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보석, 아프리카의 눈물
지금까지 수백 번도 넘게 듣고 배운 '기후변화, 환경오염, 사라지는 만년설, 물 부족, 기아' 등 많은 세계적 이슈들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동안의 나는 제삼자 입장에서 그 문제들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잠시 걱정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엔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만년설도 그 심각성이나 사라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을 연도 별로 찍어서 만년설의 양을 비교해 놓은 마랑구 호텔의 사진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실감은 안 났던 것 같다. 녹아서 흙이 노출되어있는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고서야 심각하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킬리만자로 만년설, 끝이 있는 만년
4박 5일간의 킬리만자로 등반은 아프리카에서의 일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정이었다. 국내 캠프 때 지리산, 화왕산에도 돌랐었고 야간산행 훈련도 해봤지만, 등산이 아닌 등반의 무게감은 크게 느껴졌다. 우리가 제일 걱정했던 점은 '고산증'이었다. 내 의지나 체력과는 무관하고 단순히 체질인 고산증이 나에게도 나타날지 나타나지 않을지, 나타난다면 얼마나 심하게 올지, 예상할 수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평소 알레르기라던가 멀미 등 다양한 '증'들이 하나도 없던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 발자국마다 '뽈레뽈레(천천히 천천히)'를 새기며 걷기 시작했다. 첫째 날, 산에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무난했고 버틸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크기의 웅장한 나무들과 독특한 식물들이 정말 맘에 들었다. 킬리만자로 입구로 들어서면서 '이 곳에서 제일 맘에 드는 식물을 처음 만져야지!'하고 스틱만 잡고 가고 있다가 내가 제일 처음 만진 나무도 첫째 날 코스인 울창한 숲에서 나왔다. 하늘을 향해 세 갈래로 뻗어있는 큰 나무였는데 너무 맘에 들어서, 그 나무를 만지면서 무사히 등산을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킬리만자로를 등산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키보 산장에서 길만포인트까지였다. 듣던 대로 정말 무시무시한 코스였다. 몸 상태가 멀쩡할 때 가도 지옥 같은 코스인데, 그날 점심으로 먹은 쇠고기 비빔밥을 먹고 체해서 속이 좋지 않은 채로 야간등산을 했야 했다. 토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졸리기까지 했다. 이 코스에서 많은 대원들이 하산했다. 다들 체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고산증 때문에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내려갔다. 친구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너무 힘들고 토할 것 같아서 내려가 쉬고 싶었지만, 내려간 대원들 명찰을 들고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해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정산까지 올라갔다.
내 가이드인 폴은 등산하는데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힘들어하니까 등산가방을 들어주었고 내가 힘들어 보일 때마다 "하쿠나 마타타(잘될 거야/문제없다)"라고 귀에 속삭여주었다. 나에게 괜찮다고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속이 좋지 않다고 하니 틈날 때마다 따뜻한 물을 따라주고, 걸어가다 잠드는 나를 깨우고, 비틀거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며 내가 등산하는 내내 내 옆에서 도와주었다.
길만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졸음이 쏟아졌었다. 나는 그곳이 정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찬호 선생님과 애들 몇 명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어보니 정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막막했지만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고 일어나서 따라가기 시작했다. 내 가이드인 폴은 놀라며 정말 갈 거냐고 갈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나는 가야 한다며 반쯤 혼이 나간채로 대답했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 전 코스를 생각하면 길만 포인트에서 정산까지 가는 길은 산책길이었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막아낼 수 없었다. 길만 포인트가 정상인 줄 알고 긴장을 풀었다 가는 거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걷다가 멈춰서 자고, 폴이 깨우고, 다시 자고 깨우고....... 폴은 내 상태가 심각해지자 더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며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가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우겼고 결국 폴은 나를 믿고 정산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떻게 가고 있는지 풍경이 어떤지, 시간은 어느 정도 지났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반수 면상태에 빠진 상태로 정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산에 도착했을 때 해냈다는 만족감도 들었지만 쉴 수 있다, 드디어 끝이라는 기쁨이 더 컸다. 내가 해냈다는 만족감과 뿌듯한 기분은 산에 내려가고 쉬고 난 다음에서야 들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정상에 있는 바위 어디쯤에 앉아서 만년설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게 큰 얼음 덩어리들과 거뭇하게 드러난 지구온난화의 흔적들을 보면서 '네가 만년설이구나. 나중에는 여기까지 와도 너네를 못 볼 수 있다는 거구나.'생각했다. 희고 눈부신 만년설들 사이로 거뭇거뭇한 땅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지점도 많았다. 예전엔 저런 지점이 없었단 말이지? 바위를 침대 삼아 잠들며 생각했다.
#보이지 않던 별
킬리만자로에서 본 것 중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라는 질문을 하면 난 주저 없이 밤하늘의 별들이라고 대답해왔다. 정상의 만년설도, 자이언트 식물들도, 널려있던 흰나비들과 모래언덕, 카멜레온과 독특한 환경, 우리의 대화 내용까지도 아직 생생히 기억나지만 킬리만자로에서 본 별만큼 나를 감탄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정말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본 장면 중 제일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킬리만자로에서 처음으로 별을 제대로 본 것은 호롬보 산장에서였다. 쿡들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내 앞에 있던 오빠가 문을 열고 나가려다 급하게 닫았다.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너무나 많은 별이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오버한다고 생각하며 문을 다시 여는 순간 나도 멈춰 서고 말았다. 진흙 같은 밤하늘을 보니 정말 말 그대로 별이 뿌려져 있었다. 반짝이 가루를 하늘에 쏟아놓은 것 같았다. 내 눈앞에 전 우주의 별들을 집합시켜 놓은 듯했다. 책과 과학관에서만 보던 은하수와 여러 별자리들이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내 눈에 쏟아져 담겼다. 별똥별이 밤하늘에 흘렀다. 이렇게 계속 등반하다 보면 하늘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별을 보게 되지 않을까. 너무나 힘들었던 마지막 날, 숨을 고르려 고개를 들 때마다 보이던 별은 내가 움직일 수 있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감히 꿈꾸지 못했던 밤하늘을 머리에 그릴 수 있다. 별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문명의 빛에 가려져 내가 지나쳐온 빛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17년을 살고서야 알게 되었다. 지구는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