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
주말을 맞아 캘리포니아 1번 국도를 달렸다. 해안의 절경을 바라보며 한 시간 반 드라이브를 한 종착지는 산타크루즈의 한 카페였다.
시동생이 졸업한 학교가 있는 그 아담한 도시는 아기자기하게 낮은 빌딩과 예쁘게 관리된 화단, 빈티지한 상점들로 가득했다. 그가 학부시절 자주 찾았다는 카페 Verve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며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I was also in line!(나도 줄 서 있던 거였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힝구는 갑자기 들려오는 큰 소리에 뒤를 휙 하고 돌아봤다. 노숙자 차림의 자그마한 여성이 화를 내며 카페의 뒷문으로 씩씩 거리며 나가고 있었다. 전면 유리인 창으로 거리 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화가 난 그녀는 길바닥에 꼬깃꼬깃한 지폐 5개를 던지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앞을 지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마 그녀가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섰지만 꼬릿 한 냄새와 옷차림 때문에 누군가가 제지를 했고, 그에 화가 난 그녀가 소리를 치고 나가 바닥에 돈을 던진 것일 거다.
“저 돈은 어떻게 해?” 내가 말했다.
“가서 주워.” 힝구가 말했지만 농담인 줄 알고 있었다.
약 20초 동안 바닥 위에 돈이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때, 우리 옆에 앉은 흰머리 아저씨가 나가 돈을 주웠다. 나는 말없이 아저씨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 돈을 노숙자에게 가져다주기엔 조금 늦은 것 같았다. 그는 돈을 펴더니 자기 주머니에 넣고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와 우리 옆에 앉았다.
“헐, 저걸 어떻게 주울 수가 있어?” 같은 말을 동시에 했지만 나와 힝구가 내포하는 의미는 달랐다. 나는 불행한 여성의 돈을 주어 취한 그의 양심에 놀랐고, 힝구는 더러워 보이는 돈을 손으로 집은 것에 놀랐다.
그가 돈을 줍고 들어오자 잠시 후 또 다른 노숙자가 그 앞을 지나갔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저 아저씨 꺼였는데.”
조금 더 필요로 한 사람에게 그 돈이 가지 못한 것이 왠지 아쉬웠다.
순간의 사건들이었지만 너무 많은 인생의 서사가 녹아 있는 드라마 같았다.
한 여성은 자신의 존엄성이 무참히 밟힌 사건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돈을 거리에 내팽겨 쳤다. 돈이 더럽든 말든, 어디서 왔든 상관없이 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돈을 주운 아저씨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었던가, 그 돈을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은 한발 늦게 사건의 장면에 나타났다. 우습고도 슬픈 커피숍이다.
노숙인 사건이 머릿속에서 잠잠해질 때쯤, 귀여운 모자를 쓴 청년이 한 노숙인이 머물러 어질러진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줍더니 쓰레기통에 넣고 사라졌다. 다시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나라면 절대 집지 않을 더러운 바나나껍질과 병, 종이뭉치를 손으로 쓸어 담은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해하지 못할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창밖으로 펼쳐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이 오해와 갈등과 불행으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살만한 곳이란 걸 가르쳐주기 위한 연극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