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너의 꿈 속에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넘버 '너의 꿈속에서'가 결혼식장의 스피커를 타고 흐를 때,
웅장하고 압도적인 결혼식축가 프랑켄슈타인 '너의꿈속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뮤덕(뮤지컬 덕후)'들의 동공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감미로운 선율과 "너의 꿈속에서 살 수 있다면"이라는 로맨틱한 가사.
언뜻 듣기엔 이보다 더 완벽한 축가가 없을 것 같지만,
극의 맥락을 아는 이들에겐 이 노래가 조금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사실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친구 대신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죽음을 앞둔 남자가 남기는 마지막 고백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프레스콜 클린버전_너의 꿈 속에서[1080]
극 중 앙리 뒤프레는 친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처형장으로 향한다.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과 같은 가사들은 곧 닥칠 비극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처절한 작별 인사는 결혼식장에서 '어떠한 시련이 와도 당신을 위해 나를 던지겠다'는 숭고한 사랑의 맹세로 치환된다.
뮤지컬을 모르는 하객들에게 이 곡은 그저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걸 준비가 된 남자의 당당한 선언'으로 들린다. 단두대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오직 희생을 불사하는 사랑의 숭고함만이 남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맥락의 어긋남'이 당황스러웠다. '저러다 목이 잘리는 결말인데, 결혼식에서 괜찮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그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대중이 왜 이 곡을 축가로 선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가 결혼식에서 듣고 싶은 건 '현실적인 생활비 계산'이나 '사소한 다툼의 예고'가 아니다. 비록 그것이 죽음 앞의 절규일지라도, 나보다 상대를 더 소중히 여기겠다는 그 뜨거운 마음의 원형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앙리가 빅터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듯, 신랑 신부도 서로의 꿈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이 빌려온 멜로디에 싣는 셈이다.
결국 예술이란 창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의 삶 속에서 재탄생하기 마련이다. 단두대라는 서늘한 사형대 위에서 피어난 비극의 절규가, 누군가에겐 생애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찬가로 변주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가진 기묘하고도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텍스트는 박제되어 있을지언정, 그것을 불러내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이 매번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비록 이 노래의 본래 맥락은 '사형장'이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노래를 부르는 이의 간절한 진심과 그것을 받는 이의 벅찬 감동이 투명하게 맞닿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우리가 통과하는 '결혼'이라는 긴 여정 역시, 이 넘버의 서사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때로 나의 고집과 이기심을 기꺼이 단두대 위에 올리는 과정이다. 나를 조금씩 죽여 상대를 살리고, 나의 안위보다 상대의 꿈을 먼저 보살피는 그 기분 좋은 희생의 연속. 그렇게 본다면 "너의 꿈속에서 살 수 있다면"이라는 고백은, 죽음을 앞둔 이의 유언인 동시에 사랑을 시작하는 이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약속이 된다.
그러니 이제 다음 결혼식에서 다시 이 멜로디를 듣게 된다면, 더 이상 '뮤덕'의 예민한 촉을 세우며 단두대를 떠올려 움찔거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가사 마디마디에 담긴 숭고한 무게를 음미해 본다. 비극마저 축복으로 바꾸어버리는 그 사랑의 에너지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 비장하고도 웅장한 선율만큼이나 단단하게 펼쳐질 두 사람의 앞날을, 오해라는 이름의 더 큰 진심을 담아 마음 다해 축복해 줄 뿐이다.
사실 이 분야(맥락 파괴 축가)의 조상님 격이자 부동의 1위는 단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다.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곡은 대한민국 모든 예식장의 국민 축가로 통하지만, 사실 극 중 지킬 박사가 자기 몸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투여하기 직전에 부르는 일종의 '임상시험 선언문'이다.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비장한 다짐은 곧이어 자아 분열이라는 파국(하이드의 등장)으로 이어지니, 엄밀히 따지면 '지금 이 순간' 이후에 펼쳐질 미래는 핑크빛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말도 못 할 고통이 찾아와도 내 운명 받아들여"라는 가사만큼은, 폭풍 같은 결혼 생활의 파고를 견뎌내야 할 모든 신랑·신부에게 바치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응원가가 아닐까. 어쩌면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때로 나 안의 또 다른 자아(하이드)를 마주하더라도, 기꺼이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험이라는 것을.
이 글이 브런치 독자들에게 뮤지컬의 깊이와 삶의 통찰을 동시에 전해주는 따뜻한 기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