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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고슴도치 Apr 05. 2023

체험과 경험의 차이

어떤 시공간만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




오늘 교육학을 공부하던 중에 크게 와닿아 반짝하던 개념이 있었다.




 바로 '체험과 경험의 차이' 라는 부분이었다. 체험은 감각적 인식, 일시적인 참여인 부분이고 경험은 감각적인 인식과 더불어 장기적인 기억으로의 도약,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스키마가 변한다는 점이다. 학생은 '경험'을 통해 개념을 배우며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학습에 있어 훨씬 유리하다. 학생이 어떤 활동을 하고 단지 그게 체험에 그치는 것을 확인하면, 교육자는 여러가지 도구 (언어로 표현, 신체 표현,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하기 등)을 통해 이를 정리하게끔 하여 돕는다.





 여기에서 첫번째로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래서 재화의 제공이나 물질적 풍요가 항상 성장이나 배움을 담보하지 않는다.'라는 점이었다. 많은 것을 함께 해도 체험에만 그치게 두는 무딘 양육자 혹은 전문성이 없는 교육자보다는 비록 적은 것을 제공하더라도 이를 경험으로 정리할 수 있게끔 열정적으로 관찰하는 양육자나 섬세한 교육자가 더 낫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다양한 고급 교육들을 받으면서도 그저 풍족했던 유년기라는 기억에 그치는 사람이 있고, (이때 자기는 경험이 많다면서 별로인 상태로 남아있는, 그래서 그 많은 것을 한 것이오히려 본인을 더 볼품없게 만드는 경우들이 떠올랐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멍청하고 부유한 가정의 웃픈 전설이라던지 돈은 좀 부족하지만 똑똑한 가정의 성공신화가 이렇게 구전되어 온 것이리라.




철저하게 견고한 것같아 보이는 세계도 이런저런 빈틈이 있고, 또 배움이나 교육이라는 것이 그 빈틈을 지렛대 삼을 수 있는 도구가 되는지를 혼자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섬뜩하겠지?




 두번째로는 그 경험과 체험을 가르는 기준이 바로 '사고'라는 것이었다. 체험이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잘 정돈된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경험이 교육적으로 의미있다거나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 수많은 체험을 하고 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간 즐겁거나/힘들다는 단순한 기준으로 내가 뭔가를 배웠다거나, 유의한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늘 궁금했다. 나는 어떤 재밌고 다채로운 시공간을 지나면서 그저 몸이 즐거웠고, 돈과 젊음을 펑펑 낭비했다. 또 어떤 아름다운 시공간을 오래오래 지나면서는 좀더 섬세하고 부드러워졌다. 끔찍한 시공간을 지나면서는 세상의 냉혹하단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다는 것을 배웠고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감사하고 살아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어두운 시공간을 지나며 못된 생활습관들과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이 뿌리깊게 생겼다. 정리하자면 좋고 나쁜 기분은 내가 '더 나은,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하는것의 변인이 아니었던 것이다는 것이다.




 나는 간절하게 생각하고, 다각도로 고민해 보고, 아주 긴 시간동안 여러번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고민한 일들에 대해서만 한정해 귀한 깨달음을 얻어왔다는 걸 발견했다. 여행이라던지 진학, 일, 만남과 헤어짐 그런것은 결정요인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이 사고과정으로 이어졌을때에만 유의미했다. 돌아보면 어떤 사건들에 대한 사고과정이 감동적이거나 반대로 괴롭거나, 강렬하거나 아니면 끈질기고 길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것들은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으로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했다. 그 지점들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이 삶의 주인인 나 스스로는 확신한다.



더이상은 단순히 소비 또는 소모하며 이 귀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요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뒤를 돌아보노라면 텅텅 빈 터널 같은 기간이 길어보여서 다급해진다. 차분한 자세로 세상이 좋다고 하는 여러 소모적인 소비 그리고 체험에 현혹되지 말고 나에게 최대한의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주어야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는 자세, 또 더 중요한 건 질높은 사고를 노력해야겠다. 시간이 없다고 느끼니 선별하는 것과 도전하는 것에 진심으로 임하고 싶어진다.



스무살 언저리에 전공 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더 먼저 알았을 것을 십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알게 된다니. 어떤 점에서는 한심스럽고 또 어떤 점에서는 인생과 공부는 이렇듯 흥미진진하고 재미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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