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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y 31. 2024

아빠와 스타벅스

인색한 친구에게 커피를 사주겠어요?

아빠와 스타벅스에 앉았다. 5월인데 초여름처럼 더웠다. 산에도 신록이 물들어 무성한 잎을 흔드는 날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 커피숍의 통 창에는 초록 무리가 일렁거리며 눈에 가득 찼다. 아빠는 스타벅스가 비싼 줄 알았단다. 아빠는 자신의 친구 아들이 운영하는 커피집에서 6,000원짜리 라테를 마시면서 스타벅스가 비싼 줄 아는 멋모르는 아저씨다.


“스타벅스 커피가 더 싸.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류도 많고. 요즘 생긴 매장들은 넓어서 쾌적하고 좋아.”

“맞네. 시원하고 좋다. 엄마랑도 와야겠다.”

좋은 걸 보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아빠가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아빠는 전형적인 경상도 꼰대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고 토목업에 종사하여 강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일하다 보니 말하는 것이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달달한 더블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나에게 자신의 친구얘길 하기 시작했다.


“아빠 친구 중에, 목수 하는 놈 있잖아. 금마는 이런 거 한번 못 묵어 봤단다. 믹스커피나 묵어봤지, 이런데 들어와서 커피 한 번 먹어 본 적 없단다.”

“그럼 이제 아빠가 먹어봤으니깐, 사주면 되겠네.”

“근데, 금마한테는 사주기 싫다.”

“왜 사주기 싫은데?”

“금마는 돈 쓸 줄 모른다. 가가 초등학교만 나왔거든. 집안 형편이 안 돼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다음날 바로 목공소에 가서 일했다 카데. 거기서 돈 벌어서, 자기 동생들 다 학교 보내고, 엄마한테 돈 주고 그랬다더라. 처음 월급을 받아가지고, 13살 작은 걸음으로 집에 쫓아 바래기 해가지고 엄마한테 돈 준 게 그렇게 생생하다 카더라.”

“그럼 정말 훌륭한 친구네, 가정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일하고, 칭찬받아야 되겠다. 안 그래? 친구 고생했다고 커피 한잔 사주면 되겠네.”

“그런 거 보면 대견하고 그렇긴 하지. 근데, 가가 그렇게 돈을 모아가지고, 남한테 쓸 줄을 모르는 기라. 자기 식구만 챙기지. 얼마나 구두 쇤 지. 친구들한테 밥 한 끼 사는 게 없다니깐. 친구들 모여서 밥 먹어도 돈 낼 때 되면 어디 가버리고, 내랑 같이 공사할 때도, 공용 비용으로 기름이나, 공구 같은 걸 왕창 산 다음에 남는 건 자기 가져가고 그런다니까? 어찌나 자기 걸 챙길라고 하는지. 뭐 하나 주기 싫다.”

“그래도 마음을 넓게 써서 커피 한잔 사줄 수도 있잖아.”

“암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인색한 아 한테는 커피 사주기 싫다.”

“인색하신 것 같긴 하네.”

“글세, 지난번에 대전 집 문 수리 하는데도. 나라면 내 기술 써가지고 자기 집 고쳐 달라 그라면 돈 안 받을 것 같은데. 얼마 줄꼬 하니깐 글쎄 35만 원 딱 달라는 거 있잖아. 내가 밥도 사고, 운전하고, 지는 한 시간 문짝

간 게 단데, 친구라는 놈이 그렇다니깐. 그게 무슨 친구고?”

“일을 했으니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겠지, 뭐 나라면 친구 딸내미 집 문짝 놀기 삼아 긁어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아저씨 형편이 그리 좋지 않나 보지 뭐. 그렇게 못 마땅하면 아빠는 같이 왜 놀아?”

“형편 안 어렵다. 그보다도 금마가 내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 내가 일하는 거 보면 기가 막히잖아.”

“거 참. 애매한 우정이네.”


아빠가 어떻게 일하는지 본 적 없는 나는 뜬금없는 아빠 친구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피지오를 빨았다.

친구가 어려운 성장 배경 탓에 구두쇠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인색한 그 모습이 싫었던 걸까?

혹은 자신이 그를 위하는 것만큼 그 친구가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 서운한 마음인 걸까?

자신은 풍족한 게 있으면 뭐든지 남들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데, 그 친구에게만큼은 계산을 하게 된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샘이 빠른 사람에게 품을 내어주면 그 사람이 계속 받아먹기만 할지, 아님 고마움에 보답을 하며 나누는 정을 배우게 될지 궁금해졌다.

어린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지고 두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는 아저씨의 13살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고 애잔하기도 했다.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특정인에게 마음을 내는 건 어려운가 보다.


커피 한잔에 아빠와, 얼굴도 모르는 아빠 친구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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