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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나 Jan 08. 2020

자신을 지키는 일이 이토록 힘든가

결혼함과 동시에 생기는 ‘역할 기대'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나




딸아. 결혼은 너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만 합치는 게 아니야.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야.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야.


  아직도 저 말이 기억난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엄마가 누누이 했던 얘기다.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뭣도 모르고 들어서 그러려니 했었다. 그 상태로 세월이 흘러, 결혼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어렴풋이나마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시댁 가족을 챙기고, 명절 준비를 해나갔던 과정들이 저 말을 대변해주지 않을까 한다.


 그때의 내 생각으로는, 또 나 나름대로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가족과 가족의 결합 속에서도, '나'는 나대로 지키고, 한 가족으로서 서로 도와주는 것은 그것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것은 아주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가족과 가족의 결합 속에서도, 온전히 나는 나 자신이기를 바랐지만, 그건 정말로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에게는 딸로서, 며느리로서, 질부로서의 역할 기대가 생긴다. (더 많은 역할 기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나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이 사실을 결혼을 하고 나서, 몸소 느끼게 된다.





<나의 일희(一喜)>


사돈, 딸 정말 잘 키우셨어요.


 결혼 후에 첫 명절을 보낸 후, 시어머님은 나에게 고생 많았다며 어찌 그리 일을 야무지게 잘하는지, 엄마가 아주 잘 키웠더라면서 기쁘게 말씀을 해주셨었다. 처음엔 이 얘기를 듣고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나는 이 말을 듣고 엄마에게 전화하여 칭찬받았다며 자랑 전화까지 했었다. 나의 행동이 엄마에게 딸 칭찬을 듣게 한 결과로 이어지게 한 것이 무척 뿌듯했던 것이다. 엄마의 노심초사를 풀어준 것 같아서. 더더욱.



 그런데, 사실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이것도 불편한 단면이 될 수 있겠구나 싶다. 그저 며느리로서의 역할 기대에 충족해야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게 또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 엄마 얼굴에 먹칠을 안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칭찬(?)을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엄마로부터 무수한 잔소리를 들으며 만들어진 행동 덕이었으니, 이것은 더욱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그 무수한 잔소리는 일명, ‘신부수업’이라 불린다. (그때는 왜 ‘신부수업’ 이란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저 남자와 다른 염색체를 지닌 여자일 뿐인데, ‘신부수업’이라는 것을 왜 겪어야 하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신부수업’을 받지 못하면, 왜 엄마가 욕을 먹게 되는지.. 굳이 신부수업이 있다면, 왜 신랑수업은 없는지.)



그러고 보니, 엄마는 항상 명절 때나 다른 집안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많은 잔소리를 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전 부치는 건 잘해야지. 전은 이렇게 꾹꾹 눌러줘야 하는 거야."
"전 정리도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이런 식으로 이렇게 해야지."
"과일을 깎는데, 칼을 그렇게 잡으면 안 되지."
"아이고, 우리 딸! 이렇게 하면, 네 엄마를 욕보이는 거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멋쩍었고 주눅 들기도 했었다. 계속 주눅 들고 있으면 분위기가 처질까 봐 내 특유의 성격으로 그냥 실실 웃으며 순간순간 넘어갔었다. (저 당시에 내가 페미니즘이란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멋쩍은 웃음을 짓기보다는 분노를 뿜고 있었겠지.)

 

나는 그냥 '나'예요.
이런 것에 재능을 못 가지는 모습도 내 모습이고,
 이런 칭찬에 불편함을 느끼는 모습도 내 모습이에요.
나는 나로 존재하고 싶어요.






<나의 일비(一悲)>



요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 가도 밥 못 얻어먹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밥 차려 먹어야지.

 


 한창, 제사상 차리기 전에 모여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큰어머님 중 한 분이 저렇게 말씀하셨다. 순간, 이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열고 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며느리'로서 그 자리에 있는 내가 침묵을 지킨다면, 꼭 그 말에 동의를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서 그랬을까. ( '며느리'로서의 '나'보다 그냥 '나'이고 싶지만, 이 '관계'속 나의 위치는 '며느리'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 뭐, 며느리가 밥상 차릴 수도 있죠~ 뭐, 꼭 어머님이 직접 차려 드셔야 하나요~ 누가 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럼, 질부는 어머님 식사 대접 한 번 해드렸나?"
(.....!!!)


순간, 진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요. 어머님이랑 스케줄이 잘 안 맞아서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있어요. 어머님도 일정이 많으셔서 좀처럼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며느리가 됐으면, 밥상을 차려놓고 어머님을 초대해야지."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정말, 이게 내 잘못이란 말인가?) 순간, 분위기가 잠깐 서먹해졌었는데... 마침, 다른 큰어머님께서 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그냥 하는 소리니, 맘 담아두지 말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계속, 그 말이 내 머리와 가슴에 파묻혀있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시댁 일을 도왔다.






 그렇게 제사 일정이 끝나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내내, 남편과는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은 채, 그저 나는 또 먼 밖을 응시하며 내 기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억울함인가. 수치심인가. 모욕감인가. 내 감정을 중심으로 다소 자기중심적인 의문을 또 던져보았다.


결혼이라는 것은 왜 나(며느리)를 부족하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내 잘못인 것처럼 만드는 걸까.
결혼을 하는 순간, 왜 그들이 원하는 ‘역할 기대’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건가.
딸로서 며느리로서 질부로서의 역할 기대는 왜 이리 많은 걸까.
'딸이라면, 며느리라면, 질부라면 이렇게 해야지' 란 말을 난 도저히 못 견디겠는데.
내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이런 이야기와 훈계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댁 일을 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알기 전의 나였으면, 아마 분명히 식사초대를 안 한 것에 대해 내 '잘못'으로 착각하며 죄송스러워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알면 알수록 기혼여성의 페미니즘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기혼여성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공부를 하는 순간, 너무 우울해지고 비참해진다. 이 감정,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다음날,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날 너무 고생했다며, 내가 도와줘서 덜 힘들었다고 무척 고맙다 해주셨다.  나는 순간, 어머님께 전 날의 그 상황에 대한 얘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용기를 냈다. 나도 모르게 이미, 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걸 인식하면서) 최대한 차분하게 얘기해보자고 나 자신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다.


"어머님. 제가 이걸 말씀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어제 00 큰어머님께서 어머님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해드리는 부분에 대해 말씀하신 거요.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어머님께서 서운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약, 어머님께서 서운해하셨다면.. 제가 죄송스러운 부분이고요. 다음에 어머님 생신 때, 부족하지만, 식사 한 번 차려드릴게요."
"아이고!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아니다! 아니야. 나는 너한테 하나도 서운한 거 없어. 애야. 나는 그런 것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너희 둘이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거지. 그런 대접받는 걸 바라진 않아. 어제 그건 그냥 그 큰엄마들끼리 하는 얘기고. 아이고. 그 말을 신경 쓰고 있었구나! "
"아, 저도 생각지 못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아. 어머님이 서운해하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아니다! 진짜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중에 너 일 안 할 때 그때 해줘도 되니까... 지금은 다 직장일 하면서 바쁜데, 무슨 그런 것까지 챙긴다고 그러니. 진짜 신경 쓰지 마라. 애야."
"아, 사실은.. 저는 이런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향상되길 바라는 입장에서 며느리는 꼭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어머님. 그래서... 제가 어머님께 식사대접을 해드리고 싶다는 의미는.. 며느리로서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한 가족으로서 누가 되었든 간에 따뜻한 식사는 해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래서.."


 이 말 이후로, 목소리는 더 떨리기 시작했고, 목구멍 깊숙이 뜨거움이 올라왔다.


"나도 며느리는 무조건 꼭 이래라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야. 아직까지 사회가 이래서 그렇지... 이런 제사나 차례일도... 그냥 같이 해나가다 보면 언젠간 좀 나아지지 않겠니."
"네. 어머님. 저도 시어머님 대 며느리가 아닌, 그냥 한 공동체로서 서로 도와주고 배려해주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애야.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신경 쓰지 말거라. 알았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나 자신도 지키면서 우리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 통화가 끝난 후, 내 눈에는 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왔지만, 실컷 울고 나니 갑갑했던 마음이 한 결 후련해졌다. (내 눈물샘은 차고 넘치나 보다. 왜 계속 눈물이 이리 쉽게 나오는 것 같은지.)

 





 가부장적 제도 하에 형성된, 관습적 ‘역할 기대'로 인해, 나처럼 상처 받는 사람이 있거든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다. 그리고 부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거든 혼자 속 썩이지 말고, 글이든 말이든 표현해보라고도 말하고 싶다. 조금의 불편한 감정을 가지되, 최소한의 '인간애'는 가진 채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나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 혼자서 계속 답답해하며 눈물만 머금고 있었을 테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답답한 상황이 와도, 가족이 된 이상, 그 관계를 나쁜 방향으로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서운한 점 또는 바라는 점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체,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고 용기 있게 이야기해보자.


 감정을 배제하라고 이야기 한 건, 순간 드는 그 감정을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말로 표현할 땐 그 부정적인 감정이 말에 스며들어가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분노’와 ‘짜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내가 내뱉는 말에 스며들어가는 순간, 내 목소리의 진중함을 잃게 되고, 상대방은 자기 방어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계속 훈련 중이다.)


 적어도 이렇게 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타자에게 인식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를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자. 우리의 존재를 열등하게 만들지 말자. 아직은 남-녀의 땅이 기울어져 있지만, 그 땅이 기울어져있을수록 우리는 각자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_ 자신을 잃은 대가로 얻은 가슴속 깊이 박힌 '응어리'를 뽑아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응어리’가 가슴속에 맺히지 않도록! 모두의 '페미니즘'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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