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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Jun 05. 2020

8. 서퍼들이 사랑하는 섬, 발리

예민충의 속마음

 나는 서핑 전문가도 아니고 서핑을 잘하지도 못한다. 

그저 이제 막 발걸음 정도 뗀 초보자 정도. 하지만, 서핑이라는 스포츠에 요가나 필라테스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큰 매력을 느껴왔었고 언젠가는 꼭 정복하고 싶은 꿈으로 마음속 깊이 꾸준히 품어 오고 있다. 

살아온 여건 상 서핑을 꾸준히 해보지도 못했지만, 서핑 관련 영화들을 나름 많이 찾아보고 서핑에 관련된 유튜브며, 기사, 서핑 관련 SNS들을 구독하며 지질하게나마 혼자 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모양새는 없지만 그만큼 많은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호주로 갔을 때도 서핑에 대한 꿈을 품으며 갔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며 여러 가지 여건 상 실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꾸준히 강습 또는 연습하지 못했고

 한국에선 물론 일하느라 정신없어 당연히 할 시간이 없었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사실이다. 

서핑은 하루 이틀하고 한참을 쉬면 감을 잃는다. 

심지어 큰 운동 신경이 전혀 필요 없는 운전도 안 하고 면허증만 장롱에 모셔다 놓다 보면 감을 잃고 그 두려움은 배가 되어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되는데, 익스트림 스포츠 중의 하나인 서핑은 당연히 하루 이틀 휴가 내어 도전해 보고는 다시 빡빡한 노동 생활로 돌아가 일하는 동안 한참을 쉬고 해서 실력이 늘 턱이 없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서핑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실력을 왜 가지지 못했는가에 대한 구차하고 당연한 변명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호주 Perth, Scarborough Beach, 아침 일찍 갔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늘 시도는 하고 보는 나는, 

구차한 변명들을 가짓수 대로 늘어놓던 호주에서도 시도는 했었고 발리에서도 우붓에서 요가를 실컷 해보고서는 짱구로 넘어와 또 한 번 서핑에 도전의 손을 내밀었다.


 호주에서 서핑을 했을 때도 파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발리의 파도는 한 겹 한 겹 한 줄씩 차례대로 오는 파도가 아니라 

광활한 바다에서 사선으로 또 사선으로 그 사선에서 또 사선으로 마치 고르진 않지만 층층이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달콤한 파이 사이의 겹들처럼 생김새는 무질서 하지만 세기도 엄청 센 파도를 자랑한다. 

여느 때처럼 연습자들이 거쳐가는 과정인 파도와 바다 특징에 대한 설명 과정과 

기초 연습인 모래 위에서 바닥 긁기를 하고 간단한 몸풀기 운동을 마치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를 강습해 주던 긴 머리 서퍼인 Dona는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키는 작지만 서핑으로 다져진 단단한 근육과 햇살에 그을려 영양분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머리를 서퍼들의 상징 긴 머리로 길러 그만의 캐릭터로 완성한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난 Dona는 강습하는 내내, “누나 누나”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외국인들이 봐서도 마냥 어려 보이는 나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들고, 그 와중에 큰 파도에 한방 세게 맞고 일어서면, ‘누나 일어나’ 하는 말이 은근히 성가시기도 했다.

 하지만 Dona의 친절한 강습으로 이제는 제법 다가오는 웨이브의 매력적인 끝을 보드에 온전히 서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실력까지는 갖출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예전에 한 번 서서 끝까지 가는 것이 운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서면 두어 번 애초에 시작부터 하지 못하는 것 빼고는 설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운이 아니라 감히 실력이라고 하겠다.) 


너무 간간히 하는 바람에 만족할 만한 실력을 역시나 쌓진 못했지만 수 차례 초급 레슨만 받아본 나로서도 

서핑을 하면서 든 생각은 있다. 

한 번은 호주에서 그룹 레슨을 받았을 때였다. 호주는 초보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꽤나 와일드 한 방식으로 강습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친절하게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보드 꼬리 (보드의 앞부분을 nose, 뒷부분을 tail이라고 부른다.)를 잡아 주지 않는다. 그저 강습을 시작하기 전 20-30분 정도 다 같이 백사장에 앉아 파도 보는 법을 배우고, 파도 보는 법을 연습한다. 그 후 물에 들어가면 일자로 쪼르륵 서서, 선생님의 호령에 집중한다. “자, 저 정도 파도면 되겠지? 준비...... 고!” 그러면 나 같은 초급 자 여덟 명이 열심히 패들링을 한다. 그리고는 보드에 서야 하는 순간, 반 이상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미 빠지고 그중 두세 명은 어떻게든 보드에 균형을 잡고 선다. 그리고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를 가만히 둘 호락호락한 파도가 아니다. 한 번 더 예측할 수 없는 물살이 오거나 변수가 생기면서 나머지 두세 명도 물속으로 꼴아 박히거나, 짭짤한 바닷물로 배를 채운다. 가끔 한 명 정도는 ‘와~ 운 좋게 이번에 끝까지 왔다!’라고 생각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살아남기도 한다. 수준급으로 서핑을 하는 진정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실력의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보고 고작 걸음마 수준 정도 했으면서 무슨 생각을 저렇게 깊게 했나 할 수도 있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다 같은 시작점에서 시작을 한 사람들도 첫 번째 관문에서 떨어져 나가고 두 번째 균형 서기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 다음 풍파가 찾아왔을 때 넘어지고 마지막으로 운이 되었건 선생님이 백사장에서부터 설명해주던 패들링과 적합한 타이밍을 그 기본 조건들을 잘 지켰건 어찌 되었던 여러 가지들이 맞아떨어진 사람이 최후 승자로 남아 짠 바닷물로 배를 채우지 않고도 온전히 서서 파도를 즐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파도와 바다에 대한 두려움도 먼저는 극복해야 할 것이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패들링으로 준비를 하며 보드의 tail로 점점 다가오는 큰 파도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무서워도 겁을 뒤로하고, 한발 한발 균형을 잡고 침착하지만 올라타야 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보드에 올라서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 후에는 내 발아래에 있는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선택을 전적으로 믿고

내 시각의 정면을 주시하며 내 발 밑으로 치는 파도의 물결을 느끼면서

 두려움마저 온전히 즐겨야 마지막까지 설 수 있다. 

결국 파도를 타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 바다의 파도를 온전히 즐기는 것에 있다. 인생도 그렇다. 두렵고 싫은 것을 피할 수만은 없다. 회사도, 인간 관계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재정 문제도, 무섭고 싫다고 눈감고 모른 채 한다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도 사라질 문제들이 아니다. 

극복하고 흐름을 파악하고 즐겨야 한다.


돈이 없으면 걱정하고 우울하고, 극도로 불안해하기보다는 잠시 그 시간을 최대한 즐기며 앞으로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흐름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한다. 

회사도 그렇다. 돈벌이를 위해 가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이 당연하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억울하고 그러다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그 속에서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잘 넘어지는 방법을 익혀 넘어질 땐 좌절감이 점점 최소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서핑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지혜롭게 넘어지는 방법도 익히고 넘어지는 방법을 수십 번 연습하기도 해야 한다. 바닷속으로 넘어질 땐 자연스럽게 뒤로 몸을 저치고 중력의 흐름을 따라 몸을 뒤로 던지는 것처럼

파도 속으로 들어갔을 땐 어떤 경우에도 넘어지면서 머리가 다치지 않도록 머리를 먼저 양팔로 감싸야하는 것처럼, 더럽고 하루에도 수십 번 관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나는 회사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나 스스로가 다치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넘어지는 순간에도 내 자존감과 마음, 내 생각을 꼭 감싸고 넘어지면 시간이 좀 지나는 한은 있어도 언제든 회복하고 다시 보드를 들고 일어설 수 있다.

복잡한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마음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내 균형 감각을 잃게 만드는 이 싫은 거친 물결과 파도도 결국엔 힘들지만 먼저 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대한 리듬을 타야 하는 것 같다. 힘들게 하는 상대에 따라 물살이 좀 세다 싶을 땐 내가 힘을 좀 빼고 물살이 약할 땐 보드 앞 쪽에 위치시킨 다리에 힘을 살짝 실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좀 싫은 사람 앞에선 무조건 싸우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보단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고 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파도가 좋든 싫든 바다 위에 이미 파도를 타고 있는데 굳이 그 파도를 포기하지는 않는 것처럼 싫은 관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조건 숨기보다는 여전히 내 할 일은 하고 바다 위에서 드센 파도는 변함없이 타되, 그저 힘을 좀 빼고 오히려 나를 다치게 할 만한 파장을 불러오지 않도록 이번 물살이 지나갈 때까진 살짝 기다리자는 말이다.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힘이 되는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파도 끝만 보고 타보기로 결정한 그 신사적인 파도에서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보드의 방향에 힘도 실을 수 있듯, 힘을 좀 내보면 된다. 

그러면 잠시 소란스러웠던 풍파는 지나가고 나를 앞으로 끌어주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사랑스러운 파도, 물결과 나는 그 순간을 즐기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거친 세상을 모르겠을 땐 사는 법을 배우면 된다. 

 글을 쓰다 보니 얼른 서핑의 마스터가 되어 좀 더 저 거친 파도들을 잘 거느리고 즐기고 싶은 마음에 

답답함이 차오른다. 

그동안 어떤 교과서에서도 배운 적이 없던 회사에서 살아 남기,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기, 상처 받고 넘어져서 결국 쓰러지기 없기 등등으로 나 또한 많이 아프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건강을 잃기도 하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꾀나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기도 했다.  나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나만의 힐링 방법들을 터득하고 또 자연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를 배우고 생각하다 보니 분명한 건, 예전의 나보다 많이 건강해지고 무엇보다 강해지고 어느 정도 풍파를 즐길 수 있는 정도까지는 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핑 강습을 받던 시절, 균형을 잡지 못해서 넘어져서 바닷물도 한 가득 먹고 발 밑으로 다가오는 큰 파도와 물살에 지레 겁을 먹고 휩쓸려가기도 하고, 그 와중에 넘어졌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방어하는지 몰라 함께 휩쓸린 보드에 크게 머리를 맞기도 해서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비교적 잔잔한 파도가 있는 한국보다도 더 와일드 한 호주, 인도네시아 바다에 와서도 서보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최소의 부상까지만 허용할 수 있도록 방어하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에도 꽤나 익숙해졌다. 넘어져도 다시 내 한쪽 발목에 묶여있는 보드를 찾아 한 팔로 들고 일어서서

 다시 바닷속으로 새로운 파도를 향해 들어갈 수 있는 담대함과 여유도 생겼다. 

아직은 나름? 어리고 젊으니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밉상스러운 큰 파도들이 앞으로 한참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고작 조금 익숙해진 초보일 뿐이니까, 중급, 고급, 마스터가 될 때까지 

수많은 파도와 갖가지 부상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섭다는 핑계로 바다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24시간이 평화로운 강보다는 특유의 비린내와 짠 내가 나는, 속 이 뻥 뚫릴 만큼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를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오로지 바다에서 쉼을 얻어 왔으며, 익스트림 스포츠인 서핑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업으로 삼지 않는 한 어쩔 수 없겠지만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마스터한다는 하겠다는 건 무지막지한 표현이겠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지경에 이를 수 있을 때까지 서핑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고향은 바다 짠 내 나는 살기 좋은 부산

다이내믹 부산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나는 잔잔한 바다보단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다운 바다가 좋다.

 바다는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을 비워주기도 하고 외국에 있을 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바다 특유의 짠 내로 채워주기도 하며 서핑에 첫걸음을 뗄 땐 갖가지의 거친 파도로 가르침도 주고 훈련의 시간도 줬다. 

아직도 심장이 뛴다. 핡핡  
폰으로 찍었는데 하늘색이.... 


그런 바다에서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강습이 끝나고 나면 달콤하고 은은하게 다가오던

 전 세계 곳곳을 다녀도 이만큼 아름다워 보이진 않았던, 발리의 노을은 

어떤 거친 파도와의 시간도 단번에 잊을 수 있도록 가슴속에 뜨거운 사랑과 위로를 채워줬다. 

다시 용기 내어 일어서서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아 멋지다 인생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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