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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Nov 18. 2020

아줌마의 시간도 한정적이다

타인의 시간을 보는 시선

"좋은 시간 보내. 나는 일해."

평소 가깝게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던 지인이 말했다. 지인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내 일거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지인은 '좋겠네. 부럽네. 나도 놀고 싶다.'라고 했다. 

'나도 일하고 너도 일하는데 왜 내 시간은 그냥 좋은 시간이고 네 시간은 일하는 시간인거지?'


전업 주부인 나의 주 업무는 육아와 집안일이다. 그 사이사이의 시간에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고 애쓴다. 애를 쓰지 않으면 그 어느 하나도 할 수 없다. 가만히 앉아 놀면서 모든 일들이 알아서 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영화에서 모든 집안일을 전담하는 로봇이 등장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옛날보다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여전히 어떤 일이든 내 몸뚱이를 움직여야 하고 내 머리를 써야 하고 애를 써야 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나 전업 주부나 하루 24시간의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간으로 살아간다. 전업 주부라고 해서 더 주어지는 시간은 없다. 다만 아이들이 등원하고 나서 하원 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비교적 선택의 자유도가 높다. 놀든지 말든지 선택의 폭이 넓다는 말이다.


TV 속에서는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엄마들을 힐긋 거리며 팔자 좋다고 말하는 일이 많던데 웃기는 짬뽕이다. 언제부터 사회에서 그렇게 주부들의 시간에 관심이 많았는지도 모르겠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 좀 떠는 게 무슨 호화 생활인가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전업 주부의 일을 두고 '논다'라고 쉽게 말한다. 놀려면 본인이나 전업 주부 하면서 실컷 놀 일이지 놀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논다고 표현한다. 


나의 경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은 주 업무 밖의 또 다른 추진업무로 볼 수 있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마음 편히 놀면서 알아서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시간이 남아서 돌거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솟구쳐서 재미 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일부러 생각을 끄집어내는 창작의 시간을 거쳐야만 겨우 쓸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애쓰고 있는 나에게 "논다."라는 말을 하다니 내심 속상했다. 한 편으로는 속으로 발끈하는 나 또한 주부 미생에 지나지 않는구나 싶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 시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천차만별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줌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시간의 질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끼리끼리 모여 커피를 즐기면서 하하호호 수다를 떨 수도 있고 미뤄둔 집안일을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든 자신의 잣대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시간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오히려 불쌍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만족할 만한 가치를 찾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야만 한다. 아줌마의 시간이 어쩌니 저쩌니 할 겨를이 없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이 움직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시간을 보내야겠다. 놀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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