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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Aug 18. 2020

아마와 아마

우리는 꽤 자주 프로의 자리를 벗어난다

예전에 썼던 다이어리를 구경하다가 한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노래 가사를 적어놓은 페이지였다. 이런 가사다.      


손 끝에 상처가 하나씩 늘어가

주름을 짓던 그대 얼굴 생각해

나보다 아프게 상처를 감싸던

그때의 마음은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순간에도 그대가 있다면

고통도 허전도 몰랐을 거라고

한밤의 고요도 한낮의 들뜸도

어느 것 하나 밉지도 않고     


밥을 거를 때 잠을 못 잘 때

가만히 걷다 눈물이 흐를 때에도

네 어깨에 기대어

모든 걸 묻고 또 웃었을 텐데     


이 가사를 읽는 사람 중에 무슨 노래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던가? 아무도 없다에 내 동생의 아이패드를 건다. 혹시 가사가 마음에 들어 책을 잠시 덮어두고 검색해보려 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당장 치킨을 시켜먹어야 한다. 자축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이 가사를 쓴 사람이 바로 나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잘 쓴 가사는 아닐 수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고통, 허전, 한밤, 고요, 한낮, 들뜸 등. 큼직큼직한 단어가 연거푸 나와 부담스러운 느낌도 든다. 또 부를 때의 발음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마디 하자면 멜로디와 박자에 맞춰 가사를 넣으면 느낌이 꽤 달라진다. 그냥 읽는 것보다 최소 10배는 낫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맞춰서 썼던 노래를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불안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이 노래의 작곡가이자, 내게 작사를 부탁한 유민주는 음악을 전공한 교대생이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다. 우리는 <바다유목펜, 제철 글쓰기 워크숍>에서 만났다. 청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인 추연신 작가님께 제안을 받아 합동으로 진행한 워크숍이었다. 추 작가님이 바닷가에서 주운 나무로 펜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나는 그 펜을 활용해 글 쓰는 것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워크숍에 딱 두 개의 공석이 생겨서 내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리고 선착순 신청을 받았다. 그때 선착순 1,2 등을 차지했던 사람이 유정화와 유민주였다.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라는 것 빼고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알고 보니 민주는 이 두 시간짜리 워크숍을 들으러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끝나면 하룻밤을 청주에서 자고 대구로 간다길래 “내가 뭐라고....이 워크숍이 뭐라고...!”를 계속 외쳤던 기억이 난다.      


워크숍이 끝나고 유정화와 유민주, 그리고 나는 앉아서 몇 시간을 떠들었다. 처음엔 팬미팅 같았다. 정화와 민주가 번갈아가며 나에게 칭찬과 감탄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을 읽고 반응해주는 것에 내가 고마워해야 할 판인데, 둘은 내게 고마워했다. 또래에게 이런 대접을 받기도 민망스러워서 나는 서둘러 말을 놓자고 했다. 정화야 민주야 하고 이름도 막 불렀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어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다. 요즘 뭐하고 사는지를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작사를 하고 싶은 열정이 넘칠 때였다. <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고, 팝송에 한글 가사를 붙여 보기도 했다. 솔직히 작사라는 일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할 땐 조심스러웠다. 꿈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까 봐 자꾸 내가 먼저 현실적인 척을 해버렸다.


“난 꼭 작사를 해보고 싶어.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아. 물론 노래도 많이 듣고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 작사

가 좀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치?”


나는 작사를 하고 싶지만, 이렇게 말해놓고도 못할까 봐 두렵고, 말을 계속해야 내가 진짜 하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작사를 껌으로 보는 건 절대 아니라는 말을 구구절절 덧붙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유민주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어! 언니. 제가 평소에 피아노 치면서 작곡을 좀 하는데... 제가 작곡해서 하나 보낼게요! 언니가 가사 써주실래요? 그럼 나도 얼른 작곡하고 싶을 것 같아요. 너무 좋겠다.”      


그렇게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진 지 이주도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유민주는 카카오톡으로 음성파일을 보냈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민주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가 녹음되어 있었다. 대충 흥얼거린 가사는 가이드로 부른 것이니, 언니 마음대로 가사를 붙여주세요 라는 메시지도 함께.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멜로디에 놀래버린 나는 얼른 작사를 시작했다. 먼저 다이어리에 가사 음절수를 세서 빈칸을 만들어 놓고, 유민주의 대화창을 카톡 제일 위에 고정한 채 걸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위에 적어놓은 가사를 썼다. 그때 쓴 가사엔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깔려있다. 거창하지도 않은, 아주 소박한 원망이다. 어쩌면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이 모든 일이 단 한 명에게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가사를 완성시키지 못했다. 나도 기대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반 정도 쓴 가사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작정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일주일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가사를 써놨던 다이어리 페이지가 하루하루 뒤로 넘어갔다. 정해진 기한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이제는 줬어야 했을 기한이 지나자 이제 와서 보내기가 미안해 더 보낼 수가 없었다. 언젠가 완성해서 보내줘야지. 매일 다짐만 하며 마음 무겁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휴대폰을 바꿨다. 떨어트려서 액정이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급하게 새 휴대폰을 산 것이었다. 카카오톡은 커녕 앨범이나 주소록을 백업할 시간조차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민주의 대화창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더 이상 음성파일을 들을 수 없다는 뜻이고, 늦게라도 가사를 써 보내겠다는 게으른 결심이 물거품이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걷다가 멈추고 혼자 탄식을 뱉었다. “이다은 바보..... 망했다.”     


계절이 세 번 바뀌고 유민주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작곡한 자기의 음악들로 청음회를 연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작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작곡을 하고 싶다고 꿈같이 말하던 민주였는데. 어느새 청음회를 열 정도로 여러 곡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와중에도 작사는 어떻게 됐느냐 묻는 말은 전혀 없었다. 나는 가사를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얘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구구절절 써놓은 카톡이 죄다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변명이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민주의 카톡 사이에 내 변명이 낄 생각을 하니 창피했다. 나도 희망 찬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록 가지는 못하지만 도전이 된다, 곧 시간 낼 수 있으니 날 잡고 만나 청음회 얘기를 하자’고 답장을 보냈다. 민주는 내게 이야기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언니의 두 번째 책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그 애에게 뭘 해주었는지도, 두 번째 책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하트 가득한 답장을 보냈다. 민주의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 내 불확실함으로 덮이지 않기를 바랐다.     

 

민주가 청음회를 한 지 1 년 하고 5 개월 정도가 지났다. 나는 이제야 두 번째 책을 낸다. 첫 번째 책을 출간하고 거의 3년 만이다. 그 사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글쓰기였다. 그 외에 작사, 유튜브, 독립출판 등이 하고 싶은 일로 여러 번 거론되었다가 조용히 들어갔다.      


민주도 나도 어느 분야에서는 프로일 것이다. 꼭 잘하고 싶은 일에서 프로가 아니어도 각자의 인생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인 일이 있을 테니 말이다. 글쓰기의 프로가 되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는 카페에서 프로가 된다. 혼자 일하기, 음료 만들기, 마감 청소하기 등을 여러 기술을 가지고 해낼 수 있다. 학생들 여럿과 찍은 프로필 사진으로 유추하자면, 민주는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유용한 정보와 지식, 태도를 갖춘 프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꽤 자주 프로의 자리를 벗어난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일과는 별개로 하고 싶은 일이 우리 안에는 있기 때문이다. 기꺼이 아마추어가 된다. 잘 못하는 걸 알면서도 글을 쓰고, 작사를 하고, 작곡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나처럼 어쩌다 민주 같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혈기만 왕성한 쩌리 아마추어가 어떤 유혹과 위기에서도 살아남은 상급 아마추어를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또한 꽤 오래 버텨온 글쓰기 아마추어 이다은이 아니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만남이다.     


아마와 아마의 만남은 프로와 프로의 만남만큼이나 영감과 위로와 도전을 준다. 어떤 면에선 아마들의 만남이 더 끈끈하고 눈물겨운 듯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민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보내준 노래를 날려버려서 가사 작업을 더 진행할 순 없었지만 써놓은 가사만이라도 종이에 옮겨 적어 보낸 것이었다. 부끄러운 카톡이었다. 이 대단한 유민주는 내가 가사를 보낸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음성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가사가 너무 좋아서 묵혀놨던 곡을 꺼내 다시 입혀보는 중이랬다. 처음에 받은 곡과는 완전히 다른 노래였는데 멜로디에 가사가 찰떡같이 붙어 있었다. 노래를 마저 완성해서 보내겠다던 그녀는 아직 무소식이다. 그게 1년 전이니 우리 1:1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아니, 유민주와 나는 아마 vs 아마 같은 대결구도가 아니니 이 말은 취소하겠다. 나는 여전히 작사가 하고 싶다. 유민주가 여전히, 혹은 요즘 들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또다시 아마와 아마로 만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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