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진단명
지속되는 가슴통증으로 겨우 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던 나는 가장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프렉티셔너 너스(진료와 진단이 가능한 간호사)와의 면담 이후, 심전도 검사와 엑스레이, 피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심장도 잘 뛰고, 뼈도 부러진 곳이 없으며, 유전이라 할 수 있는 고지혈증 말고는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했다. 진단을 위해 만나는 의료진과 계속해서 반복된 알레르기, 생활습관, 병력, 증상 관련 네 번의 비효율적인 설문이 있었던 것 과는 달리, 검사 결과는 바로 다음날 아침 어플로 전달되었다. 엄청난 비효율적 시스템에서 만난 놀라운 테크놀로지의 편의성이었다. 미국은 항상 양극단을 달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특히 행정 시스템을 처리할 때, 직원들이 기록을 즉각적으로 데이터화하지 않거나, 혹은 데이터를 찾아보고 읽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것 같다. 한국의 직장인이었다면, 찾아서 볼 수 있는 것을 네 번, 다섯 번 물어보는 직원을 능력 없다고 생각할 텐데. 내가 직장 상사가 아니라 환자여서 그런지 한 번, 두 번, 세 번, 더 확실히 하고 싶어서였는지 그들은 기록이 아닌 말로 확인하며 환자의 피로도를 높였다.
검사를 마치고 하루 뒤, 드디어 전화, 어플, 이메일로 나의 주치의와의 면담일이 잡혔다. 차를 달려 산마테오에 있는 카이저에 나의 주치의를 만나러 갔을 때는 이전에 겪었던 혼돈을 반복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등록도 어플로 가능했다. 미국에서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 안에 들어와야 했다. 처음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수고스러움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이 어플로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등록 후 간호사가 진료실로 안내했고, 간단하게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잰 후 의사가 올 거라 말해주었다. 잠시 후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키의 자그마한 여성이 들어왔다. 온라인상의 사진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던 작은 체구의 선생님이 나의 주치의였다. 선생님은 마찬가지로 나에게 요것조것 물어봤다. 이젠 익숙해진 진료과정에 이미 차트에 다 있을 나의 정보에 대해 줄줄 읊었고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고선 다 괜찮고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그럼 제 가슴 통증은요, 선생님?"
"자, 지금 한번 볼게요."
선생님은 그 연약한 팔로 내 두꺼운 가슴과 어깨 등을 콕콕 눌러가며 진찰을 했고, 나의 팔을 들어 올려 뒤로 앞뒤로 돌렸다가 내려놓았다. 선생님에게 내 팔이 무거울까 봐 나는 스스로 내 팔에 많은 힘을 주어 들어 올렸다.
"근육통인 것 같네요."
"네? 근육통이요?"
고작 근육통이라니.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기 위해 겪어온 일련의 사건(이전 글을 보시라)들을 생각하니 그 진단명이 너무나도 허무했다. 사실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동안 미루던 요가를 열심히 했었다. 나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한국이었다면 나는 정형외과를 찾을 거다. 이미 작년 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멀쩡하던 내 심장을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순탄하지 않았던 병원 예약부터 시작해서 수 차례 반복되는 몸 상태에 대한 고해성사 결과 나는 내 몸이 아직 튼튼하고 건강하단걸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 불필요한 검사들 때문에 괜스레 건강한 내 몸을 의심했던 순간들은 꽤나 무서운 경험이었다. 이국땅에서 아픈 건 서러우니깐.
근육통이 여전한 가슴은 움직이거나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불편하지만 걱정해 주는 남편 덕분에 큰 위안이 된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가슴을 어루만져 주던 사이 우리는 서로의 흉통 모양을 살폈다. 나는 4,000명 중의 한 명 꼴인 새가슴인데 오늘 보니 남편은 오목가슴이었다. 그저 말랑깽이인 줄 알았던 남편이 오목가슴이었다니.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낄낄 웃었다. 내가 새가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오목가슴'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거니와 남편이 오목가슴이란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나는 그를 '오목이'라고 실컷 놀렸다. 볼록가슴과 오목가슴은 결혼한 지 2년 반이 지나도 아직 모르는 게 있음을 깨닫고 큭큭 웃는다. 결국 나의 가슴 통증은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씨앗을 준거다. 미국에서 병원 가는 법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