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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n 06. 2023

유랑기 ④ 떠나야 했음을 알았으나 그 길에서 망설였다.

2021년 10월 21일, 27일

인간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저의 몫이라면, 남는 건 하늘의 몫입니다.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엄마를 자주 울부짖었습니다. 나의 그녀는 나를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묻습니다, 그녀를. 그녀를 내 가슴속에 묻었습니다. 25번째 생일이 왔습니다. 닫친 시련 앞에서 나의 단단함을 느낍니다. 이 단단함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나의 걸음걸음마다 느껴집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겁니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것만이 나의 무기임을 압니다. 단단함은 나의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무너지고 싶을 때가 분명 있습니다. 정말 속 깊이 들어가 스스로의 못남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날아오릅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온 걸 후회하냐고 묻지 마세요. 어찌 한 마디로 표현하겠습니까? 나의 마음을 말없이 알아주세요.


떠나야 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나 발걸음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고 온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작은 나날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떠나온 후에나 두고 온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엉망으로 얽혀 있던 업보였다. 나의 업보, 그건 우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그놈을 놓고 온 것이다. 그놈이야 말로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소중한 가족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남겨진 유가족, 나는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했고 도망쳤고 내 삶이 너무나 아쉬웠다. 어른스러운 척해봤자 나는 너무 어렸다. 나랑 같이 살고 있는 학부생 룸메이트와 같은 나이에 나는 무엇을 했지? 맞다, 나는 내 업보를 감내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그래도 부단히 쏟아 올렸다. 룸메이트가 나를 보고 할머니 같다고 한다. 내 영혼은 너무 늙었다. 이 나이엔 뭘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단 한 번도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바빴고 모든 걸 감당하기 하찮았고 그래서 내가 만든 울타리가 제일 안전해 보였다. 핼러윈 데이 때 미국펌킨으로 잭오랜턴을 만들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누구나 다 챙기는 소소한 이벤트의 부재,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남들만큼은 해보는 시도들, 어렵지 않았다. 작은 일들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건 시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들의 연속이었다. 나를 태워 부모의 업보를 청산하는 일이 아니라, 스물 초반의 나는 좀 더 젊음을 누려야 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 나이 스물둘 어느 평범한 여름에 갑자기 쓰러졌다, 시름시름 앓고 앓다가 그 해 가을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그리 싫어하던 대학병원에서 눈을 감았으니 그도 원통했을 것이다. 비통하다. 나의 어머니는 그 해 여름과 가을을 씩씩하게 지내다가 그다음 해 봄이 오기 전에 왔던 대지로 돌아갔다.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날이 너무 따뜻해서 이번엔 내가 비통했다.


봄만 오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 사람이라서 더욱이 아쉬웠다.
그 해 겨울이 유난히도 추웠던 걸까? 조금만 더 버티면 그녀가 그리 좋아하던 봄이었다.

나는 스물셋에 언니와 홀로 남았다. 고양이 한 마리를 충동적으로 데리고 왔다. 나의 가족은 이제 고양이와 언니뿐이다.


내가 그 해 겨울부터 올해 여름까지 정리한 건 그들의 업보였으니 그리 무거웠나 보다. 하늘 아래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 용납할 순 없었다. 너무 오래 참았다. 이젠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주로 날아왔으니 나를 옭죄이던 하늘을 아예 교체한 셈이다. 교체된 하늘은 반드시 나를 돕니다. 여린 살에 자꾸 생기는 날 것에 베인 상처만 빼면 퍽 괜찮다. 이번 하늘이 내 앞날을 어찌 훼방할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잘 자잘한 상처는 내게 무엇이라도 괜찮다. 쓰라림은 곧 멈출 테니 말이다.


나는 스물 중반이 넘어가는 중이지만 다시 스물셋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작은 아이야. 내가 올해 선물 받은 건 뭐였을까? 그건 놀랍게도 새 삶이었다. 내가 그리도 갈망하던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그 공간, 그 시간에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이 장소와 이 순간이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한국에서 왜 이 느낌을 이룰 수 없었을까? 그러나 이젠 그것마저도 감사하다, 무거운 공기에 질식할 뻔한 걸 생각하니 나의 살아남음 자체에 감사하다. 내 생명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흘러서 여기에 닿았다.


여기저기 사는 내내 나는 대충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존재했다.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개화한 딸은 낡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황급히 떠나온 탓에 잃어버린 게 많았다. 누구도 어떻게 해야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의 생존 욕구는 내 정신을 뒤덮었으나 특유의 재치는 잊지 않았다. 순간순간 깔깔거렸다. 제정신으로 견뎌내기 어려울만했다. 이젠 여기선 제정신으로 살 수 있으려나? 도망간 곳에서 나는 자츰 내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작은 논쟁에 크게 흥분하고 논리에 목숨 걸고 좀 더 인문학을 잘하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 애석하게도 내 삶엔 철학이 전부였다. 더 깊게 생각하고 좀 더 탁월하게 생각하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강해지는 것 말고 깊어지고 싶다.


대체 텍스트: 옅은 노란색의 벽돌로 지어진 우리, 호랑이 한 마리가 벽 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있다. 푸른 풀밭이 그의 발 밑에 펼쳐져 있다.

상황 설명: 외국 나오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인이 정말 잘 꾸민다는 사실이다. 길거리 가다가 세팅된 머리만 봐도 한국인인지 아닌지 구분이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차려입고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딱히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비춰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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