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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Oct 10. 2022

오늘의 나

 나이가 들수록, 오늘의 내가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들은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 더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 왜 저래?'. 보통 조금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누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 그를 이해하거나 문제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해 보던 질문이다. 왜 저러는지, 어떤 성장 배경과 후일담을 가지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를 향한 생각의 여정 중에, 평범하고 개인적인 경험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잘한 순간들이 실은 지금의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꽤 어두운 기억임을 알게 되었다. 무탈하고 구김살 없는 쉬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린 시절 환경의 변화에 종종 적응해야 했고 그 순간마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과거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갑자기 던져진 낯선 곳에서 겪었던 감정들은 유난히 생생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의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여름 당시 할아버지의 운전기사였던 김기사 아저씨가 나를 잠시 돌보던 날, 아이스크림을 사주신다 해서 함께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 당시 여의도 미성 아파트 앞 상가로 들어갔는데, 바닥은 황갈색의 큰 타일로 되어있었고 벽은 광택이 있는 붉은 갈색의 대리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했던 것은 아이스크림 냉동고의 냄새다.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악취도 아닌, 그 곳에서 날법한 냄새. 오랫동안 얼어있던 식품의 냄새와 아이스크림의 단내가 프레온 가스 냄새와 뒤섞여 있었다. 어른이라면 허리를 숙여, 작은 아이라면 까치발을 들어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냉동 시설 안에는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었다. 굉장히 낯선 이 풍경 속에서 하나를 고르라는 말에 내게 가장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을 골랐다.

 '이거? 이건 너무 많을 텐데?'  

당황한 아저씨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품 ‘하드' 류의 아이스크림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콘으로 된 것이 최소 6개는 들어있는 아이스크림 한 박스를 고른 것이다. 미국의 슈퍼에서는 메로나, 스크류바, 비비빅처럼 단품으로 파는 하드류를 잘 보지 못했었고, 상자 안에 든 '패밀리팩'이나 파인트 통에 담긴 게 일반적이었다. 처음 와보는 이상한 공간에서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아이스크림과, 아리송해하는 아리송해하는 아저씨의 표정에 긴장이 되었고 표현하는 것만큼 수긍하는 것도 어려워서, 그래도 그걸로 하겠다고 했다. 내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한 손엔 아저씨의 손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녹아서 끈적이던 콘 형태의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슈퍼에서 걸어 나왔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동네 슈퍼나 대형 마트의 아이스크림 냉동고의 냄새를 지나칠 때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갈색 타일의 슈퍼마켓과 여름 뙤약볕에 끈적이던 내 오른쪽 손.  

 여름이 끝나갈 즈음 처음으로 새로운 학교에 등교했다. 아이들은 외국에서 온 나를 외계인 대하듯 하였고, 내가 알던 밝고 안전하고 다정한 학교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었다. 계단과 복도는 차고 어두웠다. 그 어두운 계단을 통해 줄을 서서 급식소에 들어가는데 나는 내가 죄를 지어 감옥에 온 줄 알았다. 학교 구석구석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창을 향해 들어오는 빛은 창백했다.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앉을 수 없었고 반드시 한 반이 모두 함께 앉아야만 했다. 반에서 유난히 깍쟁이 같았던 '은주'라는 아이가 "쟤 외국인이니까 수저 주지 마."라고 주변 아이들에게 지시했다. 무섭거나 속이 상했다기보다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가 궁금했다. 철 식판에 밥과 국, 배추김치와 동그랑 땡 같은 반찬이 담겨 있었다. 국에는 가느다란 콩나물이 5개 정도 떠다녔다. 낯설고 초라한 음식을 보니 앞이 캄캄했다. 어린나이에도 한동안은 시련뿐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어떡하지.’ 밥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내게, 왜 안 먹느냐는 맞은편 같은 반 아이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배가 아프다고만 말했다. 이것이 한국으로 돌아온 초등학교 1학년, 나의 첫 점심시간이었다. 낯설고 불편한 한국의 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갔다.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호칭을 몰랐다. 세스 킴이라고  수는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달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대신 선생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는데 그게 굉장히  일이었나 보다. 엄마도 놀랐지만 내가 몰라서 그랬으려니 하고 별말 없이 함께 집에 왔다. 나는 끝까지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폐지를 모아 오라고 했다. 엄마도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그게 뭔지 선생님께 묻자 우유갑 같은걸 깨끗이 씻어서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학교에선 이걸 어디다 쓰려고 가져오라는 것이며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일까? 엄마도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이해 가는 선에서 준비해 간 재활용품을 보고 선생님은 어이없어하며 나를 바보 취급했다. 나뿐 아니라 엄마도 경우 없는 학부모라 생각했을 것이다. 잘라 펼치지 않은 작은 사이즈 우유갑 3개를 씻어 봉지에 담아 어벙하게 들고 갔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도 이렇게 하나씩, 한국의 학교 생활을 배워갔다.

 한국 아이들의 방식을 나에게 소개해주기 위한 엄마의 노력 중 하나는 방문 학습지 수업이었다. 우리 집에 온 선생님은 간단한 수학 문제를 가리키며 연필로 줄을 쳐가며 읽어준 뒤 답을 하라고 했다. 엄마와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궁금한 것은 문제의 답이 아니라 왜 연필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답을 알고 있지만 조용히 학습지만 보고 있던 나의 답변을 기다리던 선생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빠르게 문제의 답을 적고는 이후 엄마에게 내 학습 수준은 현재 ‘이러이러하다 ‘고 말했다. 낯선 방식으로 답변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려웠던 나는, 답을 알면서도 마음대로 답할 수 없었다는 사실마저 표현하지 못했다.

 어린아이일수록 낯선 환경과 언어에 쉽게 적응한다는 관찰은 조금 일방적인 관점 인지도 모르겠다. 반 벙어리 같은 마음으로 낯선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때가 꽤 긴 시간이 지나서도 어두운 구름처럼 나와 함께 한다. 그 기억들이 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그때마다 조용한 반항으로 나를 보호했다. 내게 자연스럽지 않은 관점과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그 반항 중 하나였다. 또래들이 모여해야 하는 놀이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행동이나 의견을 굳이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이상한 애'로 취급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어른에 가까운 청소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그맘때의 당연함’로 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은 나를 점점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웃어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해 볼 수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데는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시각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는 나의 날 선 관점 때문에 조용히 잃어버렸을 관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는 내 방어의 파편들이 듣는 이에게 그리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었을 테지.

 태어난 곳을 떠나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돌아온 곳에서 또 한 차례 '외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의 반복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내 것이 아니며 나아져야만 한다는 불만족, 또는 불안일까? 그게 아니라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일까? 이 물음에 답하고자, 그리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들을 들추어보곤 한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잊고 있던 일들이 불현듯 나타나 그동안 가져왔던 나에 대한 인식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진귀한 보석 같은 추억들이 쏟아져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주기도 한다. 영감을 주는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오늘의 나로서 경험할수 있을까? 짧은 한 때 일지라도, 그 순간엔 내가 아는 모든 것이었고 내 일생 전부를 살았던 곳의 방식을 지금의 삶 안에서 재현하고 싶은 욕구는 그저 애틋한 미련일까? 낯설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내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내가 했던 행동들, 가지게 된 습관들, 입에 붙은 어휘들이 모이고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모습으로 내가 여기에 앉아있다. 오래전 그때, 어두운 급식실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바라보았던, 바닥에 닿지 않던 내 작은 두발을 떠올린다. 이제 그 두발을 땅에 붙이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과거로의 여정에서 어두운 기억들에 빛을 더해줄 수는 없지만 그것을 통해 스스로에게 다시금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 더 나은 나를, 행복한 나를 만들기 위해, 기억하고 싶은 좋은 순간들이 올 때면 미래의 나를 위해 바로 그 시간, '지금'에 최대한 집중하자는 것. 그리고 그 순간들만큼은 성급하게 지나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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