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ug 19. 2022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투병기인 척 하면서 사실은 복 받았다고 자랑하는 글

 본래 이번 포스팅은 내 병에서 아주 중요한 원인인 PNH 단백질에 대해 다루려고 했다. 어느 한 문헌에 쓰여 있던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 환자의 35%는 5년 이내 사망합니다.”라는 말에 팍 쫄아서 정보를 무지하게 찾아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색창에 ‘PNH 단백질’이라고만 쳐도 이미 너무 훌륭하게 정리해 둔 글들이 많이 쏟아져 내리길래 그리고 솔직히 의학 정보 이야기만 또 하자니 별 재미가 없어서 이번 글에서는 처음 병을 진단받고 주변에 알렸을 때 어떤 반응들이었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아빠: 나의 유일한 동거인인 아부지는 자식들에게 한없이 다정하나 어쩔 수 없이 베이비붐 세대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로, 처음 내가 동네 내과에서 대학 병원으로 연계되었을 때 그런 거 다 연계해주고 돈 받는 거라고 의심부터 했다(아이고 아부지). 그런데 검사 결과가 자꾸 요상하게 나오고 무엇보다 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거나 손에 힘이 풀려 물병을 놓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몇 번 목격하고 나자 지금은 그래도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구나라고 인지하신 것 같다. 시간이 되시면 나를 병원까지 왕복으로 태워다 주시는 등 그래도 가족들 중에서 가장 신경 써주고 계신다.


엄마: 우리 엄마는 좀 독특한 인물로, 둘째 동생이 성인이 된 순간 엄마로서의 역할에 파업을 선언한 뒤 독립을 한 사람이고 그 후 실제로 자식들의 생일을 포함해 일 년에 세, 네 번 정도 밥을 차려주는 일 외에는 일절 돌봄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내 병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암벽 등반, 스키 등을 주축으로 다양한 운동을 섭렵한 운동광이라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 한마디만 내게 남겼다. 엄마가 나보다 오래 살게 분명하다고 농담하고는 했는데 이 병에 걸리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생들: 남동생이 둘 있는데 당연히 관심 없다. 나도 자세히 말 안 했다.

 

할머니: 올해 88세이신 것 치고는 앉은자리에서 빨간 소주 두 병을 올킬하는(...) 실력의 소유자로 정정하신 편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으신지라 다리 등이 불편하신데 내 병을 알았다가는 난리 나실게 뻔해서 말 안 했다.

   

친구들: 나에게는 세 번째 직장에서 만나 둘도 없는 사이가 된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나의 진단 소식을 듣자마자 난리가 났고,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설명했음에도 그런 게 어딨냐며 각종 건강식품을 한 아름 사서 안겨 주었다. 그리고 꽃과 무알콜 칵테일과 마라탕과 정성 어린 네 통의 손편지가 함께하는 질병 축하 파티도 열어주었다. 요즘 기운이 많이 없어 카톡 답장을 잘 못하고 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수시로 톡이 온다. 몸은 좀 어떤지, 오늘 달이 예쁜데 보고 있는지 같은 따뜻한 관심들이 카톡함에 소복이 쌓인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직장 동료들: 진단 이전부터 몸 상태가 이상해서 휴직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착한 동료들은 나를 잊지 않고 여러 방법을 통해 걱정해주고 응원해 주었다. 회사 메일로 보낸 병원 진단서를 보고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도 연락해서 캐묻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휴직 연장을 처리해주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를 기다려준다.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언니: 피는 안 섞였어도 누구보다 내 친언니 같은 ○○언니. 본 투병기 1편에서 내 건강의 이상을 감지한 애인 분을 둔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약 3년 전 모 친목 모임에서 만났다. 그저 느슨할 수도 있었을 인연인데 우리는 서로가 같은 종자인 것을 첫눈에 알아보고 말았다. 하필 사는 동네도 가까워 수시로 만나 어울리며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좋은 게 없으면 사서 안겨주며 삼 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언니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든 가족이 되었다. 처음 여러 가지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을 들락날락하던 때, 골수 검사에 같이 갈 시간이 되는 보호자가 없어 난감했는데, 언니가 검사 후 잘 걷지 못하는 나를 케어해야 하는 보호자 역할을 당연하다는 듯이 나서서 해주었다. 거의 하루를 다 쓰고, 운전까지 해줘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리고 나서도 수시로 연락해서 괜찮은지 물어봐준다. 나는 진짜 복 받은 사람이다.

  

정신과 선생님: 사실 이 ‘주변 사람 반응’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5년째 다니고 있는 정신과의 원장 선생님이다. 이미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분인걸 알고 있어서 오래 뵙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 내 병을 처음 말씀드렸을 때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다. 선생님의 가까운 사람이 혈액암 투병 중이어서 더 감정이입이 된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병에 걸린 이후 이렇게 나의 증상에 따른 어려움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 해준 사람은 처음이라 깊은 감동을 받았다. 혈액과 관련된 병이란 게 장기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고 어떤 때는 멀쩡한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나 활동을 해야 할 때 제약이 따라서 어려운 병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정확한 분석이 마음에 위안이 많이 되었다. 슬프게도 어려운 병에 걸리는 바람에 다들 고마운 걱정을 해주는 것과 별개로 병에 대한 이해와 공부는 나 혼자서만 해나가야 해서 꽤 외로웠던 것 같다. 그것을 오늘 선생님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선생님은 안타까워서 한숨을 푹푹 쉬시는데 나는 그 앞에서 어쩐지 마스크 아래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생님은 이미 나를 여러 번 살리셨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큰 힘을 주셨다. 부담되실게 뻔해 표현은 안 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괴롭힐 예정이다.

    

만콩이: 나의 동거 고양이 만콩이는 당연히 내가 투병 중인걸 모르지만, 어쨌든 한결 같이 나를 사랑해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냥 만콩이 자랑이 하고 싶었다.


예전에 직접 제작해 주변에 배포한 만콩 스티커 이미지. 자랑할만 하쥬? 귀여워 미쳐벌여!♡_♡

    

 이상 쉬어가는 느낌의 글이었다. 겨우  번째 글만에 방향을 바꾼 나란 인간, 스스로도 웃기지만 이런 기록도 남겨두면 좋을  같았다. 그래도 양심상 투병 이야기를  하자면, 2회에서 밝힌 대로 현재 2주째 스테로이드와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주저앉거나 물건을 놓칠정도로 팔다리에 힘이 풀리는 증상은  이상 나타나지 않는데,  복용 일주일 정도 경과하였을  3 정도 가슴 부근의 근육이 결린 것처럼 아파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  문헌에  병이 적혈구 파괴로 인한 근육통을 동반할  있다고 적혀있었어서, 3 뒤에 있을 진료  의사에게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병의 증상  하나로 여성의 경우 월경과다가 있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일주일째 월경 중이나(원래 평균 5) 피가 모자라서 그런 건지 뭔지 양이 살짝 비치는 정도이다. 이것도 진료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 2  진료  혈소판 수치가 계속 18000이라 혈소판만 긴급 수혈을 받았는데 이걸 이야기  했다. 전혈 수혈은 2 맞는데 5시간이 걸렸는데 혈소판은 1 맞는데 30분도  걸리더라.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피검사의 결과가 호전으로 나오면 계속 약물 치료만, 호전도가 낮으면 주사제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입원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돈도 돈이지만 불편하기는 좀 불편한가. 제발 검사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약을 엄청 열심히 챙겨 먹고 있다. 


   

 매주 한 편씩 제 투병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일기로 기록해가며 이겨 내보고자 합니다. 다소 특수한 정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2: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이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