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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Apr 10. 2023

비단

이미지와 서사

이미지     


이야기에도 관성이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한참 동안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 우리가 흔히 여운이라고 부르는 것, 그 속에서는 상상과 해석이 춤을 춘다. 관성의 동력이 힘을 잃는 동안 우리는 문장과 문장을 넘어 해석과 상상으로 문자의 빈 곳을 채운다.

     

어떤 작가들은 이런 여운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존경받는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가 바로 그런 작가다. 바리코는 감정과 경험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생생하고 연상적인 이미지를 만들며, 이를 시적 언어와 은유를 사용하여 전달하는 데 능숙하다. 비평가들은 이런 바리코 문학을 일종의 이미지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설 ‘비단’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이미지즘이 빛을 발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 속에는 사랑, 상실, 그리움, 인간관계의 복잡성 등이 리듬감 있게 표현되고 있으며, 인간 감정의 뉘앙스가 섬세하게 포착된 지점들이 곳곳에 깔려있다.  

   

‘비단’은 일종의 역사 소설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살람보’를 끝내가고 있는 플로베르를, 아직 발명되지 않는 전기를,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쟁을, 유럽을 강타한 감염병을, 파스퇴르의 존재를, 그리고 페리 제독으로 인한 일본의 개화 사건 등을 소설 속에 열거하며, 독자의 눈을 1861년이라는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 즉 1860년대, 프랑스 라빌드외 지역은 양잠의 중심지였다. 당시 유럽에 퍼진 전염병은 누에고치의 공급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비단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고치의 주요 공급원이 아시아로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런 배경은 에르베 종쿠르라는 가상의 양잠 사업가가 지구의 반을 돌아 일본과 만나는 역사적 인과관계가 된다.

    

프랑스인 에르베 종쿠르가 감염되지 않은 신선한 누에고치를 찾아 먼 여행 끝에 만난 일본의 유력자, 그 옆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여느 동양 여자와 같이 눈이 양쪽으로 가늘게 찢어지지 않았다. 에르베 종쿠르와 소녀가 처음 만나는 순간의 감정선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소녀가 살며시 머리를 들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에르베 종쿠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찻잔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천천히 찻잔을 돌려 에르베 종쿠르가 입술을 대었던 바로 그곳에 입술을 갖다 댔다. 소녀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소녀는 찻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소녀는 찻잔을 원래 있던 자리로 밀어놓았다. 소녀는 손을 거두어 치맛자락 밑으로 감추었다. 소녀는 다시 하라 케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소녀는 눈을 뜨고 에르베 종쿠르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문장으로 소녀를 바라보는 프랑스 남자, 프랑스 남자를 바라보는 소녀, 남자와 소녀 간의 강박적 사랑의 시작이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된다. 에르베 종쿠르가 돌아가기 전, 소녀는 일본어로 된 하나의 쪽지를 건네는데, 에르베 종쿠르는 프랑스로 돌아온 후, 일본 여인 블랑쉬를 통해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다. “돌아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예요”.     


여기서 일본 여인 블랑쉬와 일본어는 이야기 전달 코드가 된다. 에르베 종쿠르는 훗날 일본어로 된 익명의 편지를 받고 블랑쉬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하는데, 이 편지는 사실 아내 엘렌이 프랑스어로 썼고, 블랑쉬가 일본어로 번역한 다음 에르베 종쿠르에게 보내진 편지였다.  

  

아내 엘렌이 죽은 후, 그녀의 무덤에 놓인 진한 남색 꽃송이를 발견한 에르베 종쿠르는 자신이 받았던 긴 편지의 주인이 바로 아내 엘렌이었으며, 그 전달자가 블랑쉬였다는 사실을 유추해 낸다. 아내 엘렌이 굳이 편지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익명으로 남편에게 전달한 이유에 대해 블랑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시겠어요. 무슈? 부인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자신이 바로 그 여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난 부인이 그 편지를 읽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알 수 있습니다.”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감정, 만질 듯 서술된 사건, 어린 소녀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 질투로 표현된 아내에 대한 산만한 사랑, 작가는 자세한 설명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이미지를 배치하여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서사

    

“지금까지 살아온 알 수 없는 모습들을 호수 위에 그려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산들거리는 잔물결 속에서 일렁이는 알 수 없는 그의 인생을”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러나 작가의 감성, 즉 “잔물결 속에서 일렁이는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고뇌가 무엇인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 작가는 도대체 왜 이 소설을 쓴 거야?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글을 쓰는 이유야 오만가지겠지만, 작가 혼자 알 수 없는 감성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다소 괴롭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바리코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종종 문학 비평의 주제이기도 한데, 비평가들은 조각난 타임라인과 다중 내레이터와 같은 색다른 서사 구조와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모호함과 신비감이 바리코 문학의 특징이며, 이는 독자를 이야기에 참여시키고 끝까지 추측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마도 이 소설의 독자는 자신이 어느 이야기에 참여하여야 할지 잘 모를 것 같다. 작가가 추측해 낸 모호함과 신비감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것이 바리코 문학이라면 그가 글쓰기에 대해 내린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바리코는 그의 또 다른 작품 ‘이런 이야기’를 통해 ’ 글쓰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야기는 양탄자 같은 것이고, 그것을 직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이는 작가다. 결국, 글쓰기란 서사의 한 올 한 올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완벽히 제어하는 작업이다.”

     

이 말속에 바리코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에게 글쓰기란 이미지, 즉 그림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작가란 그림이 아닌,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림 속에 담긴 서사를 이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서사 없는 이미지     


바리코는 195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첫 작품을 썼다. 바리코가 가장 왕성하게 저술 활동을 하던 시대는 바로 일본 경제가 황금기를 거치면서 소위 ’ 왜색‘이 세계화되던 시기이다. 기억해 보면,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는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와 정원으로 둘러싸인 다다미방, 그리고 깔끔하고 미니멀한 사무실 등. 일본 미학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영화 속 일본이란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확장해 보자면 벚꽃으로 상징되는 사무라이의 감성과 근대에 정립된 고쿠가쿠(古學) 시학의 결합일 가능성이 높다. 소설 ’ 비단‘에서도 핵심 코드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블랑쉬 부인의 손가락에 달려 있던 남색 꽃송이인데, 조금 과장해 보자면 이 역시도 왜색이다.     

 

“그녀를 찾은 남자들은 진한 남빛의 작은 꽃을 한두 송이 야회복 단춧구멍에 꽂고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블랑쉬 부인이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던 그 꽃송이들을”   

  

1860년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학자들은 자신의 문명이 중국을 뛰어넘는 것임을 증명해 내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바로 고대 일본의 ’ 시‘였다.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글쓰기를 자연을 칭송하는 일본 고유의 간결한 시와 대비하면서 오직 아름다움과 감정만을 표현하는 일본의 시야말로 일본 정신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를 통해 고대 일본의 사유 체계는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사람을 윤리 도덕적으로 완성하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탐미적인 감각과 감성을 중시하면서 단순하지만 깊은 감정의 느낌과 표현을 추구하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탐미적 감각과 감성은 이 소설 ’ 비단‘에서 엘렌의 긴 편지 속에 구현된다.

     

바리코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문학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집필의 영향으로 꼽았는데, ’ 비단‘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적이고 연상적인 산문은 바리코 작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1935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으로 정리되는 장편을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그는 ”나는 일본 고래(古來)의 슬픔으로 돌아갈 뿐“(애수)이라는 말로 고쿠가쿠에 대한 결정적 문학 의지를 표출한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인으로서 최초의 노벨상을 받는다. 서구에서 받아들인 근대적 심리소설의 틀에 일본의 전통적 정신성을 담아 훌륭한 성과를 실현했다는 이유였다.  

   

바리코는 독자가 이야기 속 인물과 사건의 감정적 뉘앙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희박하고 미니멀한 글쓰기 스타일을 자주 사용하며, 줄거리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한편 이를 자연 현상을 통해 표현하는데, 이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알렉산드로 바리코가 가진 공통의 미학적 요소이다.      


”봄은 꽃, 여름은 두견새, 가을은 달, 겨울은 눈 맑고 시원하네. “ (아름다운 일본의 나)     

”그의 삶은 눈앞에서 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 (비단)          


일본식 미학에 대하여     


노벨상 수상 기념식에서 야스나리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서구를 만난 근대의 일본인이 그랬듯이 야스나리도 ‘아름다운 나’가 아닌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니토베 이나로의 무사도나 우찌무라 간조의 신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일본식 코스모폴리타니즘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근대에 있어서 세계 그 어느 민족도 절제되고 섬세한 장식, 국가 전반에 퍼져있는 세련미와 안정감에 있어서 일본인에 비교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 이후 발전된 도자기는 세계에 명성을 떨쳤고, 일본의 회화는 모네와 마네, 드가와 휘슬러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일본이 문화적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일본의 개화기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 1981년까지 살면서 ‘문명 이야기’라는 걸작을 남긴 윌 듀란트는 근대 일본의 미학이 당대 모든 나라보다도 앞선 아름다움과 창의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오늘날 서구인들은 일본 시의 난해한 의미와 절제된 간결미에 좀처럼 감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자유로운 이미니즘(iminism)을 배태한 것은 다름 아니라 중국의 시와 일본의 시였다. 일본 철학자들에게는 독창성이 부족하고 역사가들에게는 공정성이 부족하여 이들의 책이 이 나라의 무력과 외교력의 부속물이 아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날카로운 지적은 일본의 미학을 대변하는 고쿠가쿠가 결국 일본의 무력과 외교력, 그리고 세계시민사회에 참여를 위한 정치적 미학으로 이용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문학이 이를 간과한다면, 결국 일본의 겉모습만을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오래전, 중국에서 대만 출신의 나이 든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자신의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1895년 일본이 대만을 점령했을 때, 행진해 들어오던 일본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얀 얼굴에 깨끗한 군복을 입고 격식 있게 들어오던 일본군의 이미지는 대만 노인의 할아버지 머릿속에 ‘아름다움’으로 깊게 각인되었었던 모양이다.     


한 번도 대만 섬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래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던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라를 점령한 일본군을 아름답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령 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만이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였을까?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하급 무사, 즉 사무라이로부터 시작하여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가미카제에 이르기까지 이미지화된 사쿠라의 미학 속에 감추어진 무력과 외교력으로 추동되는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독창성이 부족한 일본의 철학, 공정성이 결여된 일본의 역사를 해독해 내지 못한 것이다.     


해석학적 시각에서 보자면 문학을 해석한다는 것, 그것은 역사나 그림이나 사회, 음악이나 고고학적 유물이나 과학적 사실을 해석한다는 것과 본질에서 같다. 차를 달리며 보는 두 개의 지평, 즉 지나간 지평과 새롭게 펼쳐지는 지평은 결코 분리되고 독립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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