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즈원 세미나 후기
“꺼내어 함께 살펴보자.”
세미나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무엇을 ‘꺼내’야 하는지, 어떻게 ‘살펴보는’지, 낯설기만 했다. 내게 던져지는 질문에 정답이 있을 것 같고, 그 답을 맞혀야 할 것 같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세미나를 한창 진행하던 중 나는 패닉에 빠졌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발은 허우적대고 고개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찾아 두리번 대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내가 원하는 ‘그곳’에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런 막막함이 나를 지치게 했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때 그런 나의 상태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해 못 하고 있는 건 나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부끄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이해를 못 하고 있다고 용기 내서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곳이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진행자인 흥미가 말했다.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보라’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어쨌든 내가 하던 행동 말고 다른 거겠지 했다. 그럼 저 멀리 말고 바로 지금 여기, 망망대해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밑은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긴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꽤 말끔한 스케이트보드부터 이끼가 잔뜩 낀 고무 타이어까지 완전 별천지였다. 나는 궁금해져 하나씩 시간을 들여 살펴보았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이 아래에 있었구나, 이끼를 닦아내고 자세히 보니 이런 모양이었구나, 하는 알아차림이 평소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 좋아하는 내게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다.
호기심이 충족되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 계속되었을 무렵 나는 이 물건들에서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물건들은 서로 빈틈없이 단단하게 쌓이고 쌓여 하나의 커다란 벽을 만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만들어진 이 공간을 나는 그때야 처음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그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도.
이 물건들은 어디서 왔을까?
누가 여기 내 옆에 갖다 놨을까?
이 벽 너머엔 뭐가 있을까?
벽은 꽤 단단했다. 두드려도, 발로 차도 꿈쩍하지 않았다. 움직이긴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려던 순간 벽 너머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나는 경계하면서도 궁금해졌다. 누굴까?
“안녕!”
목소리를 들어보니 내 또래의 여자아이 같았다.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여기 있는 걸 움직이고 싶은 거야?”
“응. 이 커다란 타이어를 빼면 그쪽이 보일 것 같아. 나는 벽 너머를 보고 싶어.” 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쪽에서 당길 테니까 네가 밀면 어떨까?” 아이가 말했다.
아이와 나는 힘을 합쳐 밀고 당겼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는 어떨까 이야기하며 어디서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바다 밑에 있는 건 어떤지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계속 밀고 당겼다. 어느 순간 물건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더 크게 흔들리고 이내 요동치더니 쿠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무너져 내린 벽 반대편에 그 아이가 있었다. 주위가 여전히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오히려 어둠이 우리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그 무엇도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낯설지만 한껏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바다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저쪽 벽 너머에 누가 있는지 가보고 싶어.”
나는 그 아이를 이제 막 만났지만 왜인지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느새 나는 바다 위의 ‘그곳’을 잊은 채였다. 하루빨리 ‘그곳’을 찾아 나서고 싶었던 조급함은 사라져 버렸다.
이 아이를 알게 되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있는 것이 나는 좋았다.
세미나를 마치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틀이란 꽤 단단하구나 감탄했다.
책을 읽어도 나의 틀에서 해석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나의 틀에 맞춰 이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놀랍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제껏 나는 단단한 틀이 되어버린 벽 속에서 홀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울고 웃고 있었을까.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세계에서 혼자 할 수 있어, 외치며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너진 벽 너머에서 만난 아이와 사랑에 빠질 거면서. 그럴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러고 살아가고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주어야지.
"당신은 어떤 마음인가요?"라고.
그런 건 왜 물으시냐 되묻거든 이렇게 말해야지.
"당신과 친해지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