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프러포즈'그 이후의 사랑이 더 소중하다.
"선생님은 프러포즈받으셨어요?"
"네."
"우와! 어디 봐봐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직장동료들은 '결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다. 남편 얼굴 보여주면 안 되냐부터 시작해서 결혼사진, 웨딩드레스, 연애 사진... 그렇게 이것저것 하나둘씩 물어보더니, 어느새 프러포즈까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 프러포즈받은 여자야~'라는 자신감과 미소를 띠고 있다.
결혼 전부터 결혼하고 나서 까지, 여성의 행복을 은연중 좌지우지하는 잣대 중 하나, 바로 ‘프러포즈’이다. 프러포즈 어떻게 받았냐는 질문은 결혼 직전까지 아주 단골 질문이다. 나는 그냥, 두말하지 않고 프러포즈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게시를 했던 터라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의 내가 그때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프로필 사진에 그와 같은 사진을 담아두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은연중 자랑하며 보여줬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사진을 띄워 자랑하듯이 보여준 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남녀의 역할을 주입시킬 수 있는 일이니까.
한 날은, 한 친구로부터 결혼을 코 앞에 둔 나에게 나의 신랑이 될 사람이 궁금하기도 하고, 함께 인사 나눌 겸 식사 한 번 하자고 연락이 왔다. (참고로, 나보다 일찍 결혼을 한 친구이다.)
"너는 프러포즈받았지?"
"응? 아, 응."
"프러포즈 어떻게 받은 거야?"
"아.. 그냥.. 레스토랑 가자고 해서 갔는데, 거기서 서프라이즈로 ~~(생략)~~"
"그럼, 오빠분이 그렇게 준비했던 거야?"
"응."
"봐봐. 얘는 프러포즈받았잖아~! 오빠는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고 말이야! 응?!"
이 말을 들은, 우리 신랑은 곧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런 말 듣기 싫어서, 네가 안 해줘도 된다 해도
내가 그렇게 끝까지 비밀에 부쳐가며 했던 거야."
만약, 정말 내가 프러포즈를 받지 않았다면, 남편에게 계속 서운해했을까?
- 프러포즈, 우리는 이 '프러포즈'에 대해 예민하다.
내 친구와의 일화에서만 봐도, '프러포즈'를 하느냐, 받느냐에 대해서 남녀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 같은 경우는, 연애할 때부터 나는 프러포즈 이런 거 안 해줘도 된다. 오히려 그런 거 받는 게 부끄럽고 더 불편하다고 얘기를 해왔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거 가지고 괜히 부담주기 싫기도 했다. (그냥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 같은 경우는 절대로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남편은 우리 둘의 결혼날짜가 잡히고 얼마 있지 않아 프러포즈를 했다. 그리고 결혼 직전, 그리고 그 이후까지 친구들, 그리고 직장에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계속 물어본다. '프러포즈' 받으셨어요? 어떻게 해줬어요?
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걸까? 만약, 프러포즈를 안 받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었을까.
뭐, "내가 프러포즈하지 말아 달라 했어요. 저 그런 거 못 견디거든요."라고 말은 했겠지.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어떨까. (그런데, 난 진짜 프러포즈 관심 없는데. 그래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페미니즘 관련 책을 보면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있는 작업을 거치는 중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프러포즈를 받지 않고 결혼을 한 다음에, 그와 관련된 질문을 받게 된다면, "안 받았어요. 저는 프러포즈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요. 꼭 그걸 하는 게, 오히려 남녀차별과 차이를 견고하게 하는 관습이라 생각해요.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냥 동등한 인격체로 결혼해서 계속 서로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게 중요하지."라고 대답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프러포즈라는 것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해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둘의 관계는 그만큼 우리 둘이 함께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었던 그런 세월이 있기에 그런 형식적인 것으로 이리저리 치일 수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와 '남편'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다시피, 사회에서 만들어낸 신랑, 신부 프레임이 의도치 않게 우리 둘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우려하며 행했던 우리 둘. 우리 남편은 저런 말 듣기 싫어서 프러포즈를 무조건 했다고 말한 것과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프러포즈 질문을 받았을 때, 은연중 자랑하며 사진을 보여줬던 나의 모습 (사실, 이 사례 말고도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관습'이 우리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허다하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나.
페미니즘을 아직 잘 모르거나 체화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프러포즈'는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함께_ 남자는 해야 만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친구도 그랬고, 나의 동료들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 나도,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좀 알고, 다시 내 삶을 반추해서야 남녀의 역할을 구별 지어놓는 일련의 관습이 눈에 보이는 것이니.
- 프러포즈, 우리는 이 '프러포즈'에 대해 무감각하다.
'프러포즈'라는 말과 그것을 상징하는 어떠한 이벤트와 반지, 꽃...
보통 드라마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해달라고 청혼을 하고, 그 모습을 우리는 아무 이질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게 '보통' 또는 '기본'이라 생각할 만큼. 그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진다. '결혼하려면 '프러포즈'는 기본이지?'
심지어, 여자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기 위한 남자들의 노력은 가히 대단하다. 어떤 프러포즈를 했느냐, 받았느냐는 많은 남녀에게 예민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예전에 tv에서 반지를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에 넣어서 서프라이즈 프러포즈를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런 기발하고도 엉뚱한 이벤트는 누가 고안해내는 건지.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남자들도 힘들겠다 싶었다. (나 같은 성격이면 진짜 못한다.) 나도 위와 같은 프러포즈 상징물(?)을 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 나 또한 그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나 프러포즈받았구나. 기분 좋네. 아. 이제 곧 결혼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남편이 다소 장난스럽게 "우는 거야? 울어도 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만약, 내가 눈에서 눈물 나오는 순간, 우리 남편은 마음속에서 엄청난 환호성을 외쳤겠지. '나의 프러포즈, 성공했어!'라고.
지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러포즈의 당위성은 남녀에게 모두 좋지 않다 생각한다. 결혼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영향이 많은 듯하다. 의도치 않게 비교하게 만들고 실망하게 만든다. 물론,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설렘과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고, 주고받는 입장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억지로 하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뭐 여자가 남자에게 프러포즈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것도 나는 '굳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 "나와 결혼해줄래? 결혼하면, 널 행복하게 해 줄게(?)"
프러포즈하면,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고전문학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 아닌, '어느 인생' 작품이다. (* 참고로, 이 작품은 원작 제목 자체는 <여자의 일생> 이 아니라 <어느 인생>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선 미국판 제목을 참고한 일본판을 번역해 들어온 이후, 계속 <여자의 일생>으로 출판되어왔었다고. )
이 책을 통해 나는 프러포즈라는 관습이 갖는 의미를 이 작품에서 아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여자에게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로 자리 잡혀있었다.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남편을 내조하는 그런 삶. 그렇게 여자는 아내가 되어, 남편의 소유가 된다. 이 소설 배경은 19세기이고, 당시엔 이런 결혼제도와 구조가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잔느의 아버지는 잔느에게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 라 말했고, 그 말 뜻의 내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잔느는 그저,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이다가 쥘리엥의 '나의 아내가 되어 주겠냐는 물음'에 '저는 당신의 것이에요'라고만 말하는 잔느. 그리고 잔느는 깨닫게 된다.
"아, 아내가 된다는 것, 당신의 것이 된다는 게... 그저 행복한 것만은 아니구나!"
쥘리엥이 딱히 잔느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해준 것은 없었지만, 그가 최대한 멋지게 보이도록 차려입고 잔느에게 "제 아내가 되어 주시렵니까?"라고 청하는 것, 일명 첫날밤을 치르려는 과정에서도 "나를 사랑해 주겠소?"라고 신사답게 얘기하는 그. 막상, 그녀를 취하고 난 이후에는 그저 망나니가 따로 없을 정도로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링크 : 기 드 모파상 <어느 인생> 리뷰 - 인스타그램 및 네이버 블로그)
https://www.instagram.com/p/B5JRnzLFQLG/?utm_source=ig_web_copy_link
https://blog.naver.com/sena1222/221715707079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잔느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기구한 운명을 살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대의 환경에 따라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에 대해서 '여자의 일생'이라는 프레임을 걸어둔 것은 오히려 더 '여자'를 족쇄에 묶어놓는 결과를 내게 된다. 아마, 고전작품이 대부분 이런 프레임으로 남녀를 구별 지었을 듯싶다.
만약, 지금 시대로 잔느가 환생하여 온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그런 프러포즈 필요 없으니까 날 소유물로 대하지 말고, 한 인격체로 대해주라고. 그저, 남녀가 기숙사 생활하듯이 서로 지킬 것 지키고, 배려하는 삶 말이다. 그냥, 한 명이 요리를 하면, 한 명은 설거지를 하고. 한 명이 세탁기를 돌리고 옷을 정리하면, 한 명은 청소기를 돌리고.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는 것처럼.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의 '프러포즈'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글로 옮겨보았다. 글로 정리해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젠 '프러포즈'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라고만 표현하기엔 찝찝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 하나, 우리에겐 '프러포즈'보다도 그 이후의 삶이 훨씬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랑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으로선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간 우리 부부가 그런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쉽지는 않겠지만, 서로 존중해주며 노력해보려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이유가 크니까.
만약, 내 친구와 식사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프러포즈 다 필요 없고, 그냥 그거 없어도 너를 위해주고 배려해준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 순간의 ‘공주’가 된다는 것이 훗날의 ‘족쇄’를 만드는 일이라면 프러포즈는 필요 없어."
+) 관련 책 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53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