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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바 Jul 21. 2024

[함께 먹는 밥] 나도 그렇게 주고 싶다, 좋은 것만

주고받는 돌봄, 호혜 빵집의 시작

살다 보면 우울한 날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지만 유난히 견디기 힘들게 마음이 지치는 날이 있다. 소나무숲을 한 바퀴 달리고 온 뒤에도 여전히 좋아하는 책 한 장을 올바로 못 읽어내는 그런 날. 나는 요가를 갔다. 몸을 움직이다 등과 골반에 통증이 느껴지면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팠다. 차라리 아픈 채로 멈춰 있는 게 나았다. 불쑥 나타나는 우울함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임시방편으로 딱이었다.


요가를 마치고 다른 이들은 모두 돌아가고 나는 여느 때처럼 남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극히 평소와 같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자리에 누워보라고 했다. 내 몸 상태를 봐주겠다고. 혼자 아등바등하며 지독하게 외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는 내밀한 이야기를 내가 했을 리가 없는데. 내가 그렇게 힘들어 보였나? 아니, 그보다는 나를 항상 궁금해하는 친구가 “오늘 기분이 어때?” 하고 물어봐 주는 것처럼 일상적인 안부 전함에 가까웠다. 선생님은 손 끝으로 내 정수리부터 발 끝까지 찬찬히 짚어 내려가며, 에너지가 잘 돌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선생님께 몸을 맡겼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스치는 공기의 흐름, 체온, 옷깃 스치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돌봐 주었다. 나란 사람이 보잘것 없이 느껴지는 그런 날에도 여전히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실이 내 고통을 덜어주었다.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면, 나는 늘 돌봄을 받고 있었다. 특히 음식 선물을 자주 받았다. 마늘종 장아찌를 받으며 나는 저혈압이니 국물까지 마시라는 조언을 들었고, 말린 토마토를 받으며 근사한 파스타 레시피를 받아적었다. 또, 식사 대접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 계신 어머님은 명절에 음식을 풍성하게 하신다. 불고기에 양념갈비, 게장, 제철 나물들, 수십 가지 반찬을 만드신다. 그야말로 잔치다. 나를 포함한 식구들은 배부르게 먹고, 맛있다고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린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풍경, 어머님은 그런 식구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일 년을 나실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닮은 건지 남편은 아이들 어린이집에 종종 간식을 챙겨 간다. 마늘빵을 만들거나 옥수수를 찌고 수박을 썰어 커다란 빵반죽 통에 담아 들고 간다. 아빠가 들고 온 음식을 받아 든 딸아이는 “얘들아 수박 먹어!” 크게 외친다.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어린이집 마당에는 한동안 수박 갉아먹는 소리만 가득하다. 남편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돌봄의 혜택을 받는다.



‘밥 먹자’는 ‘대화하자’라는 말이다. 명절 음식, 어린이집 공동밥상, 느림보상점 패밀리밀(스탭밀), 저녁 초대, 커피 한 잔, 우리는 음식을 나누며 관계를 짓는다. 주택에 사시는 어머니는 마당에서 밥을 드시곤 했는데, 그때 옆집 어르신이 마당 앞으로 지나가시면 “식사하세요”하고 외치곤 하셨다. 그러면 그 어르신은 맛있게 드시라며 받아치고 가던 길을 가시거나, 우리가 밥 먹는 동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일상의 돌봄이었다.


우치다 타츠루는 『수업론』에서 상주좌와(常住坐臥), 앉고 눕는 ‘일상생활 그 자체가 수련인 양 살아가는 방법을 궁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요가 선생님이 닦아온 기술로 나를 돌봐주었던 것처럼, 남편이 늘 만드는 빵과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나도 내가 가진 재능으로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한다. 돌봄을 주고받았을 때 느끼는 긍정적인 경험을 잘 소개하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음, 친밀함,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감각.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이도 느낀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빵집을 하니까 공간이 있고 음식이 있다. 가게로 찾아오는 이들과 차 한 잔, 식사 한 끼 하는 것은 지금도 하고 있지만 내 몸은 하나이고 한계가 있다. 가게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돌봄을 실천할 수 있을까.


가게에서 만드는 빵의 시작은 내가 먹고 우리 가족이 먹던 빵이었다. 집 앞 밀밭에서 나던 우리밀로 만든 빵, 건강하게 살고 싶은 나를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뺀 소박한 음식이었다. 빵은 나눠 먹기도 좋아서 종이나 손수건에 한 겹 싸서 이웃집을 찾아가 건네곤 했다. 방문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문 앞에 두고 오면 되었다. 갓 구운 빵은 상할 걱정이 없다. 돌아와 빵을 발견한 이웃은 상추와 오디, 자두를 따서 내 손에 전해주었다. 오늘 아침에 딴 거다, 약 하나도 안 쳤다, 그러면 나는 버터 빼고 담백하게 구웠다, 설탕도 줄여봤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지냈다. 호혜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빵집의 탄생이었다. 가게를 차리면서 나와 남편은 그 시절 우리가 먹던 빵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바뀐 것이라곤 채소와 과일 대신 돈을 받는다는 것뿐이었다.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함께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다.


오늘 아침에 딴 거, 약 하나도 안 친 거 주고 싶은 상대의 마음처럼, 나도 그렇게 주고 싶다. 좋은 것만. 건강과 영양학 공부를 해가면서 빵에 곁들일 음식을 만들었다.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게 당근라페를 만들고, 설탕을 뺀 크림치즈를 만들고, 식물성 단백질을 챙겨 후무스(내가 콩잼이라고 부르는 콩으로 만든 스프레드)를 넣은 샌드위치도 준비했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메뉴들을 만들어서 먹어보고, 나와 가족이 매일 먹을 수 없겠다고 생각되면 판매대에서 내리는 실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텃밭을 하는 친구가 옥수수랑 빵을 바꿔 먹자고 했다. 나는 단숨에 승낙했다. 돈 대신 내게 있는 무언가를 교환하는 호혜 빵집이었을 때가 늘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박하게 빵집해서 먹고 사냐고, 돈은 벌리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사실 내 속내는 이렇다. 돈이 안 벌려도 먹고살 수 있는 빵집을 하고 싶다. 각자의 재능으로 서로를 돌보며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빵집을 꿈꾼다. 남편은 빵을 굽고, 농사하는 친구는 쌀을 짓고, 시장에 계시는 친구의 어머니는 두부를 만들고, 요리를 잘하는 친구는 두부조림을 굽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는 함께 산에 가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구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꽃을 좋아하는 친구는 집을 화사하게 꾸며주고,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함께 밥 먹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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