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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May 22. 2020

5. 내가 발리를 좋아하는 이유

예민충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실 내가 발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 섬의 따뜻함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따뜻하고 밝다.

가난한 나라에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범죄율도 높고, 조심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 것이 보편적이다. 특히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좀도둑들은 여기저기 바글바글 해야 논리적으로도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발리는 좀도둑이 없다.

치안이 정말 좋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처럼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잠시 화장실을 갈 때도

컴퓨터나 폰을 두고 잠시 다녀와도 괜찮다.

자연스레 카페 직원들이 내 소지품들을 지켜주기도 하고, 또 이 섬의 분위기 자체가 행복을 위한 곳인 것처럼 조성되어 있다 보니 작은 범법 행위라도 하게 되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도 이렇게 행동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 한심함을 배로 느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자꾸 필리핀과 비교해서 세부에게는 미안하지만 관광 및 봉사 활동 등으로 여러 번 방문했었던 필리핀 세부는 사실 똑같이 섬,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따뜻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무엇이든 작은 도움이라도 청하면 소액의 팁이라도 필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고 사람들도 사람 대 사람보다는 사람 대 관광객, 이방인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섬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방콕도 태국에서는 제일 큰 수도이니 만큼 상업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발리는……

그렇지 않다.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고, 이방인들끼리도, 이방인들에게도, 로컬에게도, 모두가 반갑게 인사하고, 매번 값진 미소를 선물한다. 개인적으로 예쁘고 화려하고 호화롭게 누릴 무언가를 찾아가는 호캉스 여행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더 즐기는 나에겐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요소들이 내가 발리에 빠진 이유가 된다.


발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숲, 산, 바다, 하늘, 예술, 사람, 예쁜 건물, 커피, 자동차, 스쿠터, 자전거, 등등

슬로우 라이프를 적당히 즐기기엔 아주 적합한 곳이다.

 

슬로우 라이프라고 해서 어딜 가든 여러 가지 충전할 배터리가 수북한 우리가

생활하기에 딱히 불편할 일 도 없다.


하늘과 숲과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높은 빌딩을 짓지 않을 뿐이지 (발리에는 신들이 야자수 나무를 밟고 다닌다는 설이 있어 야자수 키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법이 있다. 건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3층 정도라고 한다.) 건물에 들어가면 에어컨도 있고 적당히 빠른 인터넷도 있고

샤워하고 목욕하기 좋은 따뜻하고 깨끗한 물도 있다.

오히려 높은 건물과 빼곡한 네온사인이 없어 밤이 되면 거리거리마다 감성적으로 변한다.

작은 호롱불, 어두운 전구들 한 두 개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제 할 일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고 창문이 없는 건물들이 앞바람 뒤 바람 맞바람을 조화롭게 쳐서 바람마저 달콤하게 만든다. 가만히 달콤한 바람을 느끼며 아침 하늘 밤하늘을 보면서 글을 쓰고 있노라면 눈물도 났다가 웃음도 났다가

멘탈 클리닉에나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컨트롤 불가능한 감정들이 스며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붓에는

 숲과 산이 있다.

한창일 시간에 메인 로드로 가면 오래된 스쿠터들과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매연이 수북해서 나 같은 만성 비염 환자들은 마스크를 껴야 하지만

한국처럼 미세 먼지가 있거나 자제적으로 오염된 공기가 있는 곳은 아닌 우붓은 상쾌하고 푸른 곳이다.

어디서든 풀 냄새, 꽃 향기, 흙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서핑의 성지라 불리는 세미냑, 짱구, 꾸따 등등의 곳들은 내가 좋아하는 와일드 한 바다와 거기에 딱 어울리는 일출과 일몰이 있다. 비릿하지만 특유의 힘이 있는 바다 냄새도 있고 초록초록 우붓과는 또 다른 파란 하늘이 있다.

숲에 있는 보슬보슬한 흙은 아니지만 까칠까칠한 바다와 그 이상의 조합을 이루는 바닷모래들이 있다.


발리는 이런 곳이다.

원한다면 채식주의가 될 수 도 있고 그렇다고 굳이 채식을 하고 싶지 않다면 고기도 실컷 먹을 수 있다.

인터넷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인터넷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굳이 더 느린 라이프 스타일을 원한다면 충분히 더 느려질 수도 있다.

부지런해지고 싶다면 새벽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고,

게을러지고 싶다면 마음껏 게을러질 수도 있다.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곳이다.

발리는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디지털 노마드란,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현대판 프리랜서들을 뜻하는데 충분한 자기 관리 능력만 있다면 발리에서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일이 아닐까? 물론, 직업의 종류나 범위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겠지만 본인이 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분야를 해낼 수 있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을 감당하고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진 일이 리라 생각해 본다.  나 또한 스스로에게 강력 추천하고 있다.

언젠가 내 능력이 될 땐 그렇게 여유로운 발리의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보기를..

지금처럼 깔딱깔딱 와서 흉내나 내어 보고 가는 워너비 말고...

발리가 좋은 이유는 수없이 많아서 이 얕은 글 솜씨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것 같다.


발리는 자유로워서 좋다.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곳.

앞서 언급한 짝퉁 요기들처럼 이상한 차림새를 한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아무리 나를 내려놓고 어떤 모습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기로서니 나는 이 곳에서 그저 특별할 것 없는 한 사람일 뿐이다.

누구도 나의 외모를 평가하지도

고작 나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한국이라면 서른을 넘어선 나이에 화장기도 없이 속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길을 걸어 다니면 알게 모르게 유별난 여성이 되겠지만 이 곳에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덕분에 여기 머무는 내내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에 선 크림만 잘 챙겨 바르면 된다. (그 마 저도 귀찮음이 되어버리지만..)

그래서 나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챙겨볼 수 있도록 하는 곳도 발리인 것 같다.

화장한 후 내 얼굴을 거울에 요리조리 비추어 보지 않아도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눈썹도 없는 맨 얼굴로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지,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어 보지 않아도 나 스스로 지금 이 모습에 행복한지,

누군가 나에게 칭찬해주지 않아도, 그리고 내 주머니에 돈이 몇 푼 없어도,

천 원짜리 빨랫비누에 벅벅 문질러 빨아도 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내일은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은지,

한국에선 돌아볼 겨를도 없는 생각들을 하고 앞으로의 나를

군더더기 없이 계획하게 하는 그런 곳이 발리인 것 같다.

 물론 모든 여행지가 그렇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나 또한 원래 화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발리가 아닌 한국에서도 회사 가거나 약속 있을 때 빼고는 그렇게 화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 예민충은 똥 손이라 화장을 잘 못한다^^;;)

유럽에 가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또 편하게 다닌다.

미국에 가도 대부분이 한국처럼 풀 메이컵을 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의 하루가 아름답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는 곳에서

 화장을 하고 말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을 버리게 되며

나를 옭아매고 있던 많은 자본주의 적인 것들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이 곳, 발리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사방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해가 뜨면 나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말해본다.

‘너의 하루가 아름답기를 바란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떻게 행복을 느끼지 않고 하루를 살 수 있겠는가?

 


참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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