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ㅈㅇ을 잘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긍정적인 사람일까,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일까.
어느 출근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으로부터 밝다고, 긍정적이라고 칭찬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나 역시도 내가 매사에 감사하는 편이고 작은 것으로부터 행복을 잘 찾아낸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이더라도 긍정적이고 밝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의 표출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요 며칠 동안은 자기 긍정, 감사, 자기 합리화 이 세 개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나는 어디에 더 가까운 편인지 고민을 이어갔다. 그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던 중 김희삼의 <행복공부 :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을 읽다가, 내 고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구절들을 찾았다.
긍정적인 사고는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적용된다. 과거에 대해서는 만족감, 감사, 안도감, 성취감, 자부심, 평점심을 갖는 것이다. 현재에 대해서는 기쁨, 평온함, 열의, 정열, 몰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성, 희망, 신념, 신뢰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긍정성은 반드시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낙관적 신념을 갖고 현재 열의와 정열을 기울이며 몰입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내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자기합리화는 과거지향적이고 과거의 자신에게 시선이 맞춰져 있다.
자기합리화를 통해 마음이나 좀 편해지려고 자기 선택의 강점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잠재적인 장점을 미래의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저자 김희삼에 따르면 자기 긍정은 미래에, 자기 합리화는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내가 이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올해 몇 가지 변화와 사건을 맞이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올해 결혼을 하고 잠깐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가, 감사하게도 바로 오빠의 근무지가 현재 내 근무지 쪽으로 이전해서 주말부부가 아닌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신혼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오빠가 수도권에서 대전으로 내려오는 상황이었고, 오빠는 대전에 아무 연고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오빠에게 맞춰 주고 싶어서 오빠의 근무지 근처로 신혼집을 구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신혼집과 내 직장과의 거리가 상당해 퇴근길에 막힐 때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곤 한다. 출근길도 막히기 전에 출발해야 하다 보니 오전 7시 정도에 집에서 나설 정도이다. 이전보다 길어진 출퇴근길을 마주하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고,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조금 힘들었었다. 그때 나는 최대한 밝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마주하고자 했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거의 지킬앤하이드 속 주인공처럼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오빠가 여기 대전까지 와주었는데, 이정도 출퇴근 거리로 불만을 갖지 말자.
(너무 막힐 땐) 아, 미치겠다. 전세 4년만 채우고 이사 가야겠네.
그래도 나 혼자 차에서 오롯이 음악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막힐 때마다 유튜브 보기, 꿀잼.
등등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며, 감사할 것들도 많이 찾기도 했다.
오빠가 대전 한 번에 내려올 줄 몰랐는데,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같이 밥 먹고 운동 가고 잠드는 일상이 정말 소중하고 편안해.
그래,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거야. 출퇴근길이 비록 조금 힘들지만, 좋은 집에서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나는 자기긍정도 자기 합리화도 아닌 오직 ‘적응’에 제일 능한 사람이었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금방 적응하는 것이 나의 체질이자 특기임을 잠깐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를 몸소 실현하고 있는 한 명의 인간이다. 그러니까 감사를 이어가기도 전에, 긍정거리를 찾아가다, 부정적인 상황들에 비해 지금이 나은 거라 자기 합리화에 강한 사람이다라고 외우기도 전에 어떤 상황이든 적응을 해버린, 그런 인간.
그래도 나는 적응을 긍정이라 읽고 싶다. 어느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도 충분히 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부정보다는 긍정에 더 가까운 언어라 해석할 수 있으니까. 빛과 그림자처럼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희(喜)와 하나의 비(悲)가 있다면 조금 더 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 그렇다고 비를 외면하는 것이 아닌, 비에게서 또 다른 희를 볼 줄 아는 사람, 혹은 또 다른 의미를 충분히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2023년 올해를 돌아보건대, 슬픈 일보다는 기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결혼과 신혼생활이라는 커다란 기쁨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그 사이사이보다 충분한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실망감도 자리했었다. 신혼집의 구조상 원하던 가전을 배치하지 못하고 고통 받으며 애먹을 때, 결혼 전 산부인과에서 난소 기형종 수술 일정을 잡았을 때 등 힘들었던 순간들이 이미 내게 충분히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좋은 것들을 더 기억할 수 있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레벨업'이라고 라벨링할 수 있는 것은 내 선택에 의해서였으니까. 그러니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숨쉬고, 더 밝은 면을 보기로 선택하기로 하는 건 나임을 잊지 않으며, 새해를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