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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 May 22. 2021

‘Normality(평범함)’에 대하여

노멀 피플을 읽고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을 ‘노멀’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매리앤은 학교에서는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서는 학대를 당한다. 남주인공 코넬은 매리앤과는 달리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며, 미혼모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아버지상’에 대한 결핍이 있는 듯하다. ‘노멀 피플’의 또 다른 특징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에 비해 다소 평면적인 듯 한 두 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귀었다 헤어지는 것을 수 차례 반복하다 결국 어른이 되어 헤어지게 되는 심심한 이야기로 보일 여지도 있다. (심지어 이 책을 ‘인기 없는 여자아이와 공개연애를 하기 싫어하는 십 대 남자아이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조롱하는 글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노멀’한 듯 ‘노멀’ 하지 않은 청춘들의 뻔한 로맨스는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 샐리 루니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게 했으며, 드라마화에까지 성공했다. 나 역시 이 책을 문학적인 가치의 측면에서도, 플롯의 창의성 면에서도 빼어난 수작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이러한 인기의 배경에는 분명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이 느끼는 소외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상실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두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 즉 서로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식들로 구성된 집단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이에 더해 또래와는 달리 그들은 정치, 문학, 시사 등 것들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그들이 동료 압박(peer pressure)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노멀’하다고 느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할 것은 이 소설이 매리앤과 코넬의 시점에서 쓰였다는 것이다. 만약에 부유하지만 폭력적인 매리앤의 전 남자친구, 매리앤에 비해 훨씬 정상적이고 건전한 듯 보이지만 롭의 장례식 당일날 장례식장에서 코넬이 매리앤을 쳐다보았다고 질투하는 레이첼, 여자 아이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약자들을 맘껏 농락하며 단순 무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된 롭, 친구의 자살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 코넬을 상담하면서도 사무적으로만 대하는 심리상담사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어떤 다른 인물이 서술자로 설정되었으면 독자들이, 아니, 그들 자신이 그들을 ‘노멀’하다고 여길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이는 결코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는 작가가 극단적이리만치 비정상적인 인물만을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 사회에서 모든 것은 마치 규격화된 듯하여, 일정 오차범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이상적인 가정’ 출신이 아닌 아이들은 일종의 하자상품과 같이 취급된다. 또한 매리앤과 같이 학창 시절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당연하게 강요되는 규칙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여 벌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평범하게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코넬과 매리앤은 단지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자기 자신을 비정상적이라고 여기기에 이른다. 인간을 구성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에서 모두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의 최고점에 위치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평균 근처에 위치하지 않지만, '정상성(normality)'이라는 것이 주는 압박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다름을 이상한 것이라고 여기게 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주인공 코넬과 매리앤뿐 아니라, 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에게 해당된다. 누군가는 너무 부유하거나 또는 너무 가난해서, 또 누군가는 너무 똑똑하거나 너무 멍청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너무 날씬하거나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상’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가학적 성행위에 집착하는 매리앤과 같이 오히려 더욱 ‘비정상’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매리앤과 코넬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떠한 문제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매리앤과 코넬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 참으로 만족스럽지 못 한 결말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물론 매리앤과 코넬이 외로움을 딛고 강인한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독자로서 목도하지 못한 점은 나 역시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성장은 책 속에서의 이야기가 끝난 후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진정으로 사회에서 규정한 ‘normality’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 아니다. 나 자신으로서 나 답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자존감과 자긍심만이 소속감에 대한 욕구와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위안 삼았지만, 동시에 건강하지 못 한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코넬은 뉴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자아를 찾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코넬의 도움으로 폭력적인 가정에서 벗어난 매리앤 역시 어떤 형태로든 그녀의 유일한 진정한 동성친구 조애나와 같이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가리라고 믿는다. 그들이 결국 성장하고 치유할 것이라는, 그리고 끊임없이 ‘normality’를 요구하는 우리의 사회가 앞으로 조금씩 변화하리라는 소소한 희망을 품고 책을 덮는다. 먼 훗날 코넬이 매리앤과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를 철없던 자신을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첫사랑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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