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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고슴도치 Nov 27. 2022

그 교장실에서 배운 것

할 말은 하고 사는 세상은 누가 만드는가


그럼에도 이곳이 남긴 것이 있다.

겸양의 태도를 배웠다.





원래부터가 그다지 주눅들지 않고 조리있게 말하는 편이었다. 좁은 동네에 나서  '뭐든 잘하는 애'로 오랫동안 자랐다. 어른들은 대체로 어린 나에게 친절했고 기꺼이 귀기울였다.  초등학교 5학년 신학기에 처음으로 "어디서 눈을 보며 따박따박 건방지게 말하니?"라는 말로 충격에 빠졌었지만 몇 일만에 바로 극복했다. 그 할머니 선생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학급회장과 함께 병문안을 갔으며, 괜찮으시냐는 인사를 하며 들어서자마자 너처럼 예쁘게 말하는 아이는 없다며 눈물을 흘리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이 왼팔로 남자회장을, 오른팔로 나를 껴안았기 때문에 그 애의 얼굴과 내 얼굴 사이의 거리는 30cm도 채 안 되었다. '언제 끝나지?'하며 걔와 나는 눈을 아래로 깔고 꽉 감겨 있었다.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남자애랑 얼굴이 이렇게 가까워도 되나?' 그러다 코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킁킁대는게 괜히 부끄러워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더니 선생님은 내가 이 상황이 감격스러워 흐느끼는 건 줄 알고 더 세게 안으셨다. 다른 손에 든 과일바구니가 바닥에 떨어져서야 그 어색함에서 겨우 풀려 날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더더욱 '할 말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살면서 이건 도저히 수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여겨지던 때에도 나는 말했다. 옆반 애든, 친척이나 보험설계사든 부당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내 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안되면  여러번 고친 문자라도 보내 종내 뜻을 남겼다. 물론 나도 피곤하지 않았던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키고 싶은게 많았고, 구경꾼처럼 자신을 멍하니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며 발령이 나고, 그렇게 결국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 대 사람이 말을 주고받으면  동등한 위치에서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 역시도 남을 말로 후벼파지  않으려 노력했고,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헤집어 놓는 사람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피했고 또 아주 가끔은 싸웠다.





' 장00선생님은 사람이 산만한것 같아. 그냥 난 보면 다 알아."

 "아, 그게 아니고..."

"장 00선생님은 말하지 마세요. 지금도 산만하잖아. 안 듣잖아. "

"네?"

 "나는 눈만 봐도 다 알아. 무슨 우환이라도 있는가봐. 멍하잖아."





나와 내 주변인들이 대부분 곱게 가끔씩은 애써서 힘들게 쌓아올렸던 어떤 자부심이나 성격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몇십분이었다. 무척 불쾌했다. 말 그대로 기분이 딱 더러웠다. 그러나 더 이상 방법을 생각할 수 없어 당시에는 순응했다. 심지어 그 교장실에서는 참았지만 교장관사에 가서는 고개를 조아리고 '우니까 봐주세요.'하는 마음으로 울기도 했다. 다시금 생각해도 분하지만 그 세계에서 혼자 할 수 있는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만약 다시 돌아간대도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니 그랬겠지. 어쨌거나 나의 성격의 한 부분 , 사실 그보다 더 큰 자부심과 보상심리, '힘든 시기에도 결국 난 뭔가를 배웠어.' 하는 부분을 짓밟혔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 겨울방학식날이 전혀 무의미하고 춥기만 한 날은 아니다.





지금껏 상대의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며 대화하던것, 물어야 할 것과 묻지 않을 것을 구별하고, 친구가 당한 부당함에 조리있게 대신 나서 주던 것 등은 다 내가 말을 잘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주변인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줬음을 알게 되었다. 폭력 속에서는 이런건 일상적이지 않구나. 아니 불가능하구나. 더 오래 이곳에서 생활하며 이렇게 타의에 의해 해체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았다면 지금의 이런 깨달음도 휘발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적응하며 일단 살아갈 수 있었을테니까.




겸양의 태도라는 게 ' 그래, 내가 뭐라고. 까라면 까야지.' 식의 패배주의에 젖어 뒷걸음질 치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대화하며,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보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주변인들에게 감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모든 구성원들이 책임을 다해야한다. 그것도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걸 마음 깊이 깨달았다.




몇 십분을 세워두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아끼라는, 나는 늘 그렇게 산다는' 의자에 앉은 그 사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해서 갈증이 난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의 보다 약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껴주고 싶기. 겸양의 태도로. 그렇게 노력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할 말은 하고 사는 ' 평등한 시공간이 어렵사리 유지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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