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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바 Apr 18. 2023

이곳에서 나는 '진짜'가 된다

가족과 함께 아침으로 빵을 먹으며 있었던 일


빵을 굽지 않는 화요일 아침이었다. 냉동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바싹 굽고 잼과 버터를 꺼내 놓았다. 아이들은 맘에 드는 빵이 없는지 장난감 더미에서 나오지 않다가도, 사과를 하나 깎아서 내놓으면 “사과다!” 외치며 순식간에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남편도 커피 한 잔 타 들고 의자를 빼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일어나 세 시간 만에 먹는 아침이었다. 아이들이 깨기 전 두 시간 남짓한 새벽 시간에 나는 요가원에 가거나 책을 읽는다. 요가는 오전반, 저녁반도 있지만 나는 가게도 열고 아이들도 봐야 해서 새벽이 아니면 갈 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 30대가 되자 점점 체력이 떨어졌다. 피곤해지고 허리가 아파오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쉽지가 않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길 좋아하는 나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없을 때, 조금이라도 더 보고, 듣고, 익혀야 하는데,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살다가 아무것도 못 하면, 아무것도 못 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까지 나아가곤 하는 것이다. 평소 운동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내가 몸이 아파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퍼뜩 정신이 들어 지난겨울부터 새벽 요가를 시작했더랬다.

이날 아침엔 책을 한 권 읽고, 유튜브 영상 두어 개를 보고, 아이들이 일어나기 직전에 잠깐 명상을 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차릴 때쯤에는 새벽에 머릿속에 들어간 내용으로부터 재밌는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마침 남편도 쉬는 날이니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 급하게 아침 준비를 마쳤다.

아침 먹(이)고 씻(기)고 옷 갈아 입(히)고 준비해서 나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사람은 네 명, 아침 먹으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리면 어린이집에 늦을까 조바심이 나서 아이들을 보채게 되니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하는 것이 나의 막중한 임무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빵을 먹으며 어느 순간에 이야기를 꺼낼까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 세계에서 발언권을 넘겨받는 건 어른들의 세계보다 치열하다. 아이들은 “엄마, 오늘 새벽 공부는 어땠어요?”라고 물어봐주지 않는다. 아까 말해놓고 지금 또 말한다. 애들이 얘기하는데 치고 들어갈까 하다가도 애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데, 들어주자 하는 생각이 들어 또 가만히 기다렸다. 어느 정도 들어주고 나면 틈이 생긴다. 그 틈을 타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오늘 아침에 내가 깨달은 건데…” 막 운을 떼며 나는 들떠 있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삣—

귀에 거슬리는 장난감 경적 소리, 첫째 재인이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내 말을 방해할 생각인거지, 그렇지만 나는 7년 차 엄마니까, 이 정도쯤이야. 나는 아이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재인아, 엄마는 아빠랑 얘기하고 싶어.”

살짝 어르고, 급하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삣- 삐—

나는 시계를 한 번 힐끔 봤다.

“재인아, 엄마 아빠랑 얘기하고 싶으니까 조용히 해줘. … 무슨 얘기했더라 아, 그래서 내가…”

삐- 삣- 삐—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옐로카드도 세 개면 퇴장이다. 삼(3)이라는 숫자에는 그 정도면 최소한은 했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을 멈췄다. 아이에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아이도 있는 자리에서 어른끼리만 대화하려고 한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남편도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아침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적합한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빵이나 먹자, 체념의 한숨을 쉬며 베이글을 베어 물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편은 다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정말 부산한 아침이야, 얼른 먹고 갈 준비나 해야지 생각했지만 빵이 목에 걸렸고,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릴 줄 알았던 남편이 식탁을 빙 둘러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옆자리 의자를 꺼내 앉더니 내게 가까워지도록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너무 가까워 오히려 내가 허리를 뒤로 쭉 빼 도망가야 할 지경으로. 나는 과장된 그의 몸짓에 어색한 희극을 보는 것 같아 “뭐야..” 하며 민망하게 웃었다. 설마, 아니지? 그럴 기분은 아니니까 제발 맥락 없는 스킨십은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는 손바닥으로 귀를 감싸 귓바퀴가 나를 향해 열려있도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 그가 말했다.

“얘기해 봐.”


그 한마디가 내게 깊숙이 들어왔다. 반전으로 빵 터지는 코미디의 펀치라인처럼. 아, 당신은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했구나. 나도 이런 걸 당하는 게 처음이고 그도 해보는 게 처음이라 우리는 모두 약간의 헛발을 짚은 거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서툴음은 피식 웃는 콧바람에 날아가버리고 그 속의 알맹이 마음이 아주 선명하게 와닿았다. 나는 민망하게 웃다가, 피식 웃고, 곧장 울어버렸다.

그의 마음이 서치라이트가 되어 깜깜한 곳에 숨어있던 나를 비추었다.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깊게 파묻힌 유리구슬처럼 혹여나 누군가 나를 찾아줄까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가 발견해 주었고 나는 울었다. 큰소리로. 아이처럼.



타라 브랙의 책 <받아들임>엔 이런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부모와 함께 식당에 간 다섯 살 꼬마가 종업원에게 핫도그, 감자튀김, 콜라를 주문하자 부모는 안된다며 미트로프, 으깬 감자, 우유를 주문한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요 공주님, 핫도그를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시 후 종업원이 자리를 뜨자 꼬마는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진짜라고 생각해.”



나는 어떨까. 사람들 눈에 나는 진짜인가? 내가 ‘진짜’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중학생쯤 되었을 때 가족과 저녁을 먹다가 한 번씩 울었던 기억이 난다. 밥 먹으며 엄마 아빠는 대게 다투었고 나는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분에게 말하고 싶었다. 말을 꺼내도 내 목소리는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에 묻혀버렸고 들은 건지 만 건지 당최 반응이 없었다. 한두 차례 얘기하고 나면 서러움이 몰려와 “아무도 내 말은 안 들어주고…” 하며 꺽꺽 울었다. 그러면 엄마는 “또 운다!”며 나무라셨다. 우는 거 나도 싫고 엄마도 싫어하는 거 아는데, 울면 안 되는데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밥 먹다 울면 목이 어찌나 콱 막히는지, 걸린 밥알과 숨 못 쉬어지는 가슴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럴 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뭘 잘하면 엄마아빠가 나를 봐줄까.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았고,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에 늘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30대의 내가 다른 사람의 인정받으려면, 돈을 많이 벌거나, 부장 직급을 달거나, 자녀교육을(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잘 시키거나 그래야 한다면, 나는 도무지 낄 자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날 아침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고, 가게 오픈 준비를 해야 했으며 오후에는 모임에도 나가야 했다. 남편이 “아침에는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할까?”라거나 “아이들 보내는 거 먼저 하고, 얘기는 다음에 하자”라고 했다면 나는 “그래.. 어쩔 수 없지” 하고 야무지게 단념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해 책임을 다하고 약속을 지키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거라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한 건 핫도그지만 누군가 내게 미트로프(혹은 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면 나는 먹어서 인정받고 싶은 아이였다. 나조차도 나를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남편이 내게 ‘얘기해 봐’라고 했을 때 아아, 나 이야기가 하고 싶었구나,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내 마음을 살펴주는 이가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얼핏 보면 남에게 의존하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받아본 사람이 줄 수도 있다는 말처럼,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나도 나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내가 창피했던지, 나는 우는 내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한참만에 울음이 잦아들고 천천히 손을 뗐는데 식탁으로 몰려든 아이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입은 꼭 다문채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울다가 웃어버렸다. 그러자 아이들도 빵긋 웃었다. 장난감 경적을 울렸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고맙다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들이 남편을 따라 손을 귀에 대고 내 쪽으로 가까이, 몸을 한껏 내민다. 남편과 나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눈을 반짝인다. 뭐야 너네, 웃겨.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거기 있는 걸까.

이곳에서 나는 진짜, 진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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