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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an 18. 2021

베이킹 생활의 메트로놈

파운드 케이크





  몇 년 전 베이킹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만든 것은 초콜릿 칩 쿠키였고, 그게 가능해지고 나서는 바로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다. 쿠키, 머핀, 스콘, 컵케이크, 브라우니... 여러 가지를 나열한 리스트에 체크하며 마치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듯, 갈 길은 멀지만 그래서 더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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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블루베리 머핀이나 바나나 브레드를 자주 만들었었는데, 어쩌다 거의 2년 정도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조금 자신감이 생기고나서는 멋들어진 앙트르메나 놀라운 색깔의 케이크를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으니 머핀처럼 너무 리얼하고 사람 인생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가지를 만들어 보며 내가 어떤 것을 즐기고 무엇에 관심이 가는지 배운다. 성격이 급해 너무 많은 요소도 구성된 디저트는 부담스럽고, 스탠드 믹서가 필요 없는 아이템이면 도전적이지 못하거나 게으른 기분이 들어 의욕이 안 생긴다. 이리저리 관심사가 왔다 갔다 하며, 또 방황하며 몇 년째 베이킹을 해왔지만 잊을만하면 항상 만들어 온 것은  파운드케이크가 아닐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크림치즈가 들어간 파운드케이크인데, 누구도 이 파운드케이크를 먹고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레시피 속 표현들이 생경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긴장되던 때가 있었다. 레시피의 지시를 이해하기 어려우면 내가 몰라서 그러려니 했고, 또 모르는 만큼 좋은 레시피라도 못 미더웠다. 쿠키를 만드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파운드케이크에선 나도 모르는 사이 처음으로 베이킹의 과학을 경험했다. 버터와 설탕이 light and fluffy 한 질감이 될 때까지 5분 이상 믹스하라니 도대체 왜 이걸 그렇게 오래 믹스해야 하고, light and fluffy 한 질감은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알 수 있는 것일까. 마른 밀가루가 거의 다 섞였을 때까지만 믹스하라니 그럼 다 섞지 말라고? 케이크 테스터로 찔러보아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거나 부스러기 몇 개 붙은 정도라고 한다면 대체 부스러기 몇 개를 말하는 것인지? 누구나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레시피를 써야지 이렇게 애매하고 위화감 넘치게, 독자 스스로를 바보처럼 느껴지게 레시피를 쓰면 도대체 초보자는 어떻게 과자를 굽고 케이크를 만든단 말인가. 아무튼 해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걸 만들어 볼 기회는 단 한 번뿐인 것 같고 망하면 끝일 것 같아 긴장된다.  다시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재료 준비를 해보니 여러 번 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 같다는 소리다.

 


들어보니 베이킹은 재료 계량이 정확해야 하고 재료 사이의 화학적 반응도 그렇고 상당히 과학적인 요소들이 있다던데 밀가루 한 컵을 이렇게 재는 게 맞는 걸까? 꾹 눌러 담는 건지, 아님 대강 퍼서 윗면만 깎아 정리하면 되는 것인지. 재료들이 다 실온이어야 한다고 하니 일단 버터를 꺼내놓기는 했는데 도대체 언제쯤 그 온도가 되는 것인지, 실온이라면 겨울과 여름이 다르고 사는 곳마다 다를 텐데 어디에 맞춰야 할까? 만져서 찬 기분이 안 들면 실온이 된 건가? 일단 모르겠지만 냅다 기다려보자. 일단 기다리면서 밀가루, 설탕 등 다른 것 들 계량해 놓아야겠다. 이렇게 많은 설탕이 들어간다니, 정말 이런 걸 먹으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 먼저 실온 상태의 버터와 설탕을 넣고 믹스를 시작한다. 가벼운 질감이 되도록 믹스하라고 하는데, 이 버터가 도대체 어떻게 가벼워진다는 것일까? 중고속이면 어느 속도라는 것이지? 믹스하다 보니 신기하게 버터 색이 연해지고 어떤 고체의 기름보다는 풍성한 설탕 반죽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언뜻 보이는 노란 버터는 무시해도 될까? 그런데 느낌상 아무리 그래도 뭐든 너무 과하게 하면 망쳐 버릴 것 같은데 그만 해야 하나? 큰일이다. 생각해보니 달걀을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지 않았구나. 일단 가서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남은 설탕 믹스 마저 내가 마음대로 정한 선에서 끝내고, 약간은 실온이 된 달걀을 깨서 하나씩 차례로 믹스.... 어차피 다 들어갈텐데 하나씩 차례로 믹스하라는 것은 왜일까? 달걀까지 다 넣고 섞는데 뭔가 이상하다. 달걀이 부글부글 겉도는 이 느낌이 뭔가 쎄-하다. 분명 처음 해보는 것이고 이런 광경도 처음이지만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아주 섬세한 불안감이 든다. 라면에 풀어버린 달걀처럼 버글 버글 올라온 이것을 더 믹스해도 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지  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 언 듯 보이는 그냥 더 믹스해 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 그렇게 해보기로 한다. 뭔가 해결이 되는 것 같으니 다음 순서는 바닐라 익스트랙트. 이번에 선물 받은 계량스푼이 요긴하게 쓰이네. 아무 생각 없이 사긴 했지만 바닐라 이만큼이 그 가격이라니, 이게 정말 적은 양으로도 케이크를 더 맛있게 만들어줘서 그런 건지 너무 비싸서 이렇게 조금 넣는 것인지는 글쎄 무언의 담합이 있는 것을 아닐까. 아무튼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넣으라고 해서 넣는데 재료 넣는 순서가 왜 이렇지, 내 예상과 너무 다른데.  물론 내 예상은 굉장히 근본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해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반죽 믹스는 끝났는데 상당히 묽다. 이걸 어쩐담. 이게 구워지기는 하는 걸까? 나중에 굽고 나니 떡이 되어있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팬에 버터칠을 해야 하는구나, 유산지도 깔아야 하고? 그러고 또 버터칠을 하라니 아니 이렇게 귀찮을 수가. 베이커리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는 것일까, 분명 다른 쉬운 방법이 있겠지. 일단 반죽을 담는데, 팬이 어느 정도 찰 정도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레시피 초반에 팬 크기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내 팬이 맞는 팬인 걸까? 그런 것 같기는 해서 레시피에서 시키는 대로 반죽을 담고 오븐에 넣는다. 미리 예열을 해놓은 나 자신이 좀 자랑스럽기도 하다. 뜨거운 오븐에 팬을 넣고 이제 50분은 기다려야 한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오븐 주변을 떠나기가 어렵다. 계속 들여다보긴 하는데 변하는 것도 같고 아까와 비슷한 것도 같고.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자꾸 오븐 문을 열어보고 싶다. 느릿느릿 가는 거북이를 구경하는 어린 고양이가 된 기분이다. 한 30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윗면이 제법 올라와 갈색이 되어 간다. 이제부턴 정말이지 마라톤의 마지막 순간을 보는 기분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가운데가 쩍 갈라지고 덜 익은 연한 색 반죽이 보인다. 이게 괜찮은 건가? 사라리 파운드는 저렇게 갈라지지 않았고, 윗면이 무늬 없이 고운 갈색 빛이었는데? 점차 갈라짐이 커지고 윗면이 아주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된 것 같아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타이머의 알람이 울려 허둥지둥 오븐 문을 열고, 케이크 테스터로 구움 정도를 체크하기 위해 하니 긴 이쑤시개 꼬지를 들고 와 가운데를 푹 찔러본다. 윗면이 생각보가 너무 익다 못해 약간 탈 것 같지만 축축한 반죽이 묻어 나오는 걸 보니 이건 정말 모르는 내가 봐도 덜 구워진 게 맞다. 겉이 이렇게 진해졌는데 괜찮을까? 한 2분만 더 구우면 되나 싶어 좀 더 굽다 다시 한번 찔러보는데도 역시 덜 익었다. 완성되어가는 파운드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그렇게 테스트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드디어 속까지 익은 것 같고, 더 이상 지체하기도 싫어 오븐을 끄고 팬을 꺼내기로 한다. 한 김 식히라고 했으니 마음은 급하지만 이유가 있으려니 한다. 어느 정도 식어 팬 안쪽과 케이크 사이를 버터나이프로 살살 분리하고 조심스럽게 팬을 뒤집었는데 파운드가 잘 빠져나오지 않는다. 뒤집은 채로 좌우로 흔들어보기도 하고 바닥면을 퉁퉁 쳐보기도 하다가 어렵지 않게 케이크가 빠져나온다. 신기하다 다 들러붙어 엉망이 될 줄 알았는데? 다 식고 자르라니, 원래 갓 나온 따뜻한 빵과 과작 맛있는 것 아니었나.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본다. 다 식은 파운드를 잘라 속을 볼 때 어떤 부분을 체크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탄 것 같지는 않고 정말 충분이 갈색이 되었는데 속이 안 익었을 수도 있나? 구멍이 숭숭 나있을까? 뭘 걱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걱정하며 케이크 주변을 이리저리 방황해본다.

 

 정말 지루한 기다림. 온기가 사라진 파운드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을 가져와 비장한 마음으로 한번 내려다 보고, 가장 높이 봉긋하게 솟은 부분에 칼날을 얹고 힘주어 썰어본다. 거짓말처럼 완벽한 파운드케이크의 모습이 나타난다. 베이커리에서만 보던 것이 집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 이게 베이킹의 마법이구나. 정말 신기하다. 이런 맛이 나는 것을 내가 만들었다니! 한참을 내가 만든 파운드케이크에 홀려 이리저리 먹어보고 바라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와 여기저기 재료가 묻어있는 테이블과 지저분한 바닥이 보인다. 첫 파운드를 무사히 만든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 취하다 말고 정신없이 부엌을 정리한다. 분명 재료는 몇 개 없었는데 왜 이렇게 많은 볼과 도구가 나와있지?  설거지 통과 건조대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서 막막하다. 다음부턴 필요한 볼만 미리 꺼내놓고 써야지 매번 이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접시나 볼을 다 씻고 정리까지 다했는데 스탠드 믹서볼과 패들 주걱을 깜빡했다. 아 파운드 틀도.   



 냉장고에 남은 크림치즈도 있겠다, 오늘은 마음 편하게 파운드케이크를 하나 만들어 놔야겠다. 기왕에 하는 게 두배합을 해서 여기저기 나눠 줘야겠다. 나가서 볼일을 보고 와서 오후에 만들면 될 것 같으니 일단 냉장고에서 크림치즈 , 버터, 달걀 정도를 꺼내놓고 다녀오면 되겠다. 계량에 편리한 볼들과 저울을 꺼내고 파운드 틀은 어디다 뒀나. 실온에 적당히 무른 상태가 된 버터와 크림치즈를 볼에 담고 중속의 믹서로 충분히 섞어준다. 아무래도 버터가 크림치즈보다 약간 찬기가 있나 보다, 3분 정도 더 여유 있게 믹스해주고 계량해 놓은 설탕을 넣고 이어 믹스한다. 물론 육안으로 보이는 상태에 따라 믹스 시간을 정하겠지만 혹시나 싶어 지금 시간을 체크한다. 2시 12분이니까 최소 18분까지 믹스하고 조금 더 믹스해줘야겠다. 그 사이 계량하면서 쓴 볼들 설거지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한다. 제때 해놓지 않으면 필요한 순간에 추가적인 도구나 볼을 찾기가 어렵고 베이킹 후 지친 상태로 더 많은 설거지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번거로워도 정리해주는 것이 나중에 편하고 또 이제는 이제 자연스럽다. 설거지하는 속도도 빨라져서 정리도 순식간이다. 버터와 설탕을 한번 제대로 크리밍 해보자는 것이 오늘의 다짐. 레시피가 시키는 것 이상으로 크리밍을 하면 케이크의 질감도 더 좋아지나? 재료 배합과 비율로 실험도 해보고 그래야 하는데.... 어쨌든 궁금한 것은 과연 ‘과한 크리밍’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더 오래 할수록 좋은 것일까? 다음엔 달걀 그리고 바닐라를 넣는다. 한때는 참 바닐라 빈 값 무서운 줄 모르고 파운드케이크 만들 때마다 좋은 빈을 갈라 싹싹 긁어 넣고 좋아하곤 했는데,  그게 없어도 맛있는 파운드가 나오니까 굳이 비싼 바닐라빈을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바닐라 값이 치솟으니 인터넷 상의 레시피에도 바닐라빈을 사용하는 레시피가 잘 없는 것 같다. 뭐든 최고치의 재료로만 하거나, 레시피를 작성한 사람이 쓴 재료 그대로 해보려다 몇 주씩 재료만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런 어리석은 강박에 사로 잡히지 않기로 했다. 비싼 재료 쓰면 누가 맛있게 못하나-하는 생각은 아니고, 베이킹이라는 활동 자체의 즐거움이 우선이기에 최고의 바닐라빈, 최고급 초콜릿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달걀도 하나씩 넣고 믹스가 되면 다음은 밀가루. 밀가루를 너무 믹스하면 글루텐이 강해져 부드러움을 잃을 수 있으니 부족하다 싶을 때 믹서를 멈추고 나머지 가루는 스패출러로 직접 믹스하는 게 좋다. 역시 이번에도 파운드 틀에 기름칠을 안 해놓았네. 사실은 틀을 꺼내놓지도 않았다. 해도 해도 귀찮은 게 틀에 기름칠하는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버터/유산지/버터 조합의 강박에서 벗어나 버터와 밀가루칠을 하고 있는데 그게 확실히 쉽고 편하다. 종이 같은 소모품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물론 여러 면에서 좋고. 그래도 여전히 정말 귀찮은 케이크 틀 준비. 후다닥 틀을 준비해 반죽을 담고 오븐에 넣고 타이머에 30분을 입력한다. 물론 한 시간 이상 구워야 하지만 속이 다 익기도 전에 윗면이 너무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굽는 중간에 파운드케이크 위에 포일 한 겹을 덮어줘야 한다. 중간에 오븐을 열어서 봤을 때, 확실히 크리밍을 오래 해서 그런지 정말 드라마틱하게 케이크가 봉긋 솟아올랐다. 크리밍을 통해 공기층은 불어넣어 질감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 공기층의 열로 부풀어 오르며 이렇게 큰 봉우리가 생겨난다. 확실히 5분 크리밍 한 케이크와는 좀 다르다. 다시 타이머에 20분 정도를 입력해 마저 굽다가 익은 정도를 체크하면서 5분이나 7분 더 굽는다. 거의 다 구워진 케이크에 아까 본 멋진 봉우리는 물론 조금 가라앉았다. 쿠키도 그렇고 보통 이렇다. 이제 케이크 테스터에 반죽이나 부스러기가 묻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었다고 볼 수는 있겠다. 오븐 장갑을 끼고 틀 채로 꺼내어 식힘망에 올리고 주변 정리를 시작한다. 정말 자주 파운드를 만들고 베이킹을 하지만 막 나온 케이크를 볼 때면 작게 감탄하며 내 삶에 애정을 표하게 된다. 정말 멋진 내 삶. 이젠 정말 낡아버린 내 오븐으로 베이킹하는 삶. 정리를 마치고 한 김 식은 파운드를 틀에서 꺼내어 마저 식힌다. 틀에서 꺼낸 자르지 않은 파운드는 어떤 면에서 참 볼품없다. 못난 벽돌 가기도 하고 네모나게 자른 붉은 찰흙 같기도 하고. 마저 식힌 뒤 잘 싸서 하룻밤 정도 숙성하는데 사실은 숙성의 여부가 큰 차이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서 들은 것이라 혹시나 해서 숙성하는 편. 이튿날, 잊고 있던 냉장고 속 파운드를 꺼낸다. 예전엔 빵칼로 케이크를 썰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식칼로 잘라도 되는 것을 알고 나서는 빵칼은 정말 빵 자를 때 아니면 잘 안 꺼내게 된다. 그냥 두면 그저 못난 벽돌 같은 이 파운드는 역시 잘라줘야 빛이 난다. 말 그대로 케이크를 숭덩 자르면 안쪽의 황금빛 단면이 먹구름을 가르는 햇살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럴 때마다, 설탕과 버터가 만나 변화하고 밀가루를 더해 반죽이 완성되어 거기에 열을 가하면 케이크가 되는 이 원리와 순간, 과정들이 경이롭고 멋지다. 크림치즈가 파운드케이크에 무슨 맛을 내는지 잘 몰랐는데 이렇게 여러 번 만들어 보니 이제야 느껴진다. 무작정 달다기 보단 천천히 느껴지는 산도가 있는데, 여기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 같다. 레몬 디저트처럼 신맛이 앞장서는 게 아니라, 바닐라 향과 단맛이 문을 열어주고 부드러운 감촉이 안내를 해주면,  마지막 배웅은 크림치즈의 신맛이 대신하는, 그런 몽상 같은 이야기 같다. 몇 년째 파운드를 만들면서도 크림치즈가 주는 차이를 이제야 느끼다니 확실히 나는 느린 학생이다.

 이 케이크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과, 어디 가서 파운드케이크를 사 먹어 보고 실망하는 감정의 간극이 아득하게 넓다. 수 차례 파운드를 만들 때마다 넓혀온 그 간극 속에 담긴 셀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처음 내가 베이킹을 하며 느꼈던 새로움과 낯섦, 지금의 내가 느끼는 베이킹을 하며 느끼는 자신감과 지루함, 그 두 가지 사이의 존재했을 다양한 단계와 종류의 감정이 지금은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해 온 내 베이킹 생활 속에서도 반복해서 만들어온 파운드케이크는 변치 않는 척도 처럼 존재 해왔다는 것이다. 한가지 쿠키도 여러번 만들다 보면 어느새 이런 저런 변주를 시도하게 되고, 또 긴장을 늦추고 있다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음이탈이 나기도한다.

 종종 쉼표를 찍으려고 만드는 파우드 케이크는, 혼란스러운 시간 안에서 무얼 할지 모르겠을 때 메트로놈 같이 속도를 알려주기도 하고, 나의 경험치와 숙련도는 어디쯤인지 내가 나의 베이킹 삶에서 어디 쯤에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2년 전 만든 파운드케이크와 1년 전 만든 것, 지난주에 만든 것 모두 다른 속도와 노련함으로 만들어졌을 테고, 내가 거기서 느낀 새로운과 익숙함 또 한 많이 달랐을 텐데.

 앞으로도 파운드케이크를 구울 때면, 매번 다르게 느껴진 그 감정의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우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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