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차다. 유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날씨이다. 한낮에는 햇볕이 따뜻했는데. 그늘이 있는 부위는 시렸지만.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지하철을 탔다. 시내로 나갔다. 서점에서 책을 골랐다. 책을 샀다. 책을 읽었다. 글을 썼다. 공원으로 갔다. 볕을 쐤다.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을 구경했다. 글을 읽었다.
다시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불었다. 밤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음악을 틀었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또다시 글을 썼다. 글을 고쳤다. 책을 읽었다. 계획한 일은 다 해냈다. 브런치 라이킷 숫자도 순조롭게 올라갔다. 그런데도 마음이 허망했다.
안마의자에 앉았다. 책을 읽었다. 음악을 틀어놓았다. CCM 찬양 플레이리스트를.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울컥했다. 마음이 초라해졌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울컥하는 심정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알 수 없었다. 마음의 비밀을.
마음의 비밀은, 어쩌면 노래하고 있을지도 몰라. 나도 모를 언어로.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삭이고 있는 거야. 마음의 창문 옆에서. 석양은 창을 불태우고 있겠지. 나는 볼 지도 몰라. 볕이 들지 않는, 소파 위에 쪼그려 앉은 나를.
기도를 하면, 주님을 찾으면, 내 마음은 다시 웃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까진. 하지만 난 도저히. 나아갈 수 없어 그분에게. 오늘도 죄를 지었거든. 그분이 살려주신 목숨인데, 나는 그걸 알지도 못해. 지금도 날 비웃고 있는 내 마음은.
지금 이 시간, 그분이 울고 있는 내 곁에 와 주시길 바라. 와 주시길 바라. 어떤 문학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마음의 우울을. 마음의 공허를. 경작할 수 없는 밭에 계속 씨를 뿌리고, 가라지를 돌보는 내 손을. 그분이라면 붙들어 주실 수 있겠지.
이것이 내 매일매일의 반복. 몇 해 동안의 반복. 지하철속도 같은 일상, 습관적인 죄,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 내 소파에는 청보랏빛 제비꽃이 자라. 난 이걸 꺾지. 하지만 꽃은 꺾이지 않아. 내 마음은 아파해. 마음이 욱신거려. 야구 배트로 수십 번은 맞은 것처럼. 마음이 조여 와. 마음이 흔들거려. 꿈에서 봤던 뼈 없는 남자의 머리처럼.
찬양 속에서 들려주시는 말씀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이 질병이 치료받을 수 있을까. 옆엔 아무도 없네. 책 몇 권과 조명 불빛. 그리고 발밑의 강아지가 전부. 남동생은 자고 있고. 몇 시간째. 강아지는 날 위로해 주려 내 발을 핥아주네. 강아지는 종종 이렇게 해줬지.
그래도 계속 죄를 짓게 되겠지. 계속 손에 든 쟁기를 놓지 못하겠지. 악이 실존한다면 말이야. 누구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밭 끝에 서 있는 두 천사. 세라핌과 케루빔. 그리고 그 사이에 서 계신 분. 흰 옷을 입은, 혀에선 권능의 검. 피같이 붉은 눈. 그분의 보좌 앞에, 내가 설 수 있을까? 떳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