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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살리 Aug 04. 2021

안경점에 간날

고양이 남편. 

안경점에서 남편이 내 손을 꼭 잡더니 말했다.


"어디 가지 마. 내 옆에 있어.  나한테 뭐 중요한 거 물어볼 수도 있단 말이야." 

남편의 시력이 갑자기 나빠져 방문한 대형 쇼핑몰 내의 안경점. 우리 차례가 오지 않자 심심해져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나에게 남편이 신신당부했다. 


15년을 한국에 살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 혼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 안경점이 낯설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까지 안경 한번 쓰지 않았던 남편에게 한국의 안경점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 당연할 테다. 심지어 난생처음 듣는 전문적인 한국어 용어들이 나올 테니 바짝 긴장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런 남편을 잘 알기에  "알았어, 어디 안 갈게. " 하고 일단 안심시키고는 혹시나 모를 나중을 위해 짓궂게 조건을 붙였다.


"그럼 우리가 미국에 살면 자기도 다 도와줄 거지?  "

"당연하지. 저번에 갔을 때도 다 해줬잖아~"

"아닌데~ 미국에서도 계속 혼자 없어져 버리고, 그때 마닐라 갔을 때도 오히려 나한테 시켰잖아. " 

"아 ~ 그건 ~ 하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남편의 시력검사 차례가 때마침 돌아왔다.  

고양이, 아니, 고양이 중에서도 완벽한 야생 길고양이 성격의 남편은 일단 새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온 신경을 곤두세운 후 주변을 경계한다. 남들보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주변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기 시작한다. 특히 외국에 나갔을 때는 신경이 배가되어 곤두서곤 한다. 완벽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었으니, 그만큼 긴장을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일본 여행을 함께 같을 때는 언어 때문에 긴장하나 보다 했는데, 필리핀에 여행을 같이 다녀온 후로는 단지 언어만이 이유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닐라의 호텔 숙소에서 남편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얼음이 필요한데. 사 와야 하나?"

"프런트에 말하면 되잖아. 얼음 갖다 달라고 해."  

"자기가 말해주면 안 되나?" 

"자기가 해봐. 여기 필리핀이야! 영어 다 통해." 

"아... 근데 나보다 자기가 더 잘할 것 같아서."


이게 무슨 소리지? 얼음을 가져 다 달라고 부탁하는데 더 잘하고 못하는 게 있었던가? 심지어 당신은 영어 네이티브인데 왜 모국어가 영어도 아닌 내가 더 잘할 거라고 믿고 있는 거지?  라고 많은 생각이 교차하던 중 남편이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나저나 정말로 프런트에서 얼음을 갖다 주긴 하나? " 

"알았어. 내가 물어볼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얼음을 요청했다. 

그래. 남편은 고양이다. 낯선 상황에는 몸을 일단 움츠린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얼음을 요청하는 것은 

아직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생각이 수만 개일 테다. 정말로 얼음을 프런트에 요청해도 되는 건지, 실례인 건지, 부탁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면 자연스러울지...


처음엔 왜 이렇게 조심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건지 남편을 추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화기를 들어 프런트에 얼음을 요청하는 것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남편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남편을 통해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만 가지 고민을 하기 전 행동에 옮기는 나는 행동력 있고 민첩하긴지만 한 가지를 깊게 진득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남편은 만 가지 고민을 하느라 행동력은 조금 더디지만 그만큼 사려 깊고 내가 못 보는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우린 이렇게 나와 다름을 통해 가르침을 얻나 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수많은 중심들의 세상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나와 다른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건 내가 남편을 알기 전엔 모든 미국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누구랑이든 쉽게 말 걸고 살갑게 대화하는 미국식 프렌들리 함이 몸에 베어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었다. 영화에서처럼. 그런데 막상 미국인 남편과 살아보니 우리 남편은 그 정반대였다. 전형적인 미국인 성격을 예를 들자면 남편의 아버지인 우리 시아버지이다. 아버님과 함께 다니면 여기저기생판 모르는 낯선이들에게 말을 거시는 터라 고양이 남편을 계속 난처하게 만드셨다. 아버님 어디 가셨지 하면 낯선 행인과 이야기하며 손가락으로 우릴 가리키고 계신다. 분명, "My Son~~~(내 아들이~~~)."로 시작해서 우리 이야기를 하고 계실 테다.

한 번은 한국에서 함께 길을 지나다 'YALE'이라고 쓰여있는 예일대 스웻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그에게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치기 시작하셨다.  


"OH!!!!! Congratulations on championship!! Go YALE!!! "

(오!!! 우승을 축하해요!!!! 예일 파이팅!!!!!)


그때 엄청 당황해하던 행인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버님은 해맑게 웃으시며 얼마 전 미국 라크로스 챔피언쉽에서 예일대가 우승을 했다며 흥분하셨다. 그나저나 그 행인이 조금 당황한 거 같다며 왜 그런 것 같냐며 우리에게 물으셨다. 아마 그 사람은 예일대 출신이 아닌 거 같다고 말씀드리자, 왜 예일대 생이 아닌데 예일대 스웻셔츠를 입고 있는지 의아해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행인도 참 놀랐겠다. 그에겐 그냥 별생각 없이 사입은 영어 로고가 박힌 옷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버님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전형적인 미국인 특유의 프렌들리 함을 갖고 계신데, 그래서인지 남편의 성격과 극도로 대조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웃기다. 시아버지를 '강아지'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의 사회에서 좀 그렇지만, 아버님의 성격을 굳이 동물에 비유하자면 '강아지'에 가깝고 남편은 영락없는 '고양이'였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홀로 길고양이 세마리나 데리고 살고 있었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데려오다 보니 결국 세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처지가 자기랑 너무 비슷해 연민을 느끼곤 데리고 올수 밖에 었었다고 했다. 

"얘네도 나처럼 길에서 왔자나."

자식들을 이토록 사랑하는 진정한 고양이 아빠이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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