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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n 01. 2023

인간관계일기 ① 사람을 친절하게 대우하도록 하세요.

2022년 9월 11일, 2023년 4월 27일 일기 발췌

정신없는 일주일이 다시 흐르고야 말았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호흡을 되잡았다. 번뇌, 잡음, 눈물, 나는 그렇게 또 일주일을 보냈다. 언니랑 같이 차례상을 차리고 차례를 지내다가 문뜩 내가 떠나온 오랜 옛 고향을 기억해 냈다. 기억 속엔 남겨진 고향에서의 나의 일상은 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 숨겨져 있다. 돌아가는 길엔 꽃을 한 아름 피워낼 것이다. 꽃, 언젠가 시들해질 아주 작은 꽃을 향해 나는 다시 정성을 모은다. 벌써 3년이나 흘러 버린 일에 관해 나는 마지막 물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사랑한다, 미안했다, 건강히 오래 오래 살아라. 건강해지면, 내 몸도 마음도 튼튼해진다면, 내가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 싶었다. 나은 사람이 되고 나면 나는 내 물음 앞에서 다시 나 자신을 다시 굳건히 내세울 수 있을까?


얼굴을 기억할 것, 그들의 삶에 관한 물음을 지닐 것, 미소를 띤 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우할 것. 친절함은 나에게 유일한 원천일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불쌍해, 너무나 불쌍해. 애석한 영혼에게 죄를 묻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감싸고 싶어. 그저 가만히 사람들에게 사랑에 관해 말해주고 싶어. 사랑해, 괜찮아, 언젠가 이 고통도 끝이 찾아오겠지. 괜찮아, 내 마음은 넉넉히 있어. 기다려줄게. 나는 그저 사람에게,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나의 부모의 죽음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인내했고 다짐했고 적당히 시기에 야반도주했다. 그래, 나의 건강함은 도망감으로써 완성되었으니 고향으로의 회귀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가란 무엇일까? 엄마가 아빠 따라 훌쩍 떠나버린다는 클리셰는 내 각본엔 없었다. 내가 그동안 써 내린 각본들은 대체로 어려움을 견디다가 못해 뛰쳐나간 어린 여자애들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남겨진 가족이 어떤 심정일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다잉 메시지를 마주하고 또 보고 나서 나는 고독을 입안 가득 씹어 삼켰다. 왜일까? 왜 남겨진, 그리고 남겨질 가족은 처절하게 무너지는 것일까? 나는 죽음의 향기를 들이켜고 아아,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의미 없는 일이다. 사람을 친절하게 대우하도록 하세요. 친절한 미소는 무척 중요하답니다. 왜? 나는 질문의 방점을 찍고 다시 마지막 그 말을 궁금해했다. 헉 하고 내뱉을 그 말들을, 그 마지막 말 한마디가 너무나 듣고 싶었다. 통하라, 그것이 바로 길이테니 말이다.


닥터가 아프다고 말해왔다. 나는 또 울컥했다. 나는 남의 아픔에 잘 공감하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의 아픔은 더욱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죽음, 질병, 노화, 탄생,
그러니깐 우리는 탄생이 아니라면 결코 희망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삶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경이를 표하는 글들이 많은가 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생명의 힘찬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나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생명이 무섭다, 그만큼 무게감이 있는 것이다. 매서운 무게감을 견뎌내기엔 내가 너무 작거나 가볍거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나는 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이토록 슬퍼할까? 그리고 궁금해한다. 일단 아프다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주고 싶다.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나는 뭐든지 해주고 싶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 배불리 먹이고 싶다. 괜찮다고, 당신의 뼈와 살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 걱정 없이 먹으라고, 안전한 공간, 나는 그 순간에 올려오는 안도감을 사랑한다. 나는 너무 슬프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누가 그를, 그가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준 것처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사랑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곁에서 안식일에 그가 휴식했으면 좋겠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의 인도 속에서 평온을 찾은 것처럼 그가 찾길 바란다. 그의 평온을 어떻게 빌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젊은 남자가 나에게 그의 고통연대기를 고백해 왔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Go to the college, and come back to save us"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가족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그의 가족은 그의 대학원 과정 때 모두 사라졌다: "Anyone doesn't leave, they are gone." 그의 물음은 아마 거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고 그 스스로가 영웅이 되어 살아남아야 하는 그 무게감을 감히 누가 알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내 주변엔 어느 인간들의 무리처럼 흔들이는 존재가 많다. 많은 만큼 나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나의 단단함은 어디에서 와야 할까? 나는 나의 삶 속에서도 찾은 또 다른 기쁨을 나누어 주고 싶다. 삶은 너무 어렵다. 누군가 나에게 털어놓은 고통이 그를 떠나버리길 바라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나는 나에게 좋은 어머니이자 좋은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살아 있음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진실로 말이다. 오로지 나만의 기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평안과 안위를 바라겠다고 외쳐야 했다.


대체 텍스트: 푸른 잔디밭 너머로 보이는 강가엔 천둥오리 몇 마리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다. 그 뒤로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몇 개가 줄지어 있다.

상황 설명: 처음으로 워크숍에서 발표하게 되었는데 내가 발표할 주제의 대가들이 두 분이나 오셨다. 나는 극도록 긴장했다. 내가 내 논문에서 인용한 학자들이 오셔서 내 발표를 듣는 것이다, 세상에! 내 친구들이 내 워크숍 날 와서 나를 달래주었다, 괜찮다고. 나는 그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친절해질 것을 다짐했다.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받은 친절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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