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이 넓은, 그리하여 파장도 같이 커지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이다.
천선란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섭렵했음에도, 대표작인 <천 개의 파랑>은 적절한 시기에 만나고 싶어서-그리고 장편소설은 한 호흡에 다 읽는 게 중요하니까- 아껴 놓고 있었다.
긴 겨울이 끝나가고, 햇살이 반짝이는 3월 어느 주말 그 책을 만나, 하루만에 다 읽었다.
고백하건대 내가 그 전에 천선란 작가의 <뼈의 기록>이나 <어떤 물질의 사랑>을 읽지 않았더라면, <천 개의 파랑>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의 작품들에서 만났던 놀라운 감동이 <천 개의 파랑>에서 재현되고 있었던 지라, 깜짝 놀랄 만한 벅찬 감동이 내게 찾아 오진 않았다. 그럼에도 잔잔한 감동이 물결처럼 마음 속에 일렁였다.
그래도 따로 감상평까지 남길 정도의 인상적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한 심사평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책 맨 뒷 페이지에 있는 몇 몇 심사위원의 평가들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중단편으로도 충분히 끝날 이야기를 장편으로까지 늘린 것이 아니냐,는.
글쎄, 안타깝게도 심사위원은 서사를 잘 읽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천 개의 파랑>은 ‘장편’이기에 가치가 있는 책이다. 연재와 콜리를 비롯한 보경, 지수, 은혜, 복희, 서진, 민주 등 다양한 인물들이 촘촘히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에 의해 구원하고 함께 연대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는 기회랑 같은 말’이라는 연재의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작은 실수가 우연이 되고, 우연은 말도 안 되는 기적을 향해 뻗어 간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구절처럼 작은 우연들이 만나 서로의 어제를 극복할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천 개의 파랑>의 핵심 서사이기에, 이 책은 반드시 ‘장편’으로 써져야 했다.
특히 이 책의 핵심은 1대1 관계에서 빛을 발휘하고, 이러한 연대들이 겹쳐지고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다. 콜리와 투데이의 끈끈한 파트너십과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희생, 로봇에 대한 편견을 깨고 마음을 열어 가장 의지하는 존재로 자리를 내어준 보경의 변화 등을 비롯해 <천 개의 파랑>은 기존의 내 모습과 나의 상처 및 한계를 깨고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의지가 따뜻하게 담겼다. 그런 파도들의 일렁거림이 이 책의 중요한 정체성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와 변화들을 담아내야 했기에, <천 개의 파랑>은 장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횡단(橫斷)이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의 연대를 아우르고, 장애와 비장애를 전환시킨다.
은혜는 신기한 인간이다.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기구를 이용해 움직인다.
능수능란하고 힘차다.
은혜의 모든 움직임이 콜리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폭이 넓은, 그리하여 파장도 같이 커지는 <천 개의 파랑>이 가진 힘은 많은 독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그리하여 꾸준히 사랑 받는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무 편견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로봇 콜리에게서 희망을 찾듯 우리는 때때로 우리를 버려야 또 다른 우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을 믿고, 그들과 기꺼이 내일로 향해 가야 할 것이다, 천 개의 단어보다 몇 몇의 존재가 더 큰 파장을 일으키듯.
+ 천선란 작가의 <뼈의 기록>과 <어떤 물질의 사랑>을 굉장히 추천합니다.
천선란『어떤 물질의 사랑』나로 태어나 나를 사랑하기까지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