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컨디션, 나의 배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
임신 이후 변화한 일상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일상의 컨디션
임신 초기에는 임신에 내 몸이 적응하느라 그랬는지 한동안 몸살과 컨디션 난조로 꽤 힘들어했다. 아무래도 직장에 다니고 있다 보니, 업무 시 컨디션이 많이 떨어지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12주 이내 동안은 하루에 2시간 정도 단축 근로가 가능했기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집에서 쉴 때는 회사와 달리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기도 했을 정도로 많이 잤다. 내가 PMS가 심한 편이었던 지라, 계속 PMS가 이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고, 그 친구가 자라느라 어쩌면 나보다 더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큰 불평 불만 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컨디션 난조는 출산, 육아에도 계속 될 거라 아마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싶긴 해서 마음 편히 먹고 이를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번째, 나의 배
평생을 말라본 적도 없고 늘 다이어트를 달고 사는 나지만, 그래도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하나 있다면 그건 허리였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할 때는 24.5인치까지 찍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내 몸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곳이 허리였다. 아무리 살이 쪄도 27인치 이상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옷을 입을 때 허리가 잘록 들어가는 의상들만 골라 입을 정도였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니 의류 선택에 제한이 생겼다. 임신 초기였음에도 평상시에 입던 치마나 바지들의 허리가 맞지 않았고, 임신 이후에는 배에 힘을 줄 일이 없다 보니 고무줄이나 넉넉한 하의들을 찾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볼 때, 불룩 나온 내 배가 웃프기도 했다. 허벅지나 가슴 등 통통한 다른 부위들에 비해 가장 날씬하다고 볼 수 있던 허리가 실종되어 가고 앞 뒤 뱃살이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조금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 안에 애기가 열심히 집 짓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아직 15주차인데 앞으로가 시작이겠거니, 싶어서 나의 배 크기가 자라는 것에 얼른 적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조금 아쉽고 슬픈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점이 있다면, 내가 내 배를 쓰담쓰담 만지게 된다는 것. 이 배 안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누군가가 굉장히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배를 쓰담쓰담하면서 인사를 하게 된다. 안녕, 잘 지내고 있지,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무럭 무럭 잘 자렴 등등. 한 번도 나는 내 특정 신체부위를 사랑스럽게 만지거나 말을 걸어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고 낯설다. 아기를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내 자신을 다독이는 기분이라, 배 만지는 행위가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세 번째, 남편과의 관계
부부 사이에 아기가 있으면 그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대화 주제도 확장된다고 들어왔으나 사실상 임신 전에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었다. 임신 전에도 오빠와 나는 충분히 돈독한 관계였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난 이후 오빠와 나의 대화는 아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더 확장되고 깊어지는 걸 느낀다. 상대방의 장점을 닮은 아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가진 매력들을 다시 한 번 짚어주기에 애정 가득한 대화가 된다. 또한 오늘을 너머 내일을 같이 준비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삶의 진정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임신 후에 컨디션이 떨어지고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애써주는 모습 하나하나가 귀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과일을 깨끗하게 씻고 준비해주는 과정, 원래도 많이 하던 집안일에 더 신경 써주는 마음, 하나하나 배려가 깃든 행동 등 이런 사람과 가족이 되어 행복하고, 그를 닮았을 아이가 내게 왔다는 게 감사히 느껴진다. 이제 두 명이서 세 명이 된다면 더욱 정신 없고 의도와 마음과는 다르게 많이 부딪힐 순 있겠지만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말고 이 역시 잘 품고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