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3박 6일 미국 출장, 쇼핑으로 스트레스 풀기
미국 출장의 재미는 아울렛 쇼핑이다. 적어도 하루는 주어져야 마음껏 쇼핑을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생긴 후로는 최대한 짧게 출장 일정을 계획하게 된다. 홀로 남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반, 아이와 남편이 보고 싶은 마음 반으로 말이다.
이번 라스베가스 출장은 화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목요일 밤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결국 내게 남아있는 자유 시간은 금요일 오전 시간뿐이었다. 금요일 아침이 되자,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아울렛에 안 가면 서운할 것 같아 회사 동료들과 아울렛을 방문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시간. 아울렛은 오전 10시에 오픈을 했고 우리는 각자 쇼핑을 하고 오후 1시에 택시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우선 지도를 보며 어느 매장을 갈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크게 3개 브랜드를 골랐다. 디즈니, 폴로, 룰루레몬. 디즈니는 아이 선물, 폴로는 남편과 내 옷 사기, 룰루레몬은 내 운동복을 사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쓰게 될지 몰라 체크카드에 싱가포르 달러로 $2,000(미국달러로 약 $1,500)을 이체했다.
빈 속이었던 나는 우선 아침을 간단히 먹으려고 스타벅스에 갔다. 오트라떼 숏사이즈와 플레인 베이글, 크림치즈를 주문했다. 직원은 숏사이즈 컵이 없다며 톨사이즈 컵에 담아주어도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역시 라스베가스는 뭐든 다 크다. 호텔룸도 큼지막하고 음료수도 라지사이즈, 음식도 2인분 같은 1인분이 나온다(물론 가격도 2인분 같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Olive라고 말해주었다. 직원은 ok라고 말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내가 주문한 음료와 베이글이 나왔다. 톨사이즈 컵 겉에는 내 이름이 Ole라고 적혀있었다. 영어발음을 어떻게 개선시켜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옆에 야외의자에 앉았다. 라떼를 한 입 마시니 이제야 정신이 깨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10시 30분. 내게 시간은 2시간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 곳을 먼저 갈 것인가. 아무래도 아이 선물이 제일 마음에 쓰여 디즈니를 먼저 가보았다. 요새 자신을 여름엘사라고 부르는 아이에게 엘사 인형을 사줄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전화해 엘사 인형 이야기를 하니 그는 집에 굴러다니는 포니 장난감과 하츄핑 인형 이야기를 한다. 그럼 조금 더 실용적인 것을 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싱가포르는 새벽 세시가 다돼 간다며 이제 자야겠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세 개의 아이템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미니마우스 드레스, 엘사 수영 가방, 신데렐라 수영 타월.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지 않고 사진으로 우선 찍어둔 것은 마음이 바뀔까 봐였다. 어느덧 11시가 되었다.
[사진 1. 딸을 위한 미니마우스 드레스]
폴로를 가봐야겠다 싶었다. 가다가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매장들이 있었고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 조금씩 둘러보았다. 우연히 마주친 maje 매장에서는 심지어 (나의 초기 목표를 망각하고) 하나라도 사고 싶어 모든 옷을 꼼꼼히 보았다. 나도 이런 옷 좀 사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가 없었다. 이렇게 여기저기 보다가 폴로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었다.
폴로 매장은 꽤 컸다. 싱가포르에 살아서 좋은 점은 사계절 옷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여름옷 위주로 옷들을 살펴봤다. 나는 셔츠랑 카라가 있는 티들을 입어보았다. 남편의 옷들도 살펴보고 모자도 살펴보았다. 특히나 남편 옷은 실제 입혀볼 수가 없으니 사이즈와 컬러, 핏을 상상하며 가장 잘 어울릴만한 것이 무엇일지 고심했다. 결과적으로는 남편 티 2장, 내 티 2장, 남편 모자 1개를 샀다. $450이 나왔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 2. 남편을 위한 모자]
서둘러 디즈니 스토어에 다시 갔다. 그리고는 아까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3개의 아이템을 바로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두 개의 카운터가 있었고 한쪽에서는 계산을 한쪽에서는 직원이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이 바로 내 차례라 곧 계산하겠지 싶었지만 5분여 정도를 기다려서야 계산을 할 수 있었다. $80 정도 나왔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룰루레몬에 갔다.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서 매장 안을 걸어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룰루레몬에서 무언가를 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테니스 원피스와 테니스 스커트, 운동용 바지를 골라 입어보았다. 하지만 급하게 고른 탓인지 셋 다 별로였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12시 50분. 빠르게 걸어 나와 택시 스탠드로 가니 12시 55분이었다. 룰루레몬에서 쇼핑을 못한 것이 아쉬웠으나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이렇게 쇼핑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무언가를 할 때면 이 경험이 꼭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한다. 디즈니, 폴로, 룰루레몬 중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는 룰루레몬이다. 여기서만 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아이의 기쁨(디즈니)이 가장 중요했고 그다음으로는 남편과 나의 실용성(폴로)이 중요했다. 나의 기쁨(룰루레몬)은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지금 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아이가 우선이 되고, 그다음에는 우리 가족의 안정된 생활, 그리고 마지막이 나만을 위한 활동들인 것 같다.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결국 나의 아이와 나의 가족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게 싫지 않다. 아이를, 우리 가족을 우선시하는 데에서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일상에서 소소하게나마 나를 위한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LA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18시간의 장거리 비행인데 이제 7시간 정도가 남았다(정말 멀다....). 얼른 집에 가서 아이와 남편을 만나고 싶다. 내가 사 온 선물들로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다. 아마도 나의 아이는 드레스를 제일 좋아할 것 같고 남편은 다 좋다고 할 것 같고 나도 그렇다.
[사진 3. 너무나도 긴 비행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