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환자는 나이가 마흔이 갓 넘었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그는 담관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하였으나 효과가 별로 없어 암은 진행하였고, 상태는 악화되었다. 그는 암으로 인해 매우 말라있었고 통증과 그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였다.
2~3일 후 통증이 적절히 조절되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는 다시 치료에 대한 논의를 보호자와 하길 원했다. 젊은 아내는 병색이 완연한 남편의 바람을 의료진에게 넌지시 건네었다. 항암치료는 아니고, 면역 치료 및 한방치료를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희망과 기대 섞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선뜻 답을 꺼내어 언어로서 푸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검증받은 암 치료와 검증받지 못한 치료법에 대한 의사로서의 견해를 말하기 위한 지체가 아니었다. 그런 환자의 질문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반증이며, 그것에 관해서는 환자가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 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고, 기다리게 하자는 서로 간의 무언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스스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상황을 잘 모르는 시댁의 지속적인 3차 병원 항암치료 권유와 지속적인 쇠약에 의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묵묵히 이겨내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서로 밀짚모자를 쓰고, 바캉스 차림을 한 체, 병원 뒤쪽 조그마한 응달에 앉아 피크닉을 즐겼다. 그들은 초여름의 숲과 같이 참을 수 없이 신선하고 젊게 빛났다.
어느 토요일 오후, 병실 회진 도중, 토혈을 하며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의학적인 처치를 하다 본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 급한 수습을 마치고, 일인실로 옮겼다. 혈압은 잡히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대량의 토혈을 하였다. 그 와중에도 놀라지 않으며,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읊조리는 조용한 기도가 나지막이 문틈을 타고 스테이션으로 들렸다.
그는 이튿날 조용히 소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