 같이 주먹을 끙 쥐며 웃었다. 승은 그날 오후에 어김없이 모두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문제의 당사자와 둘만 있는 곳에서.
그날 밤엔 내가 오래 뒤척였다. 처음 인식했기 때문이다. 용기를 빠르게 내는 사람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뒤따라 가는 사람은 결코 모르리란 것을, 그리고 실제로 행하기 위해서는 신념과 정의로움 외에도 말할 단어와 절차와 타이밍을 고르는 혼자만 아는 괴로움이 있음을. 그리고 언제나 그 과정에서 문제의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일대일로 대화를 했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흡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곳에서도 매너를 갖추려한 정정당당함을 왜 이리 늦게 알았을까? 크게 부끄러웠다. 무임승차자가 둔한 변명을 해보자면 그건 승의 유머가 감쪽같이 그 떨림을 숨겨서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웃음으로 당당함과 합리적인 태도를 고이 포장하는 겸손함까지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승에게 여러번, 크게 빚졌다. 아마 아니, 당연히 고단했을 것이다.가끔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이후로 두려운 순간이 생길때마다 "샘~ 오늘도 신발 밑창만 다 닳으며 실속 없이 왔다."는 승을 생각해 본다.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아는 선배들에게 묻고, 듣고, 또 생각하며 밤을 하얗게 새운 뒤 일어난 사람. 2호선을 타고 잠실에서 빨간 버스로 환승한 뒤 고속도로를 달려온 사람. 모두를 위한 말을 해보겠다고 다짐한 출근길에 동료를 향해 농담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용기를 내야할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잠깐이지만 나 역시 그렇게 잘 자란 사람이 되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배웠다.
두번째는 슬 선생님이었다. 옷 젖는걸 주저하지 않고 풍덩!하고 뛰어들어가는 사람만이 결국엔 가장 깊은 곳으로 헤엄칠 수 있음을 배웠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