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화면이 조용해진 자리

그림책 '크록텔레 가족'(클로디아 비엘린스키)

by 초연이

어떤 단어는 혀끝에서부터 천천히 삶의 속도를 낮춰 주곤 합니다. 단어가 자연스럽게 발음이 되는 데 오래 걸리거나, 단어의 뜻을 음미하고 삼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어에 '아르치골라(arcigola)'라는 말이 있는데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음식과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느린 저녁 식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정의가 마치 오늘을 대하는 태도로 삼기에 참으로 고즈넉하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쁘게 손질하여 구워냈을 뇨끼의 노릇한 표면, 하지만 오래도록 남아있길 바랐을 소스의 묵직한 온기, 얇게 내려앉은 치즈가 사르르 풀리는 순간. 한 입을 삼키고도 바로 다음을 재촉하지 않는 그 작은 여백이, 사실은 마음의 숨구멍 같기도 하여 평온해졌습니다. 대개 식사를 얼른 '해결하고', 다음의 행위로 촉박하게 넘어가곤 했지만, 이 접시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시간이 한 칸 남는 듯 여유로웠습니다.


요즘 우리의 신체는 유난히 바쁩니다. 젓가락을 쥔 손이 잠깐 쉬면,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채웁니다. 화면은 친절하게 다음 이야기를 내밀어 주고, 우리는 "조금만 더"로 합리화하며 하루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통째로, 아쉽게 넘겨버립니다. 그러다 문득, '밥 먹는 시간'이라는 가치 있는 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진 걸 알아차리곤 하죠. 밥상 위의 온도도, 서로의 표정도, 안위를 묻는 사소한 질문들도.






클로디아 비엘린스키의 '크록텔레 가족'이라는 책입니다. 현재 우리의 스마트폰처럼, 크록텔레 가족 사이에서는 텔레비전이 많은 부분을 지배합니다. 텔레비전이 오히려 가족을 품고 있는 그림은, 이미 주객전도가 심하게 된 듯한 안타깝고도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어요. 게다가 사람들을 품은 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텔레비전의 여유 있는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인간으로서, 마치 있지도 않은 경기에서 진 것 마냥 약이 오르고 자존심도 구겨진 듯한 기분까지 듭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텔레비전. 정말이지 우리에게 신체의 일부분처럼 스며든 스마트폰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물론 현명하게 현대 시대를 잘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구분하여 습득하고, 그에 걸맞은 문해력을 갖추며 새로운 지식을 가공해 내는, 인간이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도구로는 충분히 좋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화면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 일방적인 삶에 녹아든 크록텔레 가족의 모습은 점점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결국 지쳐 쓰러진 텔레비전을 보며 크록텔레 가족은 슬퍼합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텔레비전이 없는 삶을 걱정하는, 본인에 대한 우려와도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동정하며 텔레비전에게 '휴가'를 주겠다고 하는 크록텔레 가족. 표면적으로는 텔레비전을 위한 휴식이었지만, 결국은 각자 자신과 가족을 온전히 다시 만나기 위한 본질적인 쉼표이길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크록텔레 가족은 매일매일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우리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애석하게도 공감이 가는 장면이었어요. 무료하게 구름의 흐름을 따라가기엔 온몸이 너무 간지럽고 좀이 쑤시기도 했다가, 무기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의 부재가 이 가족에게 가져다줄 결말이 끝없는 지루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며 서둘러 책장을 넘겼습니다.



결국 휴가를 즐기던 자신을 '벌써' 데리러 온 크록텔레 가족에게, 텔레비전은 답답함을 뿜어냅니다. 그리고 크록텔레 가족에게 일상 속에서 숨겨져 있었던 일들을 알려줘요. 사소하고도 사소해서,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행위들. 책 읽기, 옷장 정리하기, 눈사람 만들기 등 당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당장 가능한 일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코 어렵고 대단한 일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늘 '특별한 날'을 기다리느라, 오히려 지나간 뒤에 그토록 후회하며 되돌리고 싶어 하던 '평범한 일상'. 그리고 그것을 놓쳐버린 어리석음을 다시금 일깨우던 이 장면. 지루함을 그저 눌러 덮지 않고,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 '창문 열고 소리치기'와 같은 별것 아니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들로 내어 놓습니다.



크록텔레 가족은 텔레비전이 없어도, 각자의 일상을 여유 있게 누리는 방법을 터득하며 다시 '행복'해 졌습니다. '행복'이 인생의 필수 조건이나 과업이라고 편협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숙제를 낳곤 하죠. 하지만 이왕이면 주어진 삶을 밝은 기운으로 감싸내는 것이 아무래도 더 나은 쪽인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크록텔레 가족은 행복을 스스로 일구어내고, 삶의 바퀴가 다채롭고도 가속도가 붙게 만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화면에 중독된 건 그 자극 자체라기보다 '감각을 건너뛰는 속도'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빨라서 기쁨이 들어올 문턱조차 생기지 않는 속도. 너무 빨라서 슬픔도 애처로움도 당황함도 제대로 앓아낼 틈이 없는 속도. '더'를 외치며 강도를 높이는 동안, 우리의 삶은 쉽고도 자주, 밋밋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밋밋함은 하루를 건조하게 만들고, 쩍쩍 말라붙는 몸과 마음을 느끼며 갈증이 나는지 기력이 달린 건지 애매한 상태를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유=나태'와 같은 이상한 공식은 내려놓고, 오히려 삶의 효율과 효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진정한 '여유'를 찾아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입을 먹고도 서두르지 않는 저녁. 화면이 조용해진 자리에서, 삶이 다시 말을 건네오는 시간. 스쳐 지나가던 일상을 충분히 감각적으로 감지하고 진지하게 마주하는 순간. 평범함은 어느 순간 벅찬 행복이 되어 힘을 냅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고 있던 오늘이 전하는 느림의 미학을 심도 있게 느껴보는 새해가 새롭게 펼쳐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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