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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Mar 04. 2021

죽기 직전에 후회하지 말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자

그동안 나에게 프러포즈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을 낳아 육아를 전담하고 있으니 완곡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것 이상의 경제적인 이익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무언가를 할 만한 여력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자료를 축적하고 있었고 얼마든지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와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별히 좀 더 보수적인 학과 분위기는 그 상황을 잘 뒷받침해주었다.


학위를 받고 학술활동을 하지 않은지 십 년은 훌쩍 넘었다. 몇 년 전에 지도교수님께서 나에게 현장 답사와 채록을 부탁한 일이 마지막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학술적인 포부를 잊지 말고, 그 끈을 놓지 말라던 선생님의 진심 어린 말씀에 눈물이 찔끔 났었다.


그러고도 몇 년이 흘렀다. 타인의 시선에서 걱정거리 없어 보이는 나였지만 나는 늘 결핍을 절절히 느꼈다.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마음 한 구석을 훅 치고 들어올 때마다 나는 휘청거렸다. 과연 그 허전함이 무엇일까 수 없이 자문해본 결과, 내면의 지적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키지 못해서 오는 것이었다. 대학원을 갈까, 아니면 사이버대학? 방송통신대? 마음에 쏙 드는 방법은 없었고, 책을 많이 읽어도 한계가 있었다.


이게 뭐지?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길 때쯤, 한 선생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전부터 나와 콜라보를 하고 싶었다며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우리는 쉼 없이 떠들었고 서로가 가진 다른 호기심을 몹시 흥미로워했다. 나는 수줍게 한 편뿐인 논문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밤새 읽고 연구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음 날 잠시라도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새벽에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다시 만나 한참을 떠들었고 공동의 무언가를 작업해보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오늘, 그 이후 첫 줌 미팅을 했다. 코로나 19 시대에 화상회의는 아주 흔한 일상이 돼버렸지만, 아이 둘 키우는 아줌마에게 줌 미팅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사실 내가 어떤 글을 풀어낼 수 있을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꼭 하고 싶다. 뭐라도. 졸업 후 십여 년 만에 다시 학술적인 글쓰기를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다. 뭐든 하겠지. 첫째가 막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줄었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 '아, 그거 해볼걸....' 하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시간이라는 건 사실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어제 보다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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