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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an 15. 2024

문학의 이름, ‘모든 것들의 세계’

2023 문학나눔 독후감 공모전 성인부 장려상 수상한 작품입니다.

해당 글은 2023 문학나눔 독후감 공모전 성인부 장려상 수상한 작품으로, 

이유리 작가의 <모든 것들의 세계> 독후감입니다. 






“내 얘기는 아니고, 아는 사람 얘기인데….”


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본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짐의 이야기이노라!’라고 밝히는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처럼 설명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하게 파헤쳐 보자면, 차마 내 이야기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상대방으로부터 정확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혔기에 조심스러워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 경우마다 다를 저의를 막론하고 우리는 상대방이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라며 입을 열 때, 그 밑에 숨겨진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가?”하고. 


 사실 이는 문학을 접할 때 나오는 내 독서습관이다. 문학이 일정 허구가 바탕인 세계를 기반임을 고려할 때, 궁금증이 피어 오른다. 대체 왜? 어떤 이유로 작가는 이 같은 세계관을 만들고, 이런 설정을 소설에 심었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얼 전하고 싶어하는 걸까? 등의 질문을 가득 품은 채,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 앞에 기꺼이 마주앉는다. 그리고 그 모든 세계에 귀를 기울인다. 


 <모든 것들의 세계>는 <브로콜리 펀치>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전한 이유리 작가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전작을 누구보다 신나게 읽었기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탐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당 작품에 수록된 3가지 단편 소설을 통해 보여준 그녀만의 세계관은 오묘하며 새로웠고, 각 소설마다 등장한 독특한 설정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소멸하기까지의 조건(「모든 것들의 세계」), 인생에서 단 한 번, 내가 아닌 타인에게 속마음을 전하는 장치의 소유권을 양도할 수 있다는 것(「마음소라」), 그리고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이 시점에서 등장한 귀엽고 무해한 그리고 하나뿐인 반려 요정(「페어리 코인」)까지. 현실에서 다소 한 발짝 붕 떨어져 있는 설정들이 소설의 신비감을 더했다. 작가는 왜 이 설정들을 기획했을까. 작가가 <모든 것들의 세계>에서 표현된 이 3가지 설정과 그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통해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모든 것들이’ 담긴 그 ‘세계’ 속으로의 여정에 참여하며, 작가의 목소리에 더 깊이 집중하기로 했다. 무얼 이야기하고 싶길래, 귀신과 요상한 장치 그리고 요정을 언급하시나요. ‘아는 사람 얘기’가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꽤 재밌네요, 하고. 


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에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야 함이 마땅한 이들이 다시 이승에 등장한다. 그들이 완전히 소멸하기 위해선 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에 주인공 고양미는 고백한다, “잊히고 싶지 않았다. (중간 생략) 다른 누군가의 세계 어느 한구석에는 끝내 남아 있고 싶었다(30페이지).”고. 그러나 그녀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긴다, 함께 귀신 처지로 붙어 있게 된 ‘천주안’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본인과 다르게, 살아 생전 깊은 애정 관계를 형성했던 ‘천주안’이 그가 사랑한 연인 곁으로 귀신으로나마 돌아가게 된 걸 보고 “기어이 잊혔음을 기뻐하며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39페이지)” 바라게 된다. 해당 작품의 세계 속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특히 기억에 관해서 주인공의 생각은 변화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의 세계」의 설정은 곧 질문이다. 삶과 죽음에서 기억이 가진 영향력이 소설의 주된 설정임을 인지한다면, 이유리 작가가 내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들이 있다. 「모든 것들의 세계」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이별로 인해 이승을 떠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사실 이 소설은 남겨진 자들을 위한 이야기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필연적 운명이다. 누군가는 떠날 수밖에 없고 또 누군가는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반복. 이처럼 조금씩 변주되는 이 비극 속에서도 작은 희망이 있다면, 이는 곧 살아생전의 기억과 이를 통해 다시금 마주하는 누군가의 존재감이다. 서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생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 등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크든 작든 일정 흔적을 묻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죽음으로 인해 이 세상에 부재하게 되더라도, 그가 잠시 나의 곁에 머물렀던 기억을 통해 다시 그를 세상에 호명할 수 있다. 당신이 비록 물리적으로 부재할지 언정, 이렇게 내 안에 또 생생히 살아 있다고.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지 언정,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그러나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듯,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했던 기억은 금세 흐릿해질 것이며,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인 망각으로 인해 누군가는 결국 필연적으로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소멸될 것이다. 그것이 삶과 죽음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기억’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있다. 죽음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죽음조차도 감히 앗아가지 못하는 삶 속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희망이 절대적으로 영원한 것은 아닐지 언정, 기억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 때문에 「모든 것들의 세계」는 삶과 죽음의 연속선상 속 기억의 의미를 상기시켜주고, 동시에 기억의 잊힘을 환기시켜 자연스러운 이치를 감상하도록 한다. 또한 남겨진 자들에겐 위안을 전한다. 기억만으로 그를 삶 안에서 잠시 존재하도록 붙잡을 수 있다, 다만 그것 역시 영원하지 않더라도 그 역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고.


두 번째 이야기인 「마음소라」는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마음소라’라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한다. 주인공 ‘양고미’는 전 남자친구인 ‘안도일’의 ‘마음소라’를 받아본 적이 있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 진실한 사랑에 대한 증표로 자신에게 준 ‘마음소라’를 안겨준 애인 ‘안도일’과의 관계는 이미 7년 전에 단절되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안도일’이 용기 내어 자신의 온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주었다는 변치 않은 진실이다. ‘마음소라’라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건 이를 상대방에게 기꺼이 줄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마음임에 주목해야 한다(마음소라는 그 자체로도 귀했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번 누군가에게 마음소라를 선물하면 평생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55페이지)). ‘마음소라’의 양도는 실로 순수한 어느 시기의 진실된 사랑의 증명이자 그 당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전부는 아니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안도일’의 아내 ‘천양희’는 ‘양고미’에게 그의 ‘마음소라’를 자신에게 주라는 요청과 함께 이를 통해 남편의 속마음을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안도일’의 진짜 마음을 듣게 된 ‘양고미’는 이를 그대로 전하지 않고, ‘천양희’가 바라는 바를 전하는 걸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안도일’과 ‘양고미’가 진실되게 사랑하고 서로의 진심을 주고받는 데에 거침 없던 시절과 달리, ‘안도일’이 ‘천양희’에게 주는 사랑은 ‘둘이 어떻게 결혼까지 도달했을까’ 싶을 정도로 지루하다. ‘천양희’가 만삭인 상태로 집을 나왔어도 그녀를 애타게 찾지 않는다. 이에 ‘양고미’는 ‘안도일’과의 뜨거웠던 시간을 돌아보며 ‘그게 정말 나였고 도일이었을까(75페이지)’라는 의문까지 들 지경이다. <모든 것들의 세계> 뒤편에 수록된 전승민의 해설(마음의 형태학 : 귀신, 마음소라 그리고 요정)에 따르면 ‘안도일’은 ‘타인에게 진심을 내어주고 자신의 마음의 일부를 영구 훼손당하고 만 사람(152페이지)’이다. 그러나 영구 훼손 당한 결과보다는 진심을 내어줄 수 있었던 그 시기에 주목해야 한다. 해당 작품은 ‘마음소라’라는 새로운 설정을 중심 축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에, ‘마음소라’가 가진 특수성인 ‘인생에서 단 한 번 내가 아닌 타인에게 속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장치의 소유권을 넘길 수 있는’ 설정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그 한 번으로 인해 비록 마음의 일부가 영구 훼손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안도일’은 오직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온전히 만났을 뿐이다. ‘안도일’의 마음을 온전히 받은 ‘양고미’가 아닌, 자신의 마음소라를 내어줄 수 있었던 순수했던 시기가 존재했던 ‘안도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음소라’를 통해 대변되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인 이유’는 정말 ‘단 한 번’이어서가 아니라 일생의 ‘단 한 번’이라고 칭할 정도로 특수하고 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누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것을 부어준 듯 가슴이 묵직하고 발이 저절로 동동 굴러질 만큼 기분(52페이지)”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소라’보다 더 환상적인 차원이 아닐까. 내 마음 전부를 줄 수 있고 이를 실행한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무척 자랑스러워 할 일이다. 숨김 없이 내 마음을 표현하고 이를 행동으로도 증명해낸 용기가 한때 내게 있었다는 이야기이니까, 비록 상처받을지라도. 그러니 ‘단 한 번’이 가진 설정에 너무 갇히지 말고, 기꺼이 그 설정이 가진 삶의 특수한 일생일대의 경험에 몰입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마음소라’를 기쁘게 받기도, 또 기꺼이 주기도 했으니까. ‘마음소라’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정일 뿐, ‘마음소라의 양도’에 비추어 자신의 한때를 잠시 들춰보자. 다시는 그런 일이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감히 ‘단 한 번’이라고 표현해보는 그때를. 


「페어리 코인」에는 귀여운 요정이 등장한다. 돌봄을 위한 별도의 자본이나 노동력이 들어가지 않는 이 요정은 무해하고 존재만으로도 그저 귀여운 가치가 있다. 그런데 주인공들은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 전세 사기로 인해 자금난에 허덕이게 된 ‘나’와 ‘우진’은 ‘우진’의 친구 ‘현철’의 제안을 통해 이 요정을 통해 ‘페어리 코인’을 기획해 대국민 사기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 속 한 켠에 불편한 마음이 있던 와중. 사기 가해자로부터 사과의 연락이 오고, 과거에 ‘현철’이 ‘우진’을 배신한 역사를 기억하며 소설은 마침표를 찍는다. 전세사기와 코인의 판에 요정의 등장이라. <모든 것들의 세계>의 다른 두 작품도 그러하지만, 특히 「페어리 코인」은 진정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이야기다. 나는 이 요정이라는 설정이 갖는 그야말로 ‘뜬금포’에 주목하고 싶다.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114페이지)’세상 속에서, 복수를 하더라도 어느 방향을 향한 복수를 해야할지 당최 감이 안 잡히는 혼란 속에서 요정이라는 존재는 잠시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요정은 현실성을 망각시키는 존재가 아닌, 현실과의 거리를 둠으로 인해 오히려 ‘나’를 인지하도록 돕는 존재이다. 이 요정에겐 또 하나의 설정과 함께 약속이 등장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90페이지)’ 요정은 ‘나’의 고조모 때부터 긴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가족 같은 존재다. 몇 세대를 걸쳐 ‘나’에게 올 때까지 ‘절대로, 절대로 요정으로 돈벌이할 생각은 말라고. 자식이다 생각하고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라(92페이지)’는 약속은 암묵적으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이 오랜 약속을 깰 정도로 ‘나’와 ‘우진’에게 닥친 현실은 팍팍하다. 사기를 당하고 사회를 향한 배신감이 든 그녀는 ‘사람들을 속이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105페이지)’라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그녀 주변을 맴도는 무해한 요정이 있다. 아,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 그동안 모든 역사를 함께 해온 가족 같은 환상적 존재를 보며 현실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다. 내가 지금 결심한 이 방향이 정말 맞나, 싶은 작은 쉼표. 그것만으로는 걸어가지 말아야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든다. 그릇된 방향으로 향하는 길의 멈춤, 이로써 요정의 역할은 충분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머리 타래가 느껴졌다(126페이지).’ 요정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낭만적인 설정을 통한 분위기 전환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시대에 서 있더라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악함이 세상의 전부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내 그릇된 걸 잡으려고 하는 또 다른 힘이 있듯(“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런 짓을 하고 발 뻗고 자겠어요. 결국 오늘 제 돈으로 융자 다 갚았답니다. 지금 아빠랑 또 한판 하고 오는 길이에요(124페이지).”) 오늘도 무해하고 ‘나’의 주변을 맴도는 요정으로 때때로 일상은 비일상의 환기를 맞이한다. 결국 일상은 비일상만이 줄 수 있는 무해함으로 지탱되곤 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모종의 이유로 이 세상을 떠난 자들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불러와 잠시 위안을 얻자고, 지금은 당장 내일의 출근과 먹거리로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당신이지만 한때는 다시없을 것처럼 누군가를 온 맘 다해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적 있지 않았냐고, 그리고 퍽퍽한 현실 속에서 남들 따라 그릇된 길 걷는 대신 잠깐만 다시 한번 멈춰서 생각해 보자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작가 본인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들여 정성껏 만들고 그려낸 이야기 속으로 초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여러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힘. 이 문학의 힘으로 우리는 문학을 만나기 이전과는 조금 다른 나날을 그려낼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고, 조금 더 기대에 부푼 내일을 기대한다. 그래서일까. 현실과 동떨어진 귀신과 요정이 등장하는 다소 환상적인 요소가 버무려진 이야기들-이를테면 이유리 작가의 <모든 것들의 세계>-을 만나면 조금 더 들뜬다. 저 비현실적인 존재감 뒤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어떤 질문을 만나고, 어떤 대답을 찾아갈까. 

<모든 것들의 세계>가 그러하듯 가지각색 다채로운 서사들을 품고 있지만 어쩌면 전부 “(아는) 사람 얘기”로 귀결될 문학이라는 세계가 있다. 어떤 생각이라도, 어떤 감상이라도 소외시키지 않고 그 모두를 품는 ‘모든 것들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문학의 또 다른 이름을 ‘모든 것들의 세계’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 세계를 만날 때면 매번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언제나 벅차오른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누군가가 정성껏 만든 하나의 세계 안에 숨겨진 여러 설정들을 기쁘게 찾고, 때론 이에 나를 비추어 뚜벅뚜벅 걸어가 본다. 때론 설계자(작가)가 원하고 제시하는 방향 그대로의 길을 따라 걷지 못할지 언정, 문학의 빛이 비추는 길은 단 하나의 길이 아니기에, 어디로든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허용하는 그 세계로 한 걸음씩 걷고, 때론 멈추며 나만의 호흡으로 마침표를 향해 천천히 가본다. 그렇게 세계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제 나는 “아는 사람 얘기”가 아닌 “내 얘기”인 ‘내 모든 것들의 세계’를 다시 한번 기쁘게 집필할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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