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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고슴도치 Nov 24. 2022

봄을 생각하는 시기

 황순원의 소나기

 

아이들과 황순원 소나기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날의 배움주제는 '영상매체를 감상하고 이야기 구조에 따라 요약해보자.'였다.



 '어서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영상을 쪼개야 한다. '멍 때린 녀석들을 위해 똘똘이들이 중요장면을 읊게 하자'  교사들의 확진으로 요새 학교는 돌려돌려 보결판이다. 6교시 내내 수업이니 내 목 아낄 요령이다. "자, 우리 배움으로 들어가기 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누가 먼저 발표해볼까~?' 뭔가 굉장한 특권을 준다는 식의 높은 목소리와 연극하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아이들도 6년동안 학교다녔으면 알테지, 서너명이 후딱 대답해주면 오늘 진도를 나갈 것이란 걸.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들이 불과 몇년전만 해도 번쩍 번쩍 손을 들던 아기들이었음이 신기하다. 다들 눈치만 보고 나는 "알잖아? 국어시간에 정답은 없습니다."하며 똘똘이들에게 눈빛을 좀 더 길게 쏴준다.




'어이 똘똘이 너가 말하는게 정답이야. 손들자고~'





 "소녀가 죽기전  꽃물이 든 옷을 같이 묻어달라는 장면이요."

 " 오두막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장면이요, 강가에서 만나 조약돌 던지는 장면이요."

이정도면 멍때린 애들도 교과서의 그림을 이리저리 끼워맞춰 대강의 전개를 알겠지. 칠판에 오늘 그리면 벌써 4번째 그리는 갈등 고조에 따른 이야기전개 그래프를 그리려고 분필끼우개를 탁탁 터는데 우리반 개구쟁이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손을 크게 든다.





" 저는 소년이 무 먹고 지려~ 하면서 던지는 장면이요!'

요 녀석 신성한 국어시간에 '지린다'는 말 써보고 싶어서 저러는군 싶어 마스크 안으로 빙글 웃었다. 좋아, 피드백 지옥에 넣어주마.

"오, 그장면이 웃겼니? 이유도 함께 말해줄까요?" 나는 이럴때 한없이 친절한 못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나의 선천적 재능과 직업적 역량이 연결되는 얼마 없는 순간이다.



"쌤, 저 웃기다고 안했어요. "



어서 갈등그래프 그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길어질 듯 하여 분필을 칠판 앞에 내려놓았다.

"어머 미안, 선생님이 멋대로 웃기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러면 인상 깊은 이유를 자세히 말해줄까요? 여러분 잘 들어봅시다~"




 "처음에 소년이 무를 맛있게 먹다가 소녀가 먹으면서  없다고 하니까 자기도 '맞아 지려!'하면서 던지는  좋았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무인데도 바로 버리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니까요. 여러분 하겐다스 버릴  있겠습니까! 티본스테이크 던질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원래 좋아하던 음식이나 물건 같은 것들이 왜인지 별로인것 같고  부끄러워지고 그냥  사람한테  맞춰주게  적이 있어서 공감이 갔습니다. 소년은 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에에"





 여러 정치인 성대모사를 섞은 것은 자기 마음을 가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유 짜식아, 그래 숨겨라 숨겨지겠니? 살짝 소란스러워진 분위기를 교실을 잘 발표했다며 과장해서 유도한 박수소리로 펄럭 덮었다.





 아마 개구쟁이는  아름다운 계절에 자신만의 봄을 생각하는 중일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때 내가 이십여년간 쌓아온 노래 취향이 짧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조악한 선호에 불과할까 조마조마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들떠서  음식 맛있다고 성급하게 말해버리지는 말아야지 스스로를 단속하느라 주머니 안에서 주먹 쥐었던 벚꽃철이 있었다.  과정을 겪고 있을, 그리고 겪어나갈 너희들이 참으로 부러워지는구나.





 봄은 단어의 어감부터가 참으로 따스하고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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