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래 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한다.
-J.R.R Tolkien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아이였다.
잘 울고, 잘 상처받고, 밤에는 무서워서 잠도 못 자는 아이. 나의 멘탈이 약할 걸 아셨던 아빠는, 정신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밤에 혼자 산 입구를 가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뒤에 아빠가 몰래 따라오고 계셨지만, 당시엔 깜깜한 밤이 너무 무섭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몰라서 계속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놀이동산에서 자이로드롭을 2번이고 3번이고 태우셨다. 이제 안 무서운 척 연기를 해야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무서워했던 제가 발표를 못하겠다고 울었지만, 결국 울면서 단상 밑에 숨어서 발표를 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못하는 걸 억지로 한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결론적으론 나에게 이것들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셨고, 강한 딸이 되길 바라셨을 테니까.
아빠는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라고 느끼길 바라셨지만, 나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못하는 걸 억지로 한다고 마음이 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울컥, 하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들이 있다. 내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래서 이렇게 감정적이 되는 걸까. 별거 아닌 상황에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과몰입을 하고 있는 걸까.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 친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 말에 상처받고 또 이런 것에 마음 상해하는 나 자신에게 답답해지고. 그럴 때가 있었다. 항상 울컥하고 난 후 뒤돌아서면 후회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이런 일에 상처를 받는 걸까. 혹은 쉽게 화가 나는 걸까. 나만 이 모든 상황에 휘둘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수령 253년된 남해의 팽나무
오래된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의연하게 서있는다.
태풍이 와도, 눈이 와도, 그 자리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서있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나무를 관찰하며 깨달은 건,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건 ‘뿌리’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일수록 태풍을 견딘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뽑혀버린다. 그리고그 뿌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나 자신이 튼튼하면 어떤 상황이 와도 통째로는 흔들리지 않게 된다. 잠깐은 흔들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를 사랑할 줄 알면,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어떤 순간에 상처받고 화가 날 때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 있는 건 나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그 감정을 담아두지 말고 흘려보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잠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나는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일기를 쓴다. 감정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가 왜 그 말에 기분이 나빴지? 내가 왜 그 상황에 화가 났지? 돌아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빠가 바랐던 “뭐야.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하는 때가 온다.
그럼 점점 모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를 알게 될수록 '나'라는 뿌리는 단단해지고, 뿌리를 견고히 하고 나면,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흔들리는 내가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게 나를 아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나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과정이 되었다.
못하겠는 걸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억지로 몰아붙이려 하지 말자. 물론 때로는 채찍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내가 놀이동산에 가서 아빠에게 연기를 한 것처럼, 사실은 아닌데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나를 속이고 넘어가면 그 부분은 정말로 해결할 수 없어진다.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