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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Feb 16. 2024

24.02.16

어린아이가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꺼림칙하지 않다. 어린아이는 죽음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갓 무덤에서 숨을 얻어 부활한 자. 우리 중 누구보다 암흑과 고요에 익숙한 자다. 죽음을 말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느끼는 건 우리가 죽음의 감각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새가 죽었어, 어린 내가 소리친다. 달려가 손바닥에 얹는다. 차갑고 털은 까칠하다. 기겁을 한 엄마가 달려와 손을 내리친다. 더러우니까 만지지 마, 병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나를 질질 끌고 가며 엄마는 한숨을 내쉰다. 어린 게 겁도 없이.


나는 뒤돌아본다. 새는 뒤틀린 채 길에 떨어져 있다. 집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풀밭 옆 가로등 아래. 길 건너 초등학교. 집으로 가면서 가로등을 센다. 하나 둘 셋...


잠시 후 나는 돌아온다. 하나 둘 셋... 일곱... 아직 저기 있구나.


돌을 들어 땅을 파고 새를 묻는다. 봄이라 흙은 부드럽고 새는 작아서 별로 힘들지 않다. 새를 묻고 손바닥으로 흙을 탁탁 쳐서 고르게 만든 후 우리 집 정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련나무 아래에서 주운, 크고 흰 꽃잎을 얹어주었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무덤덤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을 잊지 않았지만 조금씩 죽음을 격리하고 있었던 거다. 살아있는 자의 세계에서 이탈한 자에게 살아있는 자의 질서를 적용한 거다.


한때 엄마는 유기견으로 떠돌다 인연이 닿은 개를 돌보신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 들어올 때부터 병들었던 녀석은 우리 집을 죽을 자리로 정한 듯 보였다. 의사에게 보였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녀석은 느리게 죽어갔다. 그러는 사이 매화가 피는 철이 되었다. 숨을 몰아쉬는 녀석의 집 위에 엄마가 매화 한 가지를 얹어주셨다. 사는 건 꽃그늘 아래 잠시 머무는 꿈이란다.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 죽음을 잊어버린 인간 둘과 개 하나가 그렇게 잠깐 매화꽃자리에 머물렀다.


봄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계절. 죽었던 것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천연덕스럽게 기지개를 편다. 목련은 게을러 제가 입고 자던 수의도 갈아입지 않고 부스스하게 앉아 긴 목을 늘이고 담배를 피운다. 부드럽고 탐스럽다. 어여쁨 받고 살아 비단으로 수의를 해 입었구나. 어느 봄밤, 목련에게 말을 걸었다. 사는 건 탐욕이야. 목련이 느리게 떨어진다. 이나무를 봐, 몸의 모든 관을 열어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어. 나무는 저렇게 수천 년을 살아가. 지겹지도 않을까. 발아래 저렇게 시체를 쌓고 죽음에게서 한사코 도망가는 게 정녕 무섭지도 않을까.


꽃은 다시 덧없다. 나는 잠시 그 그늘에 숨어 눈을 감는다. 뇌에 병이 들어 살아온 기억을 다 지운 노파가 어린아이처럼 해죽해죽 웃으며 삼촌, 나 언제 죽어? 묻는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시절로 돌아간 인간이 몸의 주름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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