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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an 23. 2024

사람이 좋으면서도 두려웠다feat.입사 동기들과의 재회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내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1.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나는 사람은 변한다는 의견-엄밀히 말하자면 ‘변할 수도 있다’-에 더 가깝다. 사람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이로 인한 충격을 소화하며 몇 번이고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나의 성격도 몇 번의 변곡점을 겪었다. 특히 대인관계 부문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20살이 되던 해에 가족의 품을 떠나 서울에서 새내기 생활을 하며 수많은 타인을 만났다. 그리고 똑같은 교복을 입고 정해진 인원수가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일상과 180도 다른 일상도 마주했다. 

사람이 좋으면서도 두려웠다. 그들이 나에게 애정을 줄 것을 알기에 반가운 만큼 때때로 상처를 줄 것을 알기에 무서웠다. 양가적인 감정에서 딜레마를 느낄 틈도 없이, 나는 기꺼이 낯선 세계에 용기 내어, 겁먹지 않고 내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투명한 의도는 누군가에게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것이 되었고, 나 역시 관계에 있어서 정답을 찾기 어려워 방황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람을 피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 들어가 자는 것이 가장 큰 휴식이었고,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것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다른 나의 욕심은 자꾸만 멈추지 않고 나아갔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스펙을 쌓으며 필연적으로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형성되고 맺었던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은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 결과였다. 그리고 더 당연한 것은 늘 끝에서 후회를 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나의 대외활동이 마무리될 때, 팀플이 유독 많았던 수업이 끝날 때, 그리고 학교를 졸업할 때 나의 후회는 거의 한결 같았다. 나는 또 내가 마주한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구나, 아니 안 했구나. 예견된 결과를 후회할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왜 시작과 과정에서 늘 주저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걸까. 

때론 이를 고치고자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반갑게 웃으며 새로운 인연을 환영했고, 있는 힘껏 즐거운 나날들과 추억 쌓기에 매진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윽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마주할 때면 허망했다. 우리의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고, 정말 특별하다고 자부하던 때를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흘러가는 시간들에 원망스런 눈길을 준 적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새로 시작되는 관계가 심드렁해지고, 관계를 이어 나가는 행위에 게을러졌다. 그리고 또 뻔한 결말을 맞이한다. 아, 최선을 다해서 그들과 함께할 걸. 흠, 악순환의 연속인 걸까. 

그러나 이는 오직 내 마음 혹은 내면의 목소리임을 안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오직 내 태도다. 부족한 나를 기꺼이 품고, 내가 인지 못하는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내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하는 내가 있다면 동시에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지금 현재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 이들 속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내가 있다. 그러면 나는 후회의 마음을 조금 지운다. 그래, 우리에겐 앞으로가 있잖아. 내가 더 최선을 다할게요, 다짐할 수 있다. 



2.

어제는 회사 입사 동기들을 만났다. 2016년 겨울에 약 10명 정도 입사했는데, 2023년 새해 현재 회사에 남아 있는 동기들은 나 포함 총 5명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회사에 출근해 어리숙하게 앉아 있던 그때 우리 모습이 무색하게, 어느덧 우린 각자 가정을 꾸렸거나 꾸릴 준비를 하는 삶의 일정 싸이클을 공유하고 있다. 패기 어리던 그때의 모습은 희석되고,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가능성은 자꾸만 꺾여간다. 비록 조금은 피곤한 낯빛으로 앉아있어도 각자 곁에 자기 삶 전부를 내어도 아깝지 않은 짝꿍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야, 너 진짜 잘해! 너 같은 애 만나주시는 게 어디야, 감사히 생각하고 평생 잘 모셔!”의 농담은 덤이고. 

회사 입사 당시 나는 홀로 여자였고, 회사와 관련된 전공 수료자가 아닌-물론 내가 맡은 직무에 있어선 전공자였지만-비전공자였다. 관련 교육을 몇 개월 이수 받으면서 여러 이유(낯선 학문 공부, 주말에 미용실 다녀와도 월요일에 머리 바뀐 걸 눈치 못 채는 동기 넘들,,등)에서 외롭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과거로 자꾸만 회귀했다.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동생들에게 하소연하고 보고 싶다고 찡얼거리며 그 시간들을 겨우 버텨냈다. 그러나 결국 그 시간들을 버텨내고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곁에 있는 동기들의 소중함 덕분이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그들의 존재가 주는 감사함을 잘 알고 있음과 동시에 몰랐다, 혹은 잘 외면했다. 

밥보다도 스타벅스 한 잔이 더 좋은 나를 위해 동기들은 부족한 잠을 충전할 수 있는 점심시간을 양보해 같이 커피를 사러 갔고, 주기적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나를 위해 연구소 근처 벚꽃나무와 사진을 찍어주었다(ㅋㅋㅋㅋ). 특정 부장님에게 자주 털리는 나를 위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도 해주고, 유독 심하게 털린 날 떠난 출장지에서는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도 같이 풀었다. 때론 “어머 00씨, 머리 했네! 잘 어울려!”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도 했다. 같은 근무지에서 일했던 모 동기하고는 출근 전 근처 스타벅스에서 일명 ‘모닝 스벅 타임’을 함께하며 서로 의지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지껏 이 회사에 잘 잔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딴청 피우게 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동기들과 거진 1년이라는 시간의 긴 교육을 공유하며-중간에 나는 실무에 투입되었고- 더 좋은 추억을 쌓지 못한 게 아쉽고,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늘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했던 내 모습이 안타깝다. 평소에 난 후회와 친한 편은 아니지만, 일정 관계에서 내가 마음 다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늘 이렇게 사무치게 후회스럽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는 건 동기들은 여전히 내 동기라는 사실과 그들 덕분에 나는 새로 맺어가는 관계에서 더 이상 소극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간단한 진리이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어제가 후회된다면 오늘부터 잘하면 된다고. 그러면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무쪼록 각자의 자리에서 건승하길, 꼭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행복하고 건강할 수만 있길, 동기들의 더 나은 날들을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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