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진짜 우정의 힘을 빌리던 어린 다은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자신감이 없으면서 있던 때를 기억한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맞닥뜨린 갖가지 충격과 새로움을 서서히 잊어갈 무렵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방학을 지내는 동안엔 별생각 없이 편안했는데, 학교에 나오자마자 내 정체성이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내가 어울려 다니는 애들 때문이었다.
중학교 입학식 날. 나는 좀 논다는 애들에게 ‘찜’을 당했다. 나보다 두세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애가 저 멀리서 나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 것이다. “야 얘들아. 쟤 좀 이쁘지 않냐?” 그러자 걔를 둘러싸고 있던 서너 명의 애들이 한 번에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디 학교 나왔어?” “그럼 OOO 알아?” “아 참. 이름이 뭐야?” 그러더니 갑자기 나보고 자기들이 있는 뒷줄로 오라고 했다.
같은 반으로 배정된 애들 중에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없던 터라 내 옆에 선 애부터 사귀어볼 참이었다. 이름이 예뻐서 써봤던 학교에 덜컥 배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무려 4지망이었다. 중학교가 발표되자마자 나는 이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검색해야 했다. 청원군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청주의 웬만한 학교가 다 멀었지만 이 학교는 생판 처음 듣는 동네에 있었다.
뒤로 가니 여섯 명 정도의 애들이 대열을 벗어난 채 떠들고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얘네끼리는 이미 다 아는 것 같았다. 그 무리에 내가 갑자기 끼는 게 어색했다. 분명 오늘이 입학식인데 나 혼자 전학을 온 기분이었다. 아니, 좀 더 지켜보니 모두가 어색하고 뻘쭘한 이 상황에서 이 애들만 여유로웠다.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대범했다.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분위기는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서 이 몇 명을 뺀 나머지는 더욱 조용하게 쭈뼛댔다. 내가 이쪽 무리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운으로 들어온 느낌이 강했지만 처음이 뭐가 중요해. 앞으로 더 친해지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각자 앉았던 의자를 들고 교실로 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애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교실에 가자고 했다. 내가 “의자는?”하고 물으니까 “아 괜찮아. 누가 들고 오겠지 뭐.” 하며 킬킬댔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행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두 개를 들면 들었지, 도망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거처를 걔네들에게 확실히 두었던 나는 주춤주춤 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발견하고 혼내지 않았다면 끝까지 교실로 갔을 것이었다. 괘씸죄로 의자를 두 개씩 들게 된 애들은 씩씩 댔지만 그 끝에서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 날 이후로도 당황스러운 날들은 계속됐다. 오히려 당황의 크기는 커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큰 소리로 떠드는 우리 대화를 들으며 반 애들이 전체적으로 웃을 땐 뿌듯하고 으쓱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이 낯설었다. 선생님의 귀에 들리도록 욕을 할 때, 복도를 지나가는 장애인 친구를 대놓고 놀릴 때, 탈의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울 때, 교실 바닥이 흥건해지도록 침을 뱉을 때마다 나는 어떤 생각도 골똘히 할 수가 없었다. 대충 보고 대충 들으면서 그 상황을 흘려보냈다. 정확히 보려고 하거나 객관적으로 따지다 보면 이 모든 걸 납득하며 견디는 내 시커먼 이유를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학교 내에 펼쳐져있는 이 무리의 위세에 껴있고 싶었던 욕구를 인정하는 게 어릴 땐 참 어려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부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 애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내겐 그럴 용기도 없었다. 선생님께 반항을 하다가도 착해 보이고 싶었고, 친구를 놀리면서도 선생님께 이르러 가는 친구를 막을 치밀함이나 뻔뻔함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그건 다행이면서 불행이었다. 끝끝내 그 애들과 비슷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껴있으며 내가 누리길 바랐던 안도감은 아주 잠깐이었으며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았다. 나는 무리일 때만 강했다. 복도를 휘젓고 다니고 동갑의 친구들이 자기 앞에서 짝다리도 짓지 못하게 만드는 애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리에서의 내 위치를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야려본 건 아니었지만 야려본 것처럼 눈을 떠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만 하는 급의 ‘친구’라는 걸 말이다.
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나일 수 있었다. 두 달간 걔네와 논 날은 하루 이틀에 불과했다. 집이 멀어서인지 내가 별로 생각이 안 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걔네를 반쯤 잊고 사니 너무 즐거웠다. 멍했던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애써 두껍고 둔하게 쌓은 껍질에서 오래간만에 나온 기분이었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부끄럽지도 낯설지도 않은 날들을 사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학교에 나오니 더 친하게 뭉쳐진 무리가 보였다. 방학 내내 만난 데다 멀리 놀러도 갔다 온 모양이었다. 열네 살의 내가 방학 동안 나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 무리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면 멋있겠지만. 나는 2학기 동안에도 기어코 그 무리에 붙어있었다. 중학생의 정체성이란 하루 만에도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모래성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물과 바람과 손과 발까지 들어오는데 내 모래성은 너무도 연약했다. 며칠 만에 나는 이리저리 깎이고 부서졌다. 내가 속해있는 무리 안에서 자신감을 잃어갈수록 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날들을 버티는 힘을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몇몇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얻었다는 점이다. 가끔 그 애들과 떨어져 혼자 남았을 때 떠들던 반 친구들, 수업 시간에 사이좋게 킥킥 대던 옆자리 짝꿍과의 대화. 우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모르게 진짜 우정의 힘을 빌리던 어린 다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