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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02. 2024

동생 결혼식에 시어머니를 초대하는 건가요?

한국에서 만나는 그녀


동생이 결혼을 했다. 새신부가 되어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난 그 애는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며 안부를 전했다.

동생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 측의 하객 규모를 130명으로 정한, 일명 ’ 스몰웨딩‘이었다. 두 사람의 직장이 모두 대전에 있기에, 그들은 대전의 작은 예식장 겸 연회장을 빌려 부부의 연을 맺는 자리를 만들었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가기 바로 전날, 친구 프리티가 나의 시어머니도 결혼식에 초대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별일 없이 고요했던 마음에 잔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도 내 동생 결혼식에 초대한다고?”

“그럼, 시어머니는 너의 가족이잖아. 가족 행사니깐 초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잘 생각해 봐.”

아마도 프리티가 가까운 친인척 모두를 가족으로 아우르는 인도사람들의 문화적 시각을 나에게도 적용한 걸 거라며 마음을 타일러 봤지만 문득 석 달쯤 전에 시어머니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까지 생각나면서 머릿속은 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동생 결혼할 때, 뭘 해주면 될까?‘

’어머님이요? 뭘 해주시긴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해야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활발하고, 나서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과 정 반대인 얌전하고 수줍은 둘째 동생을 나의 시어머니는 예뻐라 하셨다.

“어머님, 얘는 어머님한테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잖아요. 저니깐 어머님이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수 있죠.”

종합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동생과, 내가 살던 집에 어머님을 모시고 왔을 때, 어머님의 편애 아닌 편애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어머님께 던진 말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문제만 던지는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계속 동생만 칭찬하니 어딘가 억울한 기분이었다. 어머님이 내 동생을 좋게 보고, 예뻐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말이다.


프리티의 질문을 받은 나는 나의 시어머니를 동생의 결혼식에 초대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혹은 말아야 하는지 나는 커다란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실제로 친구 다돌에게 시어머니를 동생 결혼식에 초대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당연한 거라 했다.

“울 아빠도, 시누 결혼식 때 왔는걸?”

“또잉? 그럼 나는 어떻게 하지?”


시어머니께서는 때마침 한국에 가 계시고, 그녀가 있는 곳은 천안이라 대전과도 가깝기 때문에 지리적인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못할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런 행사에 참석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심심한 중년이었다. 문제는 시어머니가 참석을 하실 경우, 그녀를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식 사회를 맡았고, 남편은 축의금을 받는 임무를 맡았기에 기동력이 없는 그녀를 모시고 오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녀가 알아서 결혼식에 온다 하더라도 덩그러니 혼자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결혼식에 나타날지도 좀 잡을 수 없었다. 오래 창고에 쌓아두어 곰팡이 냄새가 나고 꾸깃 꾸깃 구겨진 옷을 세탁이며 다림질 없이 입고 시어머니가 나타나신다면, 나와 남편은 물론 엄마, 아빠도 꽤나 난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 엄마, 아빠도 시어머니를 공식적으로 초대하지 않은 상황. 아마 작년 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례에도 찾아오거나 부의도 하지 않은 분인 데다, 먼 타지에서 딸내미를 고생시킨 요주의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4개월간 고친 집을 또다시 엉망으로 만든 데다 그 집을 나와 생돈 300만 원씩 월세로 나가게 된 것도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나에게도 퍼부었던 욕지거리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남편은 어머님의 결혼식 참석을 결사 반대했다. 더군다나 스몰 웨딩 아니던가. 엄마 측 가족, 아빠 측 가족, 동생의 친구와 가까운 회사동료만 해도 이미 하객은 생각했던 규모 이상이었기에 아빠는 지인에게 결혼식이 있다는 것조차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말고도 셋째가 결혼하면 또 초대할 수 있을 거란 것이 아빠의 의견이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인데, 알리고 나서 스몰웨딩이라 초대할 수 없어 미안하다, 축의는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여러모로 아빠의 처신에 동감하지 못하면서 나는 한국에 가면 어머님께 찾아가 딱 이야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어머님께 여러 번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친가로 내려가 할머니를 뵙고 난 후, 나는 홀로 천안으로 향했다. 어른들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혹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되는 게 당연지사. 어머님의 천안집 근처 골목에 겨우 주차를 했을 때, 그제야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어, 어디냐?”

“어머님, 저 집 앞이에요. 겨우 차세웠어요.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한 달쯤 전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 시어머니는 용케도 자신이 사는 천안집의 뒷채를 세놓아, 그곳에 누군가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 동네에,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사람이 누굴까  했는데 몽골 출신의 딸 둘인 싱글맘이라고 했다. 역시 한국 사람이 들어올 리 없을 거란 나의 생각은 적중했고, 어머님이 홀로 그곳에 계신 것보다 지척에 사람이 들어와서 산다고 하니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었다. 딸 둘을 키우며 외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몽골 여인을 생각하니 내가 알고 지내던 몽골인 친구들도 떠올라 괜히 가슴이 짠해졌다.

집안에 도착하자 어머님은 예상대로 씻지도 않은 채 어질러진 집에서 나를 맞이하셨다. 몽골 여인에 대해 요것조것 말씀 하시다가, 데이트 가자고 했더니 오후에 집에서 성경모임이 있는데 취소해야겠다 하셨다. 나랑 나가면 멀리, 좋은 데 간다는 걸 아시는 분이다. 대충 얼굴을 씻고 난 후 코코넛 오일을 바르고, 창고 비닐봉지에서 옷을 꺼내 입은 후, 감지 않은 더벅머리에는 모자를 쓰셨다. 그럭저럭, 함께 나다닐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한국의 다른 예순한 살의 아줌마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늙어 있는 어머님의 얼굴을 보니 안된 마음이 들었다.

차를 타고 가며, 그녀에게 “어머님, 이번 결혼식 때 어머님도 초대해야 하는 게 맞는데, 스몰웨딩이라 양가의 직계가족만 초대하기로 해서 못 가실 것 같아요. 죄송해요.”했다. 그러자 그녀는 “안 가도 된다. 원래 안 가려고 했었다.” 하며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혹여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까 걱정했는데 쿨한 그녀의 반응에 지금까지 괜히 속을 끓였나 생각될 정도였다.


그녀를 데리고 민물장어집에 간 나는 참숯에다 구운 장어는 생강과 궁합이 잘 맞다며, 큰 쌈을 싸 어머님께 드렸다. 시어머니는 장어를 처음 먹어 본다고 했다.

“예전에 강화도 살 때, 놀러 온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이거 많이 먹더라고.”

“어머님, 그건 아마 곰장어나, 바닷장어 일거예요. 민물장어는 훨씬 더 비싸고 영양가 높은 거예요.”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사드리는 게 민물장어니, 나는 이게 좋은 거라 하며 어서 많이 드시라 쌈을 싸드렸다. 어머님은 장어탕과 밥 한 공기까지 다 드시고 식탁에 올라온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셨다.

“이런 거 사주는 건 너밖에 없다. 고맙다.”

“어머님 별말씀을요. 가끔이니깐 먹을 때는 좋은 거 먹어요 우리.”


이후, 홍차 카페에 들렀다. 계룡산 언저리 시골에 60대 여성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한옥카페인데, 나지막한 지붕 아래 예쁘게 가꾼 정원이 아주 소담스러운 곳이다. 마침 나를 알아봐 주는 사장님께 시어머니를 소개하고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어머님의 특이함을 감추기 위해 얼른 미국에서 오셔서 한국 물정을 잘 모르신다는 소개를 덧붙였다. 어머님과 사장님은 비슷한 연령대여서인지, 오래된 집을 고쳐본 경험 때문인지 꽤나 서로 잘 말씀하셨다. 물론 사장님은 집을 고쳐 카페로 활용하지만, 어머님은 2억을 들여 집을 고쳤다고는 하지만 단열, 난방 없이 못 사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엄청난 짐들이 방안을 그대로 메우고 있다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언제 어머님의 실체(?)가 드러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대화를 듣고 있다가 저녁 약속 때문에 어머님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카드를 내미는 내 뒤에서 현금이 낫지요? 하며 주섬주섬 돈을 꺼내셨다. 뭐라 대답 없는 사장님께 현금을 내려던 어머님은 비싼 커피값에 놀랐다. 그리고는 사장님의 명함을 쥐어가며 나중에 우리 집에도 놀러 오세요 했다. 어떻게 그 집을 남들에게 보여주려 하시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디 어머님이 사장님께 전화하지 않아야 할 텐데. 하지만 그녀는 분명 전화할 거라고 이 사실을 미국에서 전해 들은 남편이 말했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 어머님은 정원에 핀 낯 달맞이꽃을 좀 가져가도 되겠냐고 사장님께 물었고, 사장님은 흔쾌히 삽자루로 예쁜 꽃을 퍼주셨다.


약속시간이 다된 탓에 어머님을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님, 잘 지내시고 무슨 일 있으시면 꼭 연락하세요. 전화도 좀 잘 받으시고요.”

“응. 고맙다. 잘 가.”

알다가도 알 수 없는 어머님을 버스터미널에 남겨둔 채 나는 친구를 만나러 차를 몰았다.


어머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님은 여전히 나에게 탐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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