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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Nov 09. 2020

귀환(歸還)

우리가 비일상(chaos)에 흥분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일상(cosmos)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나날과 다른 특별함, 일상의 삶에서 살짝 빗겨나간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일상을 살아나갈 에너지를 얻고 돌아올 비일상을 기다린다. 그 시간은 일상 속에서 느끼고 찾을 수 있는 의미와는 또 다르다.


올해 첫 휴가를 준비하면서 나는 왜 대학시절 한 교수님의 수업이 떠올랐을까.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질서와 조화 속에서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는 축제를 주제로 한 수업 말이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카니발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종교적인 규율과 엄격함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비일상의 시간인 카니발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일 년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자 삶 그 자체나 다름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들의 비일상을 떠올렸다. 거의 십 개월 간 쉬지 않고 일한(정확히 명절 당일 이틀은 쉼) 남편 그리고 거의 십 개월간 혼자 아이들의 육아를 전담했던 나, 아빠 없이 엄마와 매일을 보내야 했던 우리 아이들. 긴 일상 끝에 겨우 마련한 휴가는 어느 때보다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 속의 작은 존재인 우리에게도 비일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코로나 19의 시간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일상 속의 우리가 집안에만 틀여 박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비일상의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다.


쓸데없이 거창한 우리들의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 우리의 비일상은 완벽했다. 그리고 무사히 일상의 시간으로 귀환했다. 오늘의 햇살은 여전히 빛났고 나의 가슴을 채우는 공기는 조금 더 차가워졌다. 남편은 늘 그랬듯 일을 하러 나갔고 아이들은 오늘의 아침을 즐기며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카페, 그 자리에 앉아 고소한 카페 라테를 마시며 경쾌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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