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나 Dec 12. 2019

'도와줄게.'라는 남편의 말이 불편한 이유

제도가 만들어낸 부조리한 ‘당연함'에 불편함을 느끼는 일

“우리 엄마랑 통화했어?”


“어? 아니. 아, 그  000 기일?”


“응.”
“나 아직 그 날 반차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는데. 그거 확실하게 정해져야 하는데...”


“아 일단, 엄마한테 미리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 날, 못 쉰다고 얘기하고.. 아님, 여보 그 전날에 쉴 수 있는데, 그때 미리 음식 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좀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응...... 음... 그럼, 내일 전화드릴게. 어머님께.”




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의 표정은 굳어지고, 입은 다물어졌으며, 나의 시선은 먼 산 보듯이 멍 때리는 눈빛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이 들었다.


분명,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도 아니었고 서운한 감정은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불편하고도 우울한... 그런 감정.


좀처럼 내 표정과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유난히, 표정관리를 못하는 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의 감정과 표정 변화를 잘 읽어내는 우리 남편.


점점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계속 내 눈치를 보길래, 나도 불편해서 왜 눈치 보느냐고 물어봤다.




“아... 여보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혹시, 나한테 화났어?”
(‘내가 화난 건가? 아닌데.. 이건 화가 아닌데.. 서운한 건가? 아니. 서운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음... 그냥...  좀....”

“왜....?”
“어.. 하... 뭔가 나를 억압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는 건가.... 기분이 이상해...”



“아... 000 기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여보 어차피 못 쉬니까... 그냥 그 날 우리 엄마한테 못 갈 거 같다고 얘기하면 될 거야.”

“아니.. 내가 그런 음식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 직장 일 때문에 집안 행사 때 못 도와드리는 것을... 며느리라는 이유로.. 미안해해야 하고,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게... 그것도 일종의 감정노동인데.. 항상,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이런 걸 겪어야 하는 게 날 조금 우울하게 했나 봐...”






순간,

이 얘기 후로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남편도 내 눈을 보고는 눈치를 챘는지,

나를 꼭 안아준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눈에 눈물이 고이는 와중에, 갑자기 가슴 한쪽엔 불편한 감정이 솟구쳐 나왔다.




아, '도와줄게'...?


계속 곱씹어보니,

너무 이상하다!





위의 '도와줄게'라는 말에 대한 아내(여자)의 반응,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고맙거나(또는 감동하거나)


아님, 나처럼 불편하거나



“내가 도와줄게.”
“내가 너를 도와주는 거지. 네가 나를 도와주는 거야?”    - <며느라기> 중 -


혹시나, 나와 같이 불편함을 느낀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더니, 명절에 하는 일을 두고 나누는 <며느라기>의 한 대화문이 나왔다.




사실, 남성주의(남녀차별)가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와줄게'라는 말이 나올 필요가 없다.

'도와줄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아직은 남녀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많은 남성들이 육아 부분도 그렇고, 차례상, 제사상 준비 등의 집안 행사 관련된 일에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은연중 (내 일이 아님에도, 너를 위해) 애써준다는 말이다.


결혼을 해서 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고,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라면, 같이 해야 하는 이 맞는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여자가 결혼해서 시댁의 제사나 차례를 지내야 하는 것 자체가 '가부장제'의 관습이지만, 여기서는 '도와줄게'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그리고 위의 <며느라기>의 대화문에서도 보다시피 상황상 따지고 보면, 남편의 집안 행사이니 아내가 남편을 도와준다는 표현이 맞는 상황이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결혼을 함으로써 한 가족이 된 공동체라면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평등한 관계라면) ‘같이 해야 하는 것’도 맞는 표현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위와 같이 썼다.)





나는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남자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함과 동시에 우리 인식이 얼마나 틀에 박혀있는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 것이다. (나 또한 깨우치고자.)


그렇다면, 도와준다고 표현한 남자에게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가.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도와준다는 남편 말에 고마워해야 함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미 남성주의, 남녀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도와줄게'라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여성은 '가부장제'를 유지시키고 싶어 하거나 그것에 대한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 남성들을 주로 상대했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또는, '가부장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여자는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 여기는 여성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 사회가 주입시킨 '가부장제'에 물들여져 의심 자체를 못한 경우일 수도.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남편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부조리한 ‘당연함’에 대한 불편함이다.




 



내가 겪은 이 일부 상황은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의 인식을 전환해야 할 상황은 생각보다 아주 다양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대대로 내려오는 이 관습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한다. (나 혼자 힘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관습을 바꾼다는 것은 인식을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 내 인식의 오류를 점검하고, 그것을 말로 정리하여, 행동으로 조금씩 옮겨보려 한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누어보자고.
누구보다 여태까지 고생해오신 어머님이 더는 '제도'에 묶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어머님께 바로 연락을 드려 회사 사정상 연차는 못쓰지만 조금 일찍 마치고 오는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우리 가족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은 것이지, 시어머님을 서운하게 하려는 게 아니기에. )


시어머님은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 하신다.  오히려, 연차나 반차 쓸 필요도 없다며 오지 말라하셨다. 일 다 마치고 오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시어머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하실까. 겉으론 표현 못해도 속으로 남아있을 그 불편함이 없어지려면 우리의 인식과 이 사회의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이렇게 불편해야 할까.


우리가 불편해하고 화를 내야 하는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바로 ‘가부장제’라는 제도이다. 서로에 대한 서운함만 늘어나는 시대가 아닌, 가부장제에 대한 불편함과 의문을 제기하는 시대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