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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14. 2023

애도일기③교환 및 환불은 상영시간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2021년 2월 2일, 6월 4일 일기 발췌

광기의 소용돌이에 잠식되었다. 광기는 내 엄마와 내 아빠를 잡아먹고도 아직 배부르지 않다는 듯이 입술을 들썩거렸다. 신호였다. 여기에 더는 머물지 말라는 신호였다. 재난 경고에 가까운, 그러나 찢어질 듯 울려대는 경고음은 나에게 힘이 없었다. 계속 그 자리를 맴돌다가 갑자기 불연듯 이 자리에 있기가 무서워졌다. 여기 더 있으면 내가 잡아 먹일지 몰라, 내 안의 제어 장치가 드디어 작동했다. 달음박질엔 영 재능이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도망갔다. 광기, 그게 내 등 뒤에서 떨어지지 않아, 결국 신문 일면에 온 가족을 집어 삼긴 광기라는 헤드라인이 실릴 모양이다.


나는 피 튀기는 액션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아빠랑 나란히 앉아 영화를 재방송해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란도란 불평을 쏟아냈다. 아빠랑 모처럼 보러 나간 OO7 영화 시리즈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재미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나는 아빠가 재미있는 신작 영화가 나왔다며 보러 가자고 할 때 가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학업으로 인하여 너무 바빴고 엄마와의 오랜 기싸움에 그만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 영화는 오만 명을 돌파하고 오백만 명을 돌파하고 기어코 천만을 돌파하여 시즌 2가 나와 시리즈물이 되도록 나는 보지 않았다. 영화를 가지 못 봐준 것이 사뭇 미안했다. 그래서 아빠의 차가운 손 위에 영화표를 쥐어주었다. 꼭 보자고, 꼭 보러 가자고 말이다.


내가 아빠한테 남는 후회는 그 당시에는 영화표 하나뿐이었고 이제는 여러 개의 다발이 되었다. 너무 외로웠겠다, 우리 아빠. 아빠를 따라 우리를 떠난 그의 부인이랑은 같이 저승길 가는 배 타러 갈 때 만났을까? 거기서 그와 그녀는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들이 딸을 등지고 간 것을 사무치게 후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 목숨엔 자식 몫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거의 못 받았다. 나는 동시에 그리움만 한아름 받았다. 그래서 나의 옛사람이 레이싱 시리즈 영화가 새로 나왔다고 보러 가자고 할 때 움찔했다. 다시는 영활 즐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함께 액션 영화를 보러 갔다.


아빠의 혼이 살아있다면 분명 나와 같이 액션 영화를 보러 왔을 것이다. 나는 아빠한테 물었다. 영화는 재미있었어? 아빠 대신하여 나와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어때 보여? 나도 오랜만에 영화 봐서 좋았어, 아빠. 아빠한테,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 키워줘서 고마워. 아빠의 장례식장에 온 얼굴 모르는 아버지 친구분들은 하나같이 나를 무척 잘 알았다. 아빠는 집에서 과묵했지만 아빠는 나의 자랑을 온 동네에 하고 다녔다. 나만 모르게 말이다.


웃으면서 같이 밥 먹고 지내다가도 관계에 깊어지면 나는 발을 이대로 떼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갈까 고민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건 버겁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넘치게 사랑받았지만 막상 그의 앞에서는 "넘치게 사랑도 받았어요"보다는 다른 문장이 먼저 튀어나온다. 나의 억울함이다. 원망, 왜 나를 버리고 갔는가에 대한 통곡이 새어 나온다. 왜 나를 갑작스럽게 떠나 다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조차 두렵게 만들었는지 묻고 싶어 진다.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을 참 많이 했어요. 신경 쓸 필요 없게끔 알아서 잘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나는 좀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근데 나도 그렇게 삶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가득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어요. 나를 누군가가 구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의 괴로움으로부터 힘껏 도망치고 싶어요. 환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제가 싫다가도 문뜩 그 그림자가 지나가면 그것이 환영인 줄 알면서도 그 그림자를 또 쫓아가요.


미국행 유학은 나와 엄마가 마지막으로 상의한 계획이었다.

그래, 예원아. 너 그렇게 공부가 좋아? 엄마가 미국 보내줄게, 네가 못 갈 게 뭐 있어. 가서 한 번 해봐.

애석하게도 내가 미국을 간 뒤의 미래가 잘 상상되지 않았던 것은 "엄마와의 약속대로 미국행 유학 가기." 거기까지가 한 문장으로서 나의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나의 미국행 유학은 어릴 때부터 동경해 온 디즈니랜드에 방문하는 것과 같았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환상 속 동화 뒷이야기를 들은 채만채 아웅다웅 눈 가려버렸다. 나도 알았지만 거기엔 내 유년시절의 불행을 보듬어줄 구원자가 없었다.


호주에서처럼 평화로움에 놀라 울음을 터트리려나? 나는 어학연수 차 떠난 호주 소도시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엄마가 이런 평화 속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사실 원했던 건 어린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고통 없는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밝게 자란 다음 나를 낳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국에 가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장해 올 것이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독한 짝사랑을 끝내고야 말 것이다. 환영에 놀라지도 않고 그림자에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단단한 알을 안에서부터 깨 부수고 태어날 것이다.


그래, 내가 여기 있다. 모든 역경을 딛고 나는 다시 여기 우뚝 솓아올라섰다. 균열 사이에 발이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나를 뒤엎고 뭉개고 그 뒤에서 소리소문 없이 변신할 것이다. 내 발톱이 단단해진 다음에서야 나는 내가 변태 했음을 깨달을 것이다. 멀리서도 그 깨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대체 텍스트: 어느 술집에 박재된 채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흰 사슴,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다.

상황 설명: 미국행 유학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방황을 참 많이도 했다. 미국에 간 다음에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두려워했고 걱정했고 그렇지만 미국으로의 발걸음을 또 옮겼다. 이제는 안다, 나는 정말 깊어졌다. 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진 못했지만 나의 고통과 한 군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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