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때는 저마다 다르다.
여전히 추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
산수유 꽃을 만났다.
기다렸던 봄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되기 전 많은 고민이 있었다. 3학년에 되어도 여전히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고, 미래가 불투명함에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바로 졸업을 하고 취준생이 돼서도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졸업해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함에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휴학을 해도 막상 뭘 하면 좋을지 몰라서 일단 영어학원 끊었다. 나름 미라클 모닝을 하겠다고 아침 8시 시간대로 신청하고, 집에서 영어학원까지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운동삼아 걸어 다녔다. 2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매일 걸어 다니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겨울, 아침, 모두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것도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나가가기를 선택했던 건 휴학 기간 동안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쉽지 않은 시간대와 날씨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가지 않는 빈도수가 많아졌는데, 그런 날 꾸준히 일어나 나가게 한 것은 바로 길다가 만난 산수유나무 덕분이었다.
그날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너무 추워서 겨울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모자를 눌러쓰고 바람과 싸우며 걸어가고 있는데 내 시야에 노란색의 무언가가 들어왔다. 온통 하얀색과 건물의 회색박에 없는 곳이었는데 노란색이라니. 자세히 보니 그건 산수유나무에 핀 꽃이었다. 그때 산수유나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여전히 이렇게 눈이 내리는 추운 날인데 나무는 사람이 느끼지 못했던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겨울을 이겨내 봄을 맞이한 것이다.
그다음 해부터는 겨울이 지나가길 바랄 때 산수유나무를 찾았다. 산수유나무의 꽃을 발견하곤 조금만 기다리면 봄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버텼다. 신기하게도 산수유꽃을 보고 나면 같은 겨울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때에 맞춰 나에게 가장 먼저 봄을 보여준 산수유 꽃을 보며,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또 어딘가 취업을 해야 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여겨지는 이 인생이라는 시간 위에서 봤을 때 내 인생이 봄이란 무엇일까, 나의 봄은 언제쯤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볼품없어 보여서 사실은 봄은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겨울의 산수유나무는 가지도 얇고 키도 크지 않아서 앙상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비교적 마을에 많이 심는 나무라 쉽게 만날 수 있음에도 봄이 오기 전까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얀 세상에 혼자 태어난 노란색 꽃은 지나가다가 누구나 돌아볼 만큼 예쁘다. 초록 새싹도 나지 않은 때 피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독차지한다.
30대의 중간을 지나고 있는 지금, 그 당시에는 그려지지도 않았던 미래가 어느새 여기 앞에 와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단 하나도 쓸모없는 것이 없었다. 나의 모든 순간순간이 쌓여서 '나'라는 존재가 되고, 때가 되면 나의 모든 것들이 양분이 되고 그에 맞춰 몽우리를 터트린다.
봄이 오는 때는 저마다 다르다. 눈이 내리는 순간에도 꽃이 피어난 산수유나무처럼.
나에게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면,
조급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나만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