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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29. 2023

타문화일기 ① 사람을 주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내 친구

2022년 9월 29일, 12월 3일, 2023년 5월 2일 일기 발췌

내 친구인 그녀는 미국 Indigenous people이다. 그녀는 Native American 보다 *인디지니 피플*을 선호한다, 그녀의 언어규범을 따르기로 하자. 그녀 역시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나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나와 같은 불운한 운명의 길을 걸어왔다고.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같이 울기도 하고 그녀의 고통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어떻게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너무 어려워요. 나는 너무 벅차 올라서 무척 속상해요. 같이 의지할 곳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나는 너무 힘들어요. 정말, 너무 버겁고 고통스러워서 나를 좀 괜찮다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젊은 날 아버지부터 강인함을 느꼈던 것이지, 그런 모양이야. 내가 요즘 만나는 그에게 느끼는 강인함은 더도 덜도 아닌 그 강인한 힘이다. 나는 그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말쑥한 옷차림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의 사치스러운 공부를 존중해 줄 수 있는 검소한 남자가 좋다. 그렇다, 나는 나의 사치스럽고 화려한 탐구력을 감당해 줄 남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남성성이다. 그런 남자가 좋다. 나는 그 남자에게 의지가 된다. 내 일 정도는 별 거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나를 좀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나를 향해, 나만을 위한 뜨거운 애정을 받고 싶다.


내 인디지니 친구는 사람을 주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았다. 내가 엄마가 죽은 날 병들고 마른 고양이 한 놈을 길거리에서 주워왔듯이 말이다. 병들고 약해지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는 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내가 엄마로부터 사랑을 갈구했듯이 누군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할 수 있다면, 그러니깐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친 여력이 가득한 나의 인디지니 친구를 보는 건 힘들었다. 그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한 유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집에 들이면 안 된다는 나의 규칙 말이다. 유가족은 스스로 단단해질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녀가 어렵게 물꼬를 튼 끝에 완전히 물뚝이 터져버린 입을 도로 가둘 수 없으니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만 말해, 더 속상해질 뿐이다. 남들과 너의 고통을 나눌 수 없어.


나는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통해 뭔가 배우는 영화를 좋아한다 (누군가 추천작을 묻는다면 넷플렉스에 있는 "슬럼버랜드"를 추천한다). 진짜 현실 속에 있는 고통의 무게를 감추기 때문이다. 아무나 배울 수 없다. 오직 소수만이 고통 끝에 약간의 탄력회복력과 단단함, 그리고 강한 연민을 배운다. 그리고 종종 무너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내몰린 벼락 끝에서 그 고통에 못 이겨 미쳐버리거나 강박적인 행위를 지속한다. 그게 너무 슬프다.


내가 만났던 몇 명의 인디지니 피플들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문화와 관습, 그들의 몸짓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홀려버린다. 어느 인디지니 예술가가 주최하는 예술 워크숍에 극적으로 초대되어 한 자리를 점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자애로움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물리적으로는 우리 대학에 아주 평범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내 무의식은 모닥불 앞에서 마시멜론을 구우 먹으면서 연기를 피워놓고 있었다. 인디지니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안전해질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을 창조했는지는 그녀의 고통 역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예술이 그 누구도 해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했다, 더 자세히. 그리고 한 줄을 더 그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 공동체가 너무나 부러웠다. 내 인디지니 친구도 그렇고 그들은 고통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그들의 위로를 단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무한한 회복력과 신비로운 위로 행위는 너무 매혹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고통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아무런 이유 없이 시스템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받아왔다. 그들은 위안을 주는 공동체를 자체적으로 창조하지 않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회로부터 그들의 고통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받을 때마다 본인들의 방식으로 질문 자체를 비웃었다. 나는 예술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그들이 토해내는 고통을 보면서 나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그들이 무엇이든 다 회복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순순히 믿은 나 자신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나는 M.A. 학위를 주는 인문학을 전공한다. 내가 석사 과정을 졸업한다면, 나는 Art를 마스터하는 것이다. 왜 내 전공이 Art에 속하는지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인문학도 일종의 기예 학문인 것이다. 나는 마을에서 으뜸 가는 대장장이이다. 내 손으로 만든 철조각에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또 그것들이 남을 해치지 않고 그들을 돕기 위해 사용되길 간절히 바라다가도, 손님들에게 내 물건을 아무런 내세움 없이 건네주고 돈을 받는다. 내가 만든 칼은 나에게 제일 쓸모가 있다. 나는 내 또래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느끼는 의무감과 부담감은 네가 만들어 낸 신념이 아니라, 옛날옛날에 어느 학자가 적어 놓은 아주 오래된 책 구절에서부터 시작되어, 그걸 우리 사회가 재생산하여 교육 기관이 우리의 부모에게 전수했고, 넌 그저 너의 부모님을 믿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게 내 작업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다.


대체 텍스트: 두 개의 유리병이 검붉은 액체를 담고 있다. 와인인지 독약인지 잉크인지 알 수 없다.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혀 있다.

상황 설명: 내 친구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나는 내 친구가 이기적이길 바란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오직 그녀를 위해 살기 바란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가진 힘을 남들에게 사용하는 그녀의 자애로움에 감사한다. 우리 공동체도 이런 사람 한 명은 있어야 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지. 그녀는 그 자체로 힘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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