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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Mar 03. 2024

김민정 산문집, <읽을, 거리>

사람에 지극한 것을 뭐라고 부를까. 쉽게 사랑이라고 부를까. 


이 책에는 사랑을 부르는 여러 말이 있다. 고리이며 참음이며, 견딤이고 애씀이며, 아프니까 기도라는 단순한 시를 혀 위에 올려놓고 굴려보았다. 입안이 물드는 사탕처럼 사랑이 스며들었다. 과연 달지만 깔끄럽고 향기로우나 목이 멨다. 얇은 껍질을 벗기니 또 껍질, 수도 없이 녹여서 새끼손톱보다 작아져도 여전히 달랐다. 가만히 따라가다가 다시 사랑, 불러보았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쉬운 일이 아니로구나, 사랑이라는 일. 


그런데 참 이런 사람도 있다. 영혼이 사랑으로 채워진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닿는 인연마다 지극하고 곡진한 사람. 그 마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자기도 몰라서 사랑,이라고 불러도 보는 사람. 볕이 좋으니 오늘은 기필코, 하면서 시의 서랍을 열지만 그 안에 굴러다니는 조약돌, 엽서, 만년필, 손수건 하나하나 일일이 들어보고 만져보느라 새벽빛을 머리에 이는 사람. 


한 해의 시작을 이런 지극함과 함께 열어 좋았다. 1월은 그렇지 않나, 모두들. 무언가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부르고 막연한 것들을 바라고 열두 달 이후의 아름다운 자기 자신을 미리 사랑하지 않나.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먼저 돌아간 사람도 하나하나 불러 깨끗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듯 하염없는 일. 그렇게 시작하는 한 해라면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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