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양희 Jun 17. 2024

미술관을 좋아하세요?

저녁에 떠나는 미술관 나들이


프리티는 샌프란시스코에 5년이나 살았는데도 도시 내에 안 간 본 곳이 많았다. '어떻게 그래?' 내가 물어본다. '글세, 코로나 때문이었다고 할까?' '코로나는 도시 탐방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타당한 변명거리가 되지 못해.' 미국인들은 코로나가 한창 일 때도 마스크 없이 당당하게 얼굴을 까고 온 도시를 누볐었다. 아참, 프리티는 인도인이었지?  하지만 이곳에 25년이나 산 인도사람이라면 미국인과 다름없지 않던가. 프리티의 국적 정체성에 대한 토론이 머릿속에서 한참 펼쳐졌고,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서울로 학교를 진학했을 때, 서울 사는 애들이 서울에 대해 더 몰랐던 게 기억난다. 시간 날 때면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며, 남대문, 이태원을 돌아다니던 나는 방랑자이자 탐험가였지만 서울에 살던 애들에겐 그저 집과 학교만이 존재했던 것 같다. 프리티에게도 샌프란은 집과 일터만 존재하는 곳인가? 그녀는 재택근무자인데? 그럼 집과 집만 존재하는 곳? 나는 늘 생활 반경을 늘리고 싶은 사람이기에 한 곳에 갇혀 생활하는 프리티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꼈다. 물론 그 연민은 그리 깊지도 않은 데다 순전히 나만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아주 잘 나가는 개발자에다가 좋은 집에 살고 있는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인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 마음대로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구경을 마음껏 하지 못한 가엾은 프리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녀와 함께 걸으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와 사연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켠 것 같다.


똑똑한 라디오와 함께 그녀가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골든게이트파크의 스트로베리 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훌륭한 언변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재시험 없이 운전면허를 통과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었다. 재미있는 동행과 함께해서였는지 시간은 훌쩍 흘러갔지만 우리는 더 산책을 하고 팠다. 우리는 공원을 따라가며 계속 걸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재패니즈 티 가든과 드 영 미술관을 그녀에게 소개했다.

"난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어."

"뭐?!!!!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고?"

그녀처럼 세련되고 똑똑한 여성이 미술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크게 놀랐다.

"안 되겠어. 지금 들어가자!"

나는 무작정 그녀를 미술관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미술관 운영시간이 훌쩍 지난 6시 15분임을 알아챘다. 그런데 웬걸? 미술관 안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데 말이다. 우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엔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회원이신가요?"

'회원? 회원들을 위한 행사였구나. 할 수 없이 돌아가야겠다.'

토요일이면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사람들은 모두 무료입장이 가능하니, 그때 다시 오자고 프리티에게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그에게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고 있었다.

"회원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산책을 하다 문이 열려 있어 우연히 들어왔어요. 혹시 당신도 좋은 사람이라면 우리를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나요?"

턱도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무리수가 직원에게 던져졌고, 이상하게도 직원은 우리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스티커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은 운이 참 좋네요. 마침 두 개의 무료 초대권이 저에게 있으니 이걸 드리죠."

내 눈은 정말 토끼 같이 커졌다. 이게 통하다니? 프리티마저도 깜짝 놀랐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옷을 잘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카와 운동복 바지를 입은 채로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갑작스레 찾아간 드 영에서 하는 오늘의 특별 전시회는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드레스들과 꽃꽂이 장식이었다. 야간에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특별전시회를 보다니,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직원이 건네준 스티커를 옷에 붙이며 소수의 상류사회 사람들을 초대해 여는 갤러리 오프닝 파티 같은 곳에 출입할 거라 생각하며 잔뜩 흥분했다. 그리고 장소에 맞지 않게 트레이닝복을 입은 우리의 모습에 조금은 머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흥분할 것도 머쓱해할 필요도 없었다. 배타적이고 특권적인(Exclusive) 느낌보다는 연장 운영에 가까운 탓이다. 전시회의 포맷도 휴스턴 미술관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장면이었다. 미술관의 빈 공간에 꽃꽂이 작품들을 놓아둔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회화나 조각을 좋아하는 나로서, 설치미술이나 꽃꽂이, 디올과 샤넬에서 만든 골동품(?) 드레스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보고 싶은 그림들을 꽃들이 가려 조금은 걸리적거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꽃꽂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용감무쌍함과 결합하여 인위성이 크게 돋보였는데,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길가의 꽃들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작품들에 거부감 마저 들었다. 예술은 새로운 시도로 지평을 넓혀가는 철학적 활동인데, 나는 그런 예술적 시도를 감탄하면서도 여전히 편식하는 아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미술’만 찾는다.



프리티에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회화의 변천사 등을 멋지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형태의 예술 작품들인 꽃과 드레스에 둘러싸였다. 게다가 드 영 미술관에는 내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몇 점 없고, 현대미술과 미국작가의 작품이 많아 작품을 설명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나중에 우리 같이 리전 오브 어너(Legion of Honor)에 같이 가자. 거긴 유명한 모네, 드가, 반고흐 작품들도 있어서 더 재미있을 거야.”

”누구 작품?”

“인상주의 화가들 말이야. 모네, 드가, 반고흐.”

“Oh sweet girl, I never heard of those painters. I was not able to know art at all. (친구야. 난 그런 화가들을 몰라. 예술에 대해서 접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어.)”

인구가 많아 한국보다 더 학업 경쟁과 스트레스가 심한 곳이 인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인도의 교육과정도 개혁이 필요한 것 같다.



넓은 드 영 미술관을 빠져나오며 프리티가 말했다.

“어 저기 카페도 있었네?”

“응, 카페가 반은 야외고 통창이라 분위기가 좋아. 커피 마실래? “

”아니, 집에 가서 차이 마시는 게 더 좋아. “

우리 둘은 커피보다는 차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프리티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 역시 그녀가 차이를 잘 만드는 것이다.


”오늘은 산책만 할 줄 알았는데, 덕분에 미술관까지 오고 너무 멋졌어. “

늘 긍정적인 언사로 함께 있을 때 기분을 좋게 만드는 프리티는 두 손을 잡고 또 한 번 감탄했다.

”나도 너무 좋았어. 덕분에 늦은 저녁에 미술관을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

우리는 팔짱을 끼고 차로 돌아갔다.

8시가 되어도 밝은 하늘 속 태양이 그제야 언덕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