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숲인문학교 <비폭력대화> 후기
“나가자, 시간 다 됐어.”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내복 바람인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났다. 옷을 스스로 입도록 기다려주고 싶었는데, 한 시간째 옷 입어라 말하고 있으니 입이 아팠다. 내가 겉옷까지 모두 입고 나서니 아이는 그제야 주섬주섬 옷을 챙기네. 나는 아이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약속한 시간 다 됐어, 지금 입고 있는 그대로 갈 거야. 어서 나와.”
이 아이는 내가 강하게 나가면 저도 강하게 나오는 아이다. 곧장 나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방구석에 서더니 성난 짐승 소리를 내며 눈을 희번득 뜨고 나를 노려본다. 온몸에 화가 타오르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에게 서운했고 지쳤고 화가 났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날은 늘숲인문학교 비폭력대화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나를 달랬다. 대화해 보자. 배웠다 뭐 하나, 이럴 때 쓰는 거지. 심호흡을 하고 내가 말했다.
“엄마는.. 선생님이 일찍 오세요, 해서 일찍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속상해.”
가야 돼, 시간이 몇 시니, 준비하랬잖아, 이런 말 말고, 내 마음이 그렇다 말했다.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서서히 아이의 표정이 풀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아이의 표정은 내 표정과 닮아갔다. 눈썹도 입꼬리도 한껏 내려간 불쌍한 강아지 같은 얼굴. 내 속상함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속상함을 내비치는 복잡한 행동을 네 살짜리 아이가 벌써 해내는 걸까. 연민의 얼굴로 아이는 터덜터덜 걸어서 내게 다가왔고, 내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나는 그대로 그 품에 안겨들었다.
꽈악 안고 서로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너는 왜 속상하냐고 물었다. 아이가 말하길 자기는 공주가 그려진 옷을 다른 옷들 위에 입고 싶다고 했다. 공주가 그려진 옷은 아이가 입고 있던 내복이다. 아이는 어떻게 해야 되나 그렇게 입어도 되나 고민하며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래 너도 원하는 게 있구나. 그나저나 내복을 외출복 위에 입겠다니.. 그래 뭐 안될 건 없지, 하고 기다려주었더니 긴 팔을 두 개 입고 그 위에 내복까지 입었다. 껴입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아이는 의외로 거뜬히 해냈고 만족하는지 어린이집에서 새로 배운 노래를 크게 부르며 집을 나섰다.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결혼 직후에 한 번, 이번 늘숲인문학교에서 함께 읽기로 한 번 모두 두 차례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내 삶이 조금도 아니고 아주 많이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세 번 읽고, 네 번 읽으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한껏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